관혼상제처럼 중요한 통과의례
꿈을 찾아 떠나는 결정 됐으면

▲ 김용국 정광고 교사.

불볕더위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 무렵 고1들은 하나의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한다. 관혼상제에 비견되는 묵직한 통과의례다. 바로 2학년을 앞두고 문과와 이과를 놓고 진로를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1에게 문ㆍ이과 선택은 생의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한번 선택한 그 길은 그를 대학으로, 사회로 안내하고, 결국은 인생의 종착역까지 데려간다. 그러므로 고1의 진로선택은 관혼상제만큼 중요한지도 모른다.

나는 고1인 우리 반 남학생 녀석들에게 문ㆍ이과 진로 향방을 물었다. 36명의 아이들 중 문과를 희망한 학생은 고작 네댓 명에 불과했다.

이공대 위기론이 팽배하던 10여 년 전과는 판이했다. 지금은 반대로 인문계 위기를 나는 목전에서 실감하고 있의니 격세지감이란 이를 두고 말함인가 보다.

이과를 희망하는 학생에게 물었다. 왜 이과를 희망하느냐고.

“이과가 아무래도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요.”

문과를 희망하는 학생에게도 물었다. 왜 문과를 희망하냐고.

“이과로 가고 싶지만 수학을 못해서요.”

학생들이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이 될 선택에 대한 대답은 너무 허망했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부합한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대답이었다. 씁쓸했다. 이는 비단 우리 학교, 우리 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 거개의 학교 풍속도일 것이다.

나는 문과, 이과 중 어느 한쪽에 편중된 학생들의 선택을 탓하고 싶진 않다. 눈앞에 놓인 갈림길에서 좌우 어느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건 온전히 선택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적성, 흥미, 꿈이란 단어 대신 취업과 수포(수학 포기)를 이유로 생의 갈림길을 선택하는 그런 태도를 탓할 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선택을 한 학생도 탓할 수만도 없다. 이런 선택은 그가 지금껏 봐 온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체득된 사회구조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자연 상태도 아닌 문명사회를 일궈 왔지만 일찍이 토마스 홉스가 말한 대로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이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이다. 모든 것은 승자가 독식하고, 한번 낙오되면 패자부활전이 없는 냉혹한 무한경쟁 사회 속에 나투된 존재로 우리는 오늘을 피곤과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잘못되면 88만 원 인생으로 전락하여 그야말로 고해의 바다를 떠돌다 생의 종언을 고할 수 있다는 것을. 연애나 결혼, 출산은 그저 꿈일 수밖에 없다. ‘삼포로 가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냉혹한 현실을 이미 알아버린 학생들에게 교사랍시고, 훈화한답시고 적성, 흥미, 꿈을 찾아 진로를 선택하라는 말을 하기가 영 어색할 뿐이다.

2018년부터는 고교 문과와 이과가 통합된다. 인문적 상상력과 과학적 사고력이 융합된 제2의 스티브 잡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길러내겠다는 교과부의 취지에는 동감한다. 미래학자들이 예언했다시피 다가올 미래는 특정 부문의 전문가보다는 각 분야를 아우르는 호모컨버전스, 즉 융합형 인간 또는 르네상스형 인간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한국 잡월드에서 운영 중인 직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들. ⓒ한국잡월드 누리집 갈무리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교과부가 융합형 인간, 르네상스형 인간도 좋지만 먼저 그 목적지에 이르는 길에 꿈이란 표지판을 걸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호사가 꿈입니다.”란 말보다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변호사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꿈의 표지판을 말이다. 학교는 가장 먼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곳이어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의 눈은 더욱 빛날 것이고, 얼굴은 웃음으로 넘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젊은이는 번뇌와 고뇌의 표상이므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로 이들의 인내를 강요하지 말자. 짧은 한 생, 젊은이는 즐거우면 안 되는가. 젊은이는 우정과 사랑을 나누면 안 되는가. 젊은이는 여행을 통해 세계의 젊은이들을 만나면 안 되는가.

나는 교실 문을 나서며 여기 젊은 고1들이 상상력과 기술력이 어우러진 돛배를 타고 꿈의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콜럼버스가 되어보길 빌어본다. 내 꿈이 꿈이 아니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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