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 이래 청와대와 교육감들이 장시간에 걸쳐 이토록 혈투를 벌인 적이 없었다. 이번
이 처음이다. 결국은 교육감들이 이겼다고 본다.

▲ 김선호 전 광주광역시의회 교육의원(전 교장).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려는 꼼수도 이번 총선으로 끝장이 났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 어느 때나 그랬지만,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은 권력 앞에 꼼짝을 못한다. 그러면서 아랫것들한테는사정없이 겁박과 협박을 일삼으며 권력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참 부끄러운 모습이다.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골치가 아프기 시작하자,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교육감들과 협의를 거쳤으며, 2012년부터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 오다가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 이후,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부총리라는 사람이 공표하자, “이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정부와 협의를 하거나 합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감히 교육감들이 겁도 없이 대들었다.

옛날 같으면 찍소리도 못할 것들이 대들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교육감들을 향한 정부의 교활한 겁박성 대국민 담화정치와 교육감들의 인내에 찬 사실 확인 전술의 핑퐁게임이 이어지던 중, 어느 기자가 박 대통령께 “누리과정 해결책을 듣고 싶다.”고 하자,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사실을 왜곡하면서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삼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게생각한다. 정말 교육청이 정치적이고 비교육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급기야 지난 4월 총선에서 얼마나 다급했던지,“교육감님, 정부에서 보내준 누리과정 예산, 어디에 셨나요?”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통령님이 약속하신 누리과정 예산, 안줬다 전해라.”고 응수하는 현수막을 보고, 국민들은 더 이상 용서 없이 심판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아랑곳 없이 고집만 피워대고 있다. 임기 만료 전에 물러나게 하거나, 방법이 없다면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본래 보육은 보건복지부 소관이어서 시청과 구청이 담당했고, 유치원 교육은 교육부 소관이어서 교육청이 담당했다. 정부에서는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재량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률상 의무다.”라며 시행령을 들이댔지만, 어느 법에도 교육감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의무사항은 없다.

즉, 시행령이 상위법을 위반하고 있는 불법 시행령이다. 법률을 고치든지 시행령을 고치든지 맥이 통하게 고쳐야 한다. 그리고 예산과 함께 권한과 책임도 같이 주어야 한다.

어느 날 장관이 “교육청마다 이월금과 불용액이 수백 억 수천 억 씩이나 된다. 충분히 누리과정 예산을 책정할 수 있는데 안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 붙였다. 모르는 국민들은 장관의 말을 믿고 교육감들을 질타했을 것이다.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꼼수 발언이었다. 절약되어 남겨진 불용액도 다소 있겠지만, 부득이 당해 연도에 끝내지 못하고 다음 연도로 넘겨질 이월 예산도 많을 것이다.

이런 예산을 모두 누리과정에 쓰라고 한다. 금년에 완성을 목표로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가, 여러가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절반만 짓게 되면 절반의 예산이 남는다. 그 남은 이월 예산을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에 쓰라는 장관이다. 그러면 못다 지은 학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예산을 볼 줄 아는
회계사들이 한바탕 웃어버렸다고 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했다. 지금 동네 통반장도 알지 못하면 못해먹는다. 잘나가는 사람이 누구고, 어려워하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잘나가는 사람한테는 지원을 요청할 줄 알아야 하고,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더 어려워지지 않게 지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는 모르는 것 같다. 아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보육과 교육을 모르고, 법률과 시행령을 모르고, 이월금과 불용액을 모르고, 시청과 교육청이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광주광역시교육청에 떠넘겨진 누리과정 예산이 73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정부의 명령대로 몽땅 다 누리과정 예산을 세우고 나면, 320여개의 초·중·고등학교에 적어도 2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학교에 배정되지 못할 것이다. 교육 대란이 뻔히 보인다. 다른 시·도교육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와대 발 보육대란을 그래도 전교조 발 진보교육감들이 막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희망이라도 보여서 다행이다.

**윗 칼럼은 전교조광주지부가 발행하는 <광주교사신문> 187호에 실린 내용을 재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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