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에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구에서 부르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

박승춘 보훈처장은 6월25일 한국전쟁 66년을 맞아 광주 금남로에서 호국 퍼레이드를 펼치겠다고 했다.

그것도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주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한 11공수부대를 참여시키겠다는 박승춘 보훈처장의 처사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 대구 김광석 거리.

하필 왜 금남로인가. 11공수부대 후배 군인들에게 광주 시민을 때려잡은 무용담을 들려주고 싶어서였을까.

‘임을 위한 행진곡’ 지정곡 문제로 벌집을 쑤셔 놓은 지 며칠이 됐다고 광주 시민의 감정을 자극해 무얼 얻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X같은 기분을 안고 대구 방천시장을 찾았다. 대구 방문은 난생 처음이다. 전남 화순에서 출발한 88고속도로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침을 굶어 출출했지만 여행지의 관광과 음식 따위의 즐거운 상상보다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름들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금남로 호국 퍼레이드와 디졸브됐다. 그런 불편한 인물들의 기억과 시간 속에서 허밍으로 부르기 시작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들 기억과 평행을 달렸다. 한 시대와 여러 인물들과 노래가 깊고 푸른 강물처럼 차창 밖으로 흘러갔다.

대구지역 문화예술인들과 만났다. 나름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 같은 형상을 한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와 위안이 됐다.

대구광역시 중구 인쇄·출판골목 풍경은 대한민국 여느 인쇄·출판골목과 형제처럼 닮았다. 근대 르네상스 중심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던 그 거리의 시간은 늙은 남자의 팔 새긴 쭈글쭈글한 문신만큼이나 서글퍼 보였다.

잿빛에 가려진 우울한 석양을 등에 지고 방천시장을 향했다. 그곳 김광석 거리에서 1994년에 발표한 노래 ‘서른 즈음에’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1996년을 보았다.

김광석의 나이를 전후한 연인들과 청춘들의 발길이 잦았다. 대로에서 밀려나고 빌딩에 억눌린 골목은 카메라 로우앵글에서 비춰진 영상처럼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진 느낌이 들다가도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귀환을 반기는 청춘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봤다. 모반을 꿈꾸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80년대 ‘임을 위한 행진곡’과 90년대 ‘서른 즈음에’ 노래가 담고 있는 시와 리듬의 정서는 닮은꼴이 많다. 자유와 생존에 대한 몸부림은 본질적으로 같다. 생명력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감동의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노래를 듣고 가수를 추억하고 가사를 음미하는 행위는 그저 순간의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다. 그것은 억눌리고 고통스런 시대의 무게를 담은 청춘들의 고뇌와 저항이다.

노래의 역사는 진화한다. 오래 살아남은 노래는 생명력이 길다. 그리고 그 시대에 맞는 색을 입히고 옷을 갈아입은 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영·호남이 함께 만드는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담론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일대일 비율의 소맥을 퍼마시지만 달달한 말 빨들로 인해 술이 취할 틈이 없다.

못된 욕망의 정치가 만들어 낸 대구의 달구벌과 광주의 빛고을이라는 이질적인 문명 사이에서 준비 중인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영호남이 하나 되는 새로운 모색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전국 곳곳에서 만나는 김광석의 거리, 다시 태어난 김광석 홀로그램, 뮤지컬 김광석처럼,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의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인공들을 만날 날이 곧 올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영화 제작을 위한 북 콘서트,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시작으로 수 만 명 수백 만 명이 영화 제작자로 참여하는 국민의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화순에 돌아와서도 김광석 거리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 거리를 상상해 본다. 광주를 뛰어넘어 전국적인 노래가 되기 위해서 선택한 곳이 ‘화순’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만의 노래가 아닌 억압받고 비통하게 죽어간 힘없는 전 세계인 노래다.

비록 노래의 역사와 가사의 의미는 차치하고서라도 시름 깊어지고 고단할 때 한잔 술에 냅다 튀어나오는 ‘아리랑’처럼 입에 착착 달라붙는 ‘임을 위한 행진곡’ 거리가 화순에도 전국 곳곳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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