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1,200불,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140만원 정도라는 가난한 나라, 국민의 70%정도가 농업에 종사할 정도로 여전히 1차 산업 비중이 크고 대도시에서 한 시간 거리만 시골로 들어가도 전기나 물 같은 생활에 필요한 기본 시설이 부족한 나라.

하지만 석유와 가스등 천연 자원과 값싼 노동력이 넘쳐나기 때문에 미개척된 잠재 시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고 작년 12월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NLD가 승리하면서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는 나라....

그냥 한국적인 사고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등 많은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한때 유행했던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그것도 허버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또 미얀마인것 같다.

일찌기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멋진 정의를 내려주셨는데, 아리스토 할아버지의 정의대로 인간은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고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면서 울고 웃으며 사는 것임을 미얀마에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미얀마의 바간에서 4개월을 보내면서 ‘사회적 동물’이 되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이 크고, 의사소통이 안되다 보니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경험 세계를 넓힐 기회가 거의 없는게 문제다.

처음에는 현지 사람들을 전혀 모르고 만날 일도 거의 없어서 소통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의사소통이 안되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중이다. 통역하는 언니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고 마실 물을 주문해야 하는 기본 생활마저 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문맹에 듣지도, 말 하지도 못 하는 완전 고립체가 되는 심정이란...

어쨌거나, 24시간을 통역언니에게 의지하고 지낼 수는 없으니 혼자만의 생존 방법을 익혀야 하고 혼자서 시장이며 파고다 다니면서 사람들이랑 섞이려는 노력을 해보는 중인데 그게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미얀마 사람들이 워낙 친절하고 특히 한국인들에게 좋은 감정을 갖는지라 한국서 온 외국인이 손짓 발짓해가며 떠듬떠듬 뭐라고 쏼라거리는 상황을 귀엽게(?) 봐주는 편인것 같다. 말 설고 물 설은 이곳에서 내가 사용하는 소통 수단은 만국공통어인 바디 랭귀지, 아주 짧은 영어 단어 몇 마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미얀마어 몇 마디와 구글 번역기까지 소통에 필요한 수단은 전부 동원된다.

 

4개월 동안 살면서 쌓은 관계들은(같이 파견되어 있는 한국인 동료들은 빼고) 앞 집 할머니, 택시 드라이버인 미스터 네린쪼와 그의 가족들, 일주일에 세 번 청소 도와주러 오는 싼사네, 팔린공 조림지의 아줌마와 그의 가족들, 가끔씩 들르는 과일가게의 예쁜 언니들, 나를 보면 헬로~를 외치는 동네 꼬맹이들이 전부이다. 당연히 말은 안 통한다.

앞 집 할머니는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쪼르르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하지만 말이 안되니 서로 답답.... 다행히 영어를 하는 딸이 있어서 급할 때면 우선 달려가는 1번 119이다.

며칠 전, 할머니가 웬 남자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 두 분 다 영어가 전혀 안 되는 분들. 눈치를 보아하니 숙소로 쓰고 있는 지금 집 주인이 7월 계약 기간이 만료가 되면 이사를 할 건지를 물어보러 온 듯 한데 나는 안 되는 영어로, 할머니와 남자 분은 미얀마어로 서로 쏼라 쏼라대는 광경이라니... 하도 답답했는지 할머니가 한 음절씩 또박 또박 큰 소리로 뭐라고 하시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결국 통역하는 언니에게 전화해서 상황 종료...

미스터 네린쪼와 그의 가족들과의 인연도 재미지다. 네린쪼는 ODA 사업으로 한국 산림청에서 파견된 PM(프로젝트 메니저)의 기사로 일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푸른 아시아 활동가들과 알게 되었는데 2년 정도 지내면서 지금은 가까운 친척처럼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이다.

네린쪼네 가족들과 나는 좀 더 특별한 인연이 있는데 4월초, 2주 정도의 띤잔 축제 기간 동안 혼자 바간에서 지내면서 그의 가족들과 여러 유대를 쌓게 되었더랬다. 미얀마의 음력 설인 띤잔 축제는 가장 더운 시기인 4월 초에 시작하여 약 2주정도 지속되는데 서로에게 물을 뿌려 주면서 그동안 지은 죄를 씻고 축복해주는 미얀마의 전통 명절이다.

이 기간 동안은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물을 뿌리고 맞으면서 즐긴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어서 터벅터벅 걸어가다 느닷없이 물벼락을 맞거나 미리 눈웃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가벼운 물세례를 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를 당(?)한다.

나는 네린쪼의 가족들과 트럭을 타고 다니며 물을 맞으러 다니는, 외국인이 경험해보기 어려운 생생한 물 축제를 경험했었다. 게다가 손녀딸의 신쀼 행사에 초대받아 미얀마 서민들의 생활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가족들과도 말이 안 통한다. 그럼에도 손님들에게 친절한 미얀마 사람들인지라 손님인 내가 불편할까 늘 이것저것 물어보고 챙겨 주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가 있었으니, 미얀마 온지 한 달 만에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덜렁 혼자 남겨져 있다 네린쪼 가족들 사이에서 받는 ‘보호’의 느낌이 얼마나 컸는지 소속의 욕구, 안전의 욕구가 일시에 충족되는 그 느낌을 안 겪어본 사람들은 알랑가 몰러... 띤잔 이후에도 네린쪼의 가족들과 다른 지역 여행도 함께 가곤 하는데 이들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미얀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경험하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혼자 지내면서 느끼는 고립감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들과 어울리며 보호받고 있다는 안전감을 경험 하곤 한다.

싼싸네와 조림장 아줌마는 같은 ‘아줌마 정서’가 진하게 관통하지만 역시 이들과도 말이 안 통한다, 그러나 감자랑 양파 넣은 채소 부침개를 부쳐서 나눠먹으며 채소 안 먹는 아이가 이건 잘 먹는다며 좋아하는, 만국 공통의 엄마 모습을 보기도 한다.
 

특히 싼싸네는 푸른 아시아의 사무실이 있는 건조국 안의 사택에 살고 있어서 틈만 나면 싼싸네의 집으로 놀러가곤 하는데 싼사네~ 부르면서 들어가면 이에~~~하고 특유의 길게 빼는 대답을 하며 이것저것 먹을 것을 꺼내 와서 늘어놓고 부채를 부쳐주며 웃는 싼싸네. 말이 안 통하니 난 한국말이랑 안되는 영어로 주절주절... 싼싸네는 미얀마말로 블라블라... 이 상황이 또 웃겨서 깔깔대며 웃음 한 바탕....

미얀마 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이들과는 이렇게 친구가 되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과는 아직 거리감이 크다. 아침저녁 마주치는 동네 주민들에게 밍글라바~ 하며 인사하면 상냥한 미소와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아직은 거기까지. 옷 차림부터 동네 주민들이랑 한 눈에 구별되고 커다란 집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이 혼자 지내는 외국 여성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이곳 생활 세계에서 아직 낯선 존재인건 분명한 듯.

네린쪼네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느꼈던 ‘안전감’은 미얀마 생활 한 편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이 불안은 의사소통마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 또는 자연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재난에 대해 나는 아무런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또, 인간의 기본 욕구인 소속과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이곳 사회의 바깥에 위치해 있는 나의 현실이 무의식적으로 불안을 소환해오지 않았나 싶다.

아마도 이런 불안은 사람들 속에서 섞여 살 때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터, 그래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미얀마 사회의 동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물론, 이방인의 레테르는 계속 붙겠지만) 언어를 빨랑빨랑 습득하여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부터 할 일인 듯. 하지만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나의 언어 공부 상태는 불안과의 동거를 당분간 지속해야 할듯하니.... 에휴~~~ㅜ ㅜ ㅜ ㅜ

** 황정아 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올해 3월부터 세계3대 불교유적지 중 한 곳인 미얀마 만달레이주 바간 타운십에서 1년 기한으로 한국엔지오 소속으로 현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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