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 아침 여섯 시부터 저물 무렵까지 전남 장성군 남면 구재상 님 논에서는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 이렇게 열두 글자를 1300여 평의 논에 새기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앞세운 기사에서 행사 취지 등을 소개한 바 있으므로, 가려 뽑은 사진들에 간단한 설명을 보탠다. 두 대의 핸드폰 카메라, 미니 디카, 드론 사진(<주>봉하마을 기록팀 협조)까지 네 종의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을 배치했다.

광주·전남 노무현재단과 (주)봉하마을이 주관한 행사였다. 몇몇 지인들과 함께 3일에 걸쳐 밑그림을 그렸다는, 이날 '작업반장'인 김용태 선생(광주 노무현시민학교장)은 여러 차례 역설했다.

김대중이 노무현이고, 노무현이 김대중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삶이 닮았고, 지향하신 정치 철학이 닮았다고,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두 대통령을 분리해서 기리려는 움직임은 그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다. 등등

최소한 4~5개월은 지나야 이날 퍼포먼스는 마무리된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다.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그놈이 그놈', '도진개진'과 같이. 그러나 초록이 동색이라는 것부터 인정하자.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르게 보이는, 다르다고 보는 것 안에 깃들어 있는 '같은'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때다.

열두 글자를 새기는 오전 작업은 3시간 남짓 걸렸지만 오후 두 시부터 그 글씨의 배경을 만드는 데는 오전보다 두 배가 넘는 참가자들이 투입되었음에도 해질 무렵에야 끝났다. 두근두근 올 가을 장성 들판에 드러날 풍경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드론으로 촬영한 작업 현장(001), 글씨는 보이지 않지만 참가자들이 움직인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이날 행사의 흔적들을 살핀다.


#002.

2016년 6월 18일 06:00, 전남 장성군 남면 시목마을 앞 논에서 <2016 노짱 캐릭터논 손 모심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시목마을 주민 구재상 님의 1300평의 논에 모로 새길 글자는 모두 열두 자,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다. 못자리의 오른 편은 흑미 모종으로 오전에 글씨 안쪽에 심을 예정이다. 왼편은 해품벼로 오후에 글씨 바깥에 심을 것인데, 글씨를 먼저 새기고 그 배경을 나중에 채우는 방식이다. 벼이삭이 팰(벼꽃이 필) 즈음이라야 색이 구분된다고 하니, 섞이지 않게 조심 또 조심~ 참가자가 많아진 오후에는 못자리 옆에서 벼 모종이 섞이지 않게 한 사람이 지켜보아야 했다.


#003.

작업이 시작되기 전. 열두 글자를 새길 분들이 기념촬영을 한다. 뒷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깨][어][있][는][시][민]을 한 자씩 새길 분들이다. 앞줄 왼쪽부터 차례대로 [행][동][하][는][양][심]을 심을 분들이다. '깨'자를 맡으신 분은 서울에서 오셨는데 글씨가 방대하고 모내기가 서툴기도 하여, 이날 작업반장(사진 오른쪽)이 구원투수로 나서야 했다. 손모심기에 참가한 분들의 구체적인 프로필은 가급적 따로 적지 않는다.


#004.

'시민'의 '시'를 심으실 분이 가장 먼저 모판을 들고 논으로 향하고 '행동하는'의 '하'자를 맡으신 분이 모판을 뜨고 있다. 어르신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기로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시민'의 '시'자를 맡으신 분이 모를 떼어낸 모판을 정리하고 있다.


#005. #006.

오전 작업이 막 시작되었을 때, 호남고속도로(하행선) 가드레일 부근까지 가서 촬영했다. 차를 타고 호남고속도로 광주영업소 앞에 이른 사람들의 눈으로 논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깨어 있는'의 '있' 자와 '는' 자, '행동하는'의 '하' 자를 새기는 분들의 모심기가 한창이다.


#007.

고속도로에서 돌아오는 길, 논둑길을 걷는데 곳곳에서 우렁이 알을 발견한다. 일대의 논들은 우렁이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우렁이가 벼들 사이에서 자라는 풀들을 먹기(제초작업)에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는 무농약재배가 가능하다. 또 다른 농군들이 하나둘씩 부화되어 논바닥으로 향할 것이다.


#008.

열두 글자 안을 채우는 모심기, 오전 일과가 끝나고 9시 30분쯤부터 긴 휴식에 들어갔다. 광주 노무현재단 여성 회원들이 준비한 먹을거리로 요기를 하고, 삶은 돼지고기와 갓 버무린 김치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을 나눈다. 이날의 공식 건배사는 제안자가 "깨어있는"이라고 하면 좌중은 "시민."을, 다시 제안자가 "행동하는"이라고 하면 "양심."이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논 주인인 구재상 님도 참가자들에게 첫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009.

논 주인 구재상 님(오른쪽)과 그가 논과 밭과 집을 오가는 '애마' 오토바이. 그는 젊은 날 한 유명밴드의 드럼 주자였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로 시작되는 <찻잔>이란 노래와 인연이 있다는 정도만 언급한다.

이 곡은 <노고지리 2집>(1979. 11.)에 실려 있다.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사/작곡한 이 곡은 발매 당시 가사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1979년의 10.26.과 12.12.사태 사이, 참으로 미묘한 시기에 발표된 곡이다.

1985년. 세인들이 말하는 '딴따라' 생활을 접은 구재상은 고향마을로 귀농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벼농사와 감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다. 참가자들의 질문에, 그가 2009년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추모 문구를 자신의 논에 새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날 이후 '바보농민'으로 불리는 구재상. “미안하다. (벼들아) 너희들한테 거름을 주지 못해서. 그래도 내 마음을 잘 이해하겠지. 잘 커주기를 바란다. 고맙다” 그는 비바람에 쓰러질까봐 거름을 제대로 주지 못한 벼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그해 가을 논에 새긴 글씨가 알려지면서 한 국가기관의 요시찰 농민이 되었다는 사연도 흥미로웠다.

2009년 가을, 벼를 수확하면서도 글씨 부분에 해당하는 벼들만은 바짝 자르지 않아(길게 남겨), 겨울에 눈이 쌓였을 때도 한눈에 글씨를 알아볼 수 있게 했다. 2010년 6월, 주변 논들은 모심기를 끝냈는데도 글씨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로터리를 치는 일을 자꾸 미뤘다고.

"내가 왜 하필 드럼을 했을까요." 독주가 힘든 악기를 다뤄서 작은 음악회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즉석에서 가을이 오고 벼가 팰 무렵, 혹은 수확할 즈음에 '논두렁 음악회'를 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010. #011.

영농법인 (주)봉하마을에서 온 참가자들 가운데 드론팀(팀장 박명수 감독)이 있었다. 드론을 띄워 논에 글씨가 제대로 새겨지고 있는지 살핀다. 그러나 글씨는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덕분에 하늘을 본다. 정오가 되면서 맑게 갠 푸른 하늘에는 드론이 점 하나로 보이고, 하늘은 파라솔의 노란색과 어울리며, 싱그럽다.


#012. #013.

두 사내의 갑작스런 포옹에 당황하여 급히 셔터를 누른다. 참여정부 비서관에서 농군으로 변신한 영농법인 (주)봉하마을 김정호 대표와 구재상 농민의 찐한 만남이다. 김정호 대표와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되어 (당시 학생과 노동자의) 무료변론을 해주는 변호사 노무현과 만나면서부터다. 구재상은 대통령이 서거한 그 해에 자신의 논에 새긴 글귀 덕분에 돌아가신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두 농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014.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갑작스런 방문. 지난 5월 21일, 부산시민광장에서의 7추기 기념공연과 행사가 끝나고 부산 바보주막(해운대점)에서 진행된 뒷풀이 자리에서도 잠시 만난 적이 있다. 의원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엿본다. 그는 아주 짧게 인사하고 논에 들어가 한동안 손모심기를 했다.


#015.

오후 모심기가 시작되기 전, 장성군 유두석 군수(66)가 방문하여 격려사를 하고 있다. 장성군이 표방한 슬로건이 '옐로우시티'라고 하는데, 자신도 노무현을 사랑하는 1인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오전 새참 때 구재상 님이 한 얘기가 떠올랐다. 장성군이 옐로우시티를 표방했는데, 올 가을에는 유채와 보리를 심어 노무현 대통령 추모 캐릭터를 새기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두 손녀를 태운 수레를 연결한 자전거를 탄 대통령 모습을 새기고 싶다고 했던가.

그는 언젠가 유 군수에게 "내 마음 속에 있는 색깔하고 (군이 표방한 '옐로우 시티'가) 어쩜 이리 똑같냐"는 말을 건넨 적이 있다고. 내년 5월쯤에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려면 늦가을에는 보리와 유채를 파종해야 한다. 구재상 님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한창 쏟아내는 중인데, 한 여성 참가자가 "우리니까 이해하지, (구재상) 선생님! 정상으로 안 보여요!"라는 말을 던져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016.
응원차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왼편은 이날 인사를 온 장성 남면농협 이춘섭 조합장. 손 의원은 전날(6월 17일) 광주광역시 남구 초청으로 공직자들에게 강연을 했다. 구청 공무원과 주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 주제는 ‘지방자치단체도 브랜드다’였다.

이 행사에는 손 의원의 보좌진들이 모두 참여했는데, 광주에서 하루 묵으며 1박2일 MT를 했다고 한다. 논에서는 모심기가 한창인데, 논 밖에서 일을 거들던 이들이 손 의원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이것저것 묻는다. 정청래 의원 컷오프는 지난 총선에서 최고의 화제였고, 변곡점이었다. 그 지역구를 물려받은 이가 손 의원이라, 그와 관련된 문답이 이어진다.

"정청래가 손혜원이다, 그런 말 너무 싫어해. (웃음) 성향이 우리가 좀 정의롭고 정직하고 이런 게 비슷하니까"/ ("정치하면서 시원시원하게 말씀하시기가 어렵잖아요!")/ "진짜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저보다 정청래 의원이 훨씬 더 정치적입니다. 제가 훨씬 더 바보같이 그렇게 하죠. 전 모르니까."/ ("뒷생각 안 하고?")/ "정 의원은 저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더 전략적이게 하세요."/ ("손혜원 의원은 초선인데도 정치를 오래 하신 분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이가 많아서 그래". (웃음) "나이 많아서 겁이 없어서 그래요."

보좌진들 모두와 행사장을 찾아온 손혜원 의원은 복장도 그렇고, KTX를 예매해 놓은 '애매한' 상태라 논에 들어가지 못한다며 한동안의 응원을 마치고 돌아갔다.


#017. #018.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모를 심는 이들의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늦게야 찾아온 광주노무현재단 여성 회원 한 분이 막걸리와 안주를 들고 논에 들어가 참가자들에게 ‘한 잔’을 권하고 있다.


#019.

"어, 여기서 만나네요!" 02:00부터 시작한 오후 모심기에 참가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논에서 나왔다. 역시 예정에 없는 깜짝 방문으로 그와 우연히 만난 손혜원 의원이 인사를 나눈다.


#020.

논 주인 구재상 님 부부, 밑그림 모를 심기 위해 심었던 철주를 뽑고, 가로세로를 연결했던 노끈을 거두랴, 촘촘하게 심은 곳의 모들을 조정하랴, 모심기가 마무리될 무렵까지 부부는 논 이곳저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행사 참가자들은 하루 농부이지만 이들의 보살핌으로 '작품'은 완성될 것이다.


#021.

글자와 글자 사이, 여백을 채우는데 한 글자마다 두세 명씩이 투입된 오후 작업이 끝나간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작업이 끝날 무렵, 모심기에 참가한 이들이 펼침막 앞으로 모여 든다. 이상한 힘을 느끼는 순간이다.


#022.

"수고했어요!" 필자가 건넨 말이다. 오전과 오후 한시도 쉬지 않고 모심기를 한 후배에게 감사 인사. 후배는 아쉬움이 남는 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논둑에서 그가 논에서 나오는 마지막 장면까지 촬영하였는데, 그런 필자의 모습까지 드론 사진에 담겨 있다.


#023.

행사 참가자들에게는 하루, 밑그림부터 그린 이들에게는 4일에 걸친 작업이 마침내 끝났다. '깨어 있는 시민'(노무현)과 '행동하는 양심'(김대중), 오늘 우리가 새긴 열두 글자와 그 배경에까지 모를 심은 상태로 한동안은 제대로 새겼는지 알 수 없단다. 펼침막 한쪽에 나란히 선 두 대통령님은 이날 심은 논의 벼들을 바라보고, 이 모습을 뒤로 하고 우리는 논을 떠난다.


#024.

손으로 모심기, 손을 움직이는 노동이 핵심이지만 발이 쑥쑥 빠지는 논바닥에서 두 다리가 지탱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 두 다리가 다리가 되어준 덕분에 일을 마쳤다. 평지에 있는 논이기에 논두렁이 매우 좁아서 옆 논과의 경계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경작지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다.

모를 심는 사람, 모를 공급하는 사람, 새참을 내는 사람, 하루 행사를 기록하는 사람까지 숱한 이들의 발자국들이 논두렁에 흔적을 남겼다. 논둑에 머무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피고, 없을 때라야 맘 편하게 걷는 길이었다. 어쩌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간이역의 기차들처럼 조심스럽게 교행(交行)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 농부들이 숱하게 오가는 동안 논두렁은 흐물흐물 뭉개진 상태다. 그래도 좋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전국에서 참가한 이들의 관심은 1년 내내,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일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025.
하루 일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굴다리를 지나 시목노인정 앞 정자로 막걸리 한 잔을 하러 간다. '굴다리'라는 말을 듣거나 지날 때마다 굴다리는 왜 굴다리일까, 나는 물음표를 찍곤 했다. "물이나 협곡(峽谷) 따위의 장애물을 건너거나 질러갈 수 있도록 두 지점을 연결한 구조물(1)"이 다리다. 또한 ‘다리’는 "중간에 거치는 단계 또는 과정(2), 중간에서 양편을 소개하거나 관련을 지어 주는 일(3). 또는 그 사람(4)"이라는 뜻도 있다.

이런 다리인데 그 형태가 '굴'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굴다리'를 걸어서 '건너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그대 지치고, 작고 초라하다고 느낄 때)" 사이먼과 가펑클이었다, 중학생 때 자주 흥얼거렸던 팝송이 떠오른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Bridge Over Troubled Water>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이 집권한 10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다리였을까?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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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는 세 가지 이야기

하나. #027-1~#027-5

밑그림은 어떻게 그렸을까? : 4440㎡(1300평이 조금 넘는) 직사각형 논이 캔버스였다. 논 주인은 이양기로 논둑을 낀 테두리에 일정한 폭으로 모를 심었다. 그렇게 사각형 논 안에, 대략 가로 66m 세로34m인 사각 공간을 만들었다.

이 사각형은 다시 서너 줄의 모심기를 거쳐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었다. (고속도로에서 보았을 때) 윗줄 '깨어있는 시민'과 아랫줄 '행동하는 양심'을 새길 공간이다. 그리고 이날 그리기 작업의 실제 캔버스인 사각형 주변에는 '액자' 역할을 할(논 테두리의 벼와는 색이 구별되는) 모를 심어 놓은 상태다(육안으로 구별되지는 않지만). 여기까지를 논 주인이 작업했다.
 

행사 3일 전부터 광주 노무현재단 관계자 몇몇이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신동욱 작가로부터 받은 글씨(캘리그라피)를 어떻게 논에 옮길 것인가? 두 줄로 쓴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의 너비와 폭을 감안해서 "가로 66m×세로 34미터"가 확정되었다. 김용태 선생을 비롯한 사전준비팀은 글씨 도안에 가로세로로 선을 그어 공간을 분할하는 설계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로 선에는 영어 알파벳으로 세로 선에는 아라비아 숫자를 지정하니, 분할된 공간마다 좌표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도안에 따라 논에 글씨 윤곽을 옮길 차례, 농사용 철주와 노끈을 넉넉하게 구입했다. 그리고 2미터 간격으로 사각형 테두리에 그리고 사각형 안 곳곳에 일렬로 철주를 세우고, 철주와 철주 사이를 노끈으로 연결하여(물에 잠기지 않을 높이) 실제 논의 공간을 분할했다.

이제는 글씨 테두리에 한 줄로 모를 심을 차례, 설계도에 해당하는 도안이 물에 젖지 않게 비닐코팅을 한 다음, 이것을 하나씩 목에 걸고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3일이 소요되었다.

그림 모를 심을 때는 펼침막이 없었다. 해서 글씨 꼴울 잊지 않도록 곳곳의 철주에 원본 글씨를 게시해놓았다(027-1).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철주를 회수하고 노끈을 걷느라 논의 주인인 부부는 분주하게 움직인다(027-2,3,4). 논 곳곳에 일정 간격으로 꽂아놓았던 철주들이 뽑혀 한 곳에 모여 있다(0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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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028-1~#028-5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 이날 행사 참가자들이 입고 온 유니폼 가운데 눈에 띄는 두 모델이 있었다. '친노 친노 친노……‘라는 자잘한 글씨를 유니폼 앞뒤에 가득 새긴 것이 하나, 7주기 추도식에서도 자주 눈에 띄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슴 부위에 [노빠]라는 두 글씨를 크게 새긴 티셔츠(028-1)다.

행사장을 방문한 손혜원 의원은 당의 홍보위원장답게 이들 티셔츠 두 종에 관심을 표명했다. "그래 어쩌라고~", '친노' 프레임을 유포하고, 거기에서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들에게 대한 비판을 담은 셔츠가 아닌가! "□□라고 쓰고 ○○으로 읽는 것 아닌가요?" 재치 있는 농담들이 오갔다.

그러다 사진촬영을 하는데, 김정호 대표가 엄지와 검지로 만드는 하트 이야기를 하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연이어 촬영했다(028-2~028-5) 이날 행사장에서는 여럿이 모여 하트(♥) 하나를 크게 그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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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029-1~#029-5

어허, 으쩨야 쓰까~: 오후 4시 무렵, 갑자기 나타난 한 여인이 막걸리와 안주를 들고 열두 글자 사이를 누빈다. 광주 노무현재단 여성회원이다. 그렇게 논 곳곳을 누비면서 모를 심는 분들에게 한 잔씩을 돌렸다.
그런데 곧이어 행사에 참가한 분이 아이스크림을 선물로 가져온 것. 아이스크림은 녹기 시작하고, 이 여인은 다시 논으로 들어가 한 바퀴를 돌며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논바닥에 풍덩~ 그 아찔한 순간을 담았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어쨌든 한 사람의 실수가 모두를 한바탕 웃게 만들었다. 한때의 골프여제 박세리 선수를 무색하게 만든 이 여인의 투혼에 박수를. 어차피 옷을 버렸는데, 이후 이 여인은 이후 농촌마을 출신답게 끝까지 모를 심었다.

/사진:곽진영 편집위원, <인문의 향연>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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