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 

2000년대 들어 그 동안 스파이 액션영화를 대표하던 <007>시리즈와는 액션의 차원이 다른 영화가 나타났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와 맷 데이먼의 <본>시리즈다. 

그 동안 <007>을 비롯한 장 끌로드 반담·척 노리스·스티븐 시걸처럼 유치한 몸동작과 치졸한 싸움으론 그저 티격태격하며 괜스레 무대만 어수선했다. 

▲ 영화 <제이슨 본> 포스터.

그나마 실베스터 스탤론·아놀드 슈워제네거·브루스 윌리스의 액션은 그저 파워풀한 게 아니라 그 영화의 캐릭터와 잘 어우러져 유치하거나 치졸하진 않았다. 

그런데 제이슨 스타뎀의 <트랜스 포터>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그리고 <13구역>의 데이비드 벨이 보여주는 액션에 깜짝 놀랐다. “아, 이젠 서양영화에서도 이렇게 세련되고 강렬한 액션을 만날 수 있구나!” 

<미션임파서블>시리즈의 톰 크루즈 액션은 놀랍다기보다는 리얼한 생동감이다. 잘 짜인 스토리에 팀워크로 뭉쳐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재미, 리얼한 액션이 뒷받침한다. 

최초의 1편에서 테제베 열차를 추격하는 헬기 액션 그리고 최근의 5편에서 레베카 퍼거슨과 어우러지는 액션을 잊을 수 없다. 

<미션>의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맷 데이먼의 <본>사리즈가 더욱 좋다. 1편 <본 아이덴티티>는 2편 <본 슈프리머시>에 홀딱 반한 뒤에야 찾아보았다. 

미국 CIA의 파멜라 랜디(by 조안 알렌)와 팽팽한 긴장감이 너무나 멋졌다. 중간쯤에 반대쪽 빌딩에서 저격 방아쇠를 당기려다 놓으며 “니키, 지금 당신 곁에 있잖아!” 하면서 홀연히 사라져 버린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또 반대쪽 빌딩에서 “랜디, 피곤해 보여요, 쉬세요!” 하면서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장면은 그 “~웨이잉~이-짜자잔 잔짜잔~”으로 이어지는 빽-뮤직과 함께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미션>보다도 <본>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3가지이다. 하나, 외로운 떠돌이 늑대처럼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그 주변 상황이나 주어진 물건에 기대어 최대한 효과를 이끌어낸다. 

돈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무기도 그렇다. 볼펜·전깃줄·책상 다리·수건·깡통·허리띠…. 갖가지 생활용품이 모두 다 무기다. 

둘, 사람은 셋만 모이면 조직이 생기고 우열(優劣)과 친소(親疎)가 생긴다. 조직에는 내부자와 외부자가 있는데, 자기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 

그래서 내부와 외부를 항상 함께 관리해야 하므로, 인생이 어렵고 복잡하다. <007>은 외부의 적과 싸우지만, <본>은 내부의 적과 싸운다. 

<미션>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과도 싸운다. <미션>이 가장 복잡하지만 <본>이 훨씬 더 재미있는 건 외로운 떠돌이의 고난이 훨씬 맵고 시리기 때문이고 스토리와 액션의 짜임새가 훨씬 더 굵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셋, 최근엔 좀 달라졌지만 <007>이 반공을 애국의 상징으로 삼고 그 악당을 선명하게 내세우고 있음에 반해 <본>은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특수요원의 비정하고 음울한 시대상을 상징으로 보여준다. 

이에 국가권력이 추구하는 애국심이라는 게 오히려 위선이나 독선으로 세상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암시하기 때문에 <007>이나 <미션>이 보수파 영화라면 <본>은 민주파나 사회파 영화이다.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4968&mid=30612#tab

2007년 3편 <본 얼티메이텀> 뒤에, 무려 9년 동안이나 숨어 지낸 제이슨 본이, <007>이나 <미션>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화사하고 요란하게 자기의 ‘기억 상실증’을 되찾아간다. 

그 동안 <본>시리즈의 중요한 협력자 ‘니키 파슨스’가 죽고, 강렬한 조연 파멜라 렌디도 보이지 않고, 새로운 여주인공으로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그 자릴 대신했다. 

CIA국장 토미 리 존스가 음습하게 교활한 악당으로 등장하고, 모니카 벨루치 남편인 뱅상 카셀이 악당 킬러로 엄청난 자동차 액션을 보여준다. 

겉모습만 화려한 게 아니라 출연배우도 A급이고, 감독의 연출력도 갈수록 더욱 굳건하다. 이번 4편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파멜라 랜디가 보이지 않아서 아쉽긴 하지만, 다음 편에서 더욱 강렬하게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훌륭한 감독이 항상 잘 만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동안 아주 잘 만들어온 저력을 미루어 보건대, 앞으로도 잘 만들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에게 기립박수!!! 
* 대중재미 A+,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민주파 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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