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이나 진보정치운동 내에 관료주의가 노동운동을 말아먹는다며 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 정찬호 노동활동가

도대체 관료주의가 무엇이기에 노동운동 내에 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말인가? 관료란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을 말한다. 노동운동이나 혁명운동에서 말하는 관료란 그 운동의 각종 조직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칭하게 되며 대체로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다.

민주노총으로 치자면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상근 일을 하거나 노동조합 전임자로 활동하는 간부진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관료들이 운동을 장악하여 원칙과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자본가들에게 몽땅 가져다 바치는 것이 이른바 노동운동의 관료주의이다.

러시아혁명과 스탈린관료주위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일으킨 레닌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다가 1924년 1월에 사망한다. 레닌은 사망 직전 혁명세력 내에 성장하고 있는 관료주의를 분석했고 그 정점에 서있던 스탈린을 제거하려한다.

병상에 누워서도 보좌진들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고 관료주의 척결을 담은 당 대회 연설문을 작성했지만 끝내 낭독되지 못한 채 유서로 남게 된다. 죽음을 앞둔 레닌에게 수많은 과제들이 놓여있었을 텐데 왜 하필 스탈린 관료주의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을까?

▲ 이오시프 스탈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국가를 수립한 러시아 볼셰비키들에게 국가운영 경험은 아무도 가보지 않는 미지의 길이었으며 오로지 스스로 개척하고 부딪쳐야 했다. 성과도 있었지만 수많은 오류와 실패들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반혁명세력의 저항은 계속되었고 경제는 피폐된 데다가 기근까지 겹쳐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레닌은 궁여지책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네프(신경제정책)를 추진한다. 숨어있던 자본가들과 관리자들을 불러내 공장을 가동시킨 대신 고액의 임금을 지불했다. 혁명세력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꼈던 그들에게 다시 기득권의 일부가 복원된 것이다.

볼셰비키 내에 이 부류들과 결탁한 흐름이 성장하였고 이 세력은 레닌 생전에는 수면 밑에 가라앉아 힘을 키우는데 열중했고 레닌이 사망하자 곧바로 혁명정부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혁명에서 등장했던 ‘스탈린관료주의’였다.

레닌은 병상에서 이들의 위험성에 주목했지만 그의 생물학적 수명은 이에 맞설 시간을 허락지 않았다. 스탈린관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자 농민 대중들의 자발적인 역동성을 짓누르고 자신들의 통제 하에 가둬두는 것이며 당 대회나 소비에트에서의 민주적이고 치열한 토론을 차단시켰고 형식적인 거수기로 만든 것이다.

스탈린관료주의의 등장으로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이 사라지고 혁명의 뚝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이후 스탈린은 각 나라 혁명운동에 유사한 독버섯을 뿌려댔고 이로 인해 많은 나라들에서도 혁명이 유실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관료주의

지구상의 국가들 중에서 관료주의를 척결하고 혁명에 성공한 사례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운동도 관료주의의 볼모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면 반드시 관료주의와 대면할 수밖에 없다. 아직 전투성이 살아있다는 한국의 노동운동 역시 관료주의가 엄청나게 성장해 있다. 헌신과 투쟁의 대명사였던 노동조합, 노동단체, 진보단체들의 간부직은 권력화 되어가고 있고 적개심에 불타야할 투쟁현장의 연대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노동자들이 참여를 하지 않는 데 간부들이 결정해도 되는 것 아니냐”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어서 하나로 모아내기 힘들다” “내부 분란이 일어나는 데 굳이 알릴 필요가 있느냐” “뭐라도 더 얻어내면 되는 것 아니냐” “결과가 말을 해준다” “노동자들이 먹고사는 문제 땜에 관심이 없다” 등등 이러한 목소리들은 주변에서 쉽게 접한다.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노동운동 관료주의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동운동의 관료주의를 좀 더 들여다보자. 정보나 의사결정권은 소수가 독차지하며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참여와 민주적 결정은 실종된다.

노동자의 힘은 단결에 있지만 부서별로, 공장별로, 기업별로, 산산이 쪼개놓는다. 입으로는 단결을 외치지만 그 힘이 모아져 자신들을 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깨우치지 못하게 하고 체념의 늪에 갇혀있게 한다.

항상 수동적이어야 자신들의 관리가 용이해지며 노동자들이 주체의식으로 무장하면 자신들의 지위가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투쟁을 외치지만 밑으로부터 노동자들의 요구가 거세져 지위 보존의 필요성과 협상용으로만 사용된다.

▲ 연설하는 레닌. 오른쪽은 트로츠키.

전체 노동운동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파벌을 형성하고 자파조직의 힘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한다. 노동자들의 민주주의와 투쟁이 가라앉게 되면 노동운동이 부패해지고 자본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다.

노조간부들의 채용비리 납품업체 금품 수수 도박파문, 연대없는 비정규직 투쟁, 부루주아 정당으로 옷 갈아입는 행위 등은 모조리 원칙이 폐기된 노동운동의 관료화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결코 꺾여서는 안 될 노동운동의 반관료주의 투쟁

이렇듯 관료주의는 혁명과 노동운동을 통째로 갉아먹는 내부의 적이다. 자본가와 그 권력에 맞선 투쟁이 잘 되려면 내부의 적에 대한 투쟁에서 승리해야하고 내부의 적을 물리치게 된다면 노동자민중의 새 세상은 좀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반관료주의 투쟁, 운동의 원칙을 올바르게 세우고 노동자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노동운동의 반관료주의 투쟁, 광범위하고 끈질기게 수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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