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로 박찬욱 감독, 날개 없이 추락하다!

박찬욱 감독, 한 시절 그를 ‘정말 무서운 천재’라며, 그의 재능에는 놀라움으로 찬양했고, 그 작품의 잔혹한 장면에는 진저리를 쳤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수려한 그로테스크’라고 부르면서, 김기덕의 ‘막무가내 그로테스크’나 김기운 <악마를 보았다>의 ‘저열한 그로테스크’와는 달리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박쥐>부터 추락하는 기운이 맴돌았고, <스토커>에서 사정없이 추락했으나 ‘설마’ 했는데, 이번 <아가씨>로 그는 확실하게 추락했다.

▲ 영화 <아가씨> 포스터.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이영애가 만화 속 소녀 같아서 오히려 어색했던 점 말고는 모든 게 좋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그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뒤이어서 <복수는 나의 것>을 만났다. <공동경비구역>에 반한 나머지, 그 내용이 “무지 잔혹하다”는 소문은 내 안중에 없었다. 영화관으로 무턱대고 달려갔다. 그런데 어찌나 처참하게 잔혹한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가 포스트모던의 잘못된 수렁에 깊이 빠진 걸 그제야 알았다.

그 충격이 너무 심해서, 바로 그 다음 작품 <올드 보이>를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작품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대단했다. 개성이 강렬해서, 모든 게 독특하고 야릇했다. 일단 영화기술로는 ‘웰 메이드’다.

그러나 그 주제와 그걸 이끌어가는 연출 스타일이 싫다. 근친상간과 복수를 섬뜩한 폭행과 잔혹한 핏빛으로 몰고 가는데, 그걸 과감하고 강렬하다기보다는 사악하게 즐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퇴폐요 폭력이다. 서양이 낳은 현대문명의 정신병이다. 그게 ‘현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휩쓸고 있으니, 지금 이 지구촌이 얼마나 잘못된 수렁에서 헤매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 해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걸 비난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그의 핏빛이 낭자한 연출은 강렬했지만, 그 사악함에 교만까지 느껴져 그에게 실망했다.

<박쥐>는 성직자와 흡혈귀를 뒤섞어서 종교를 비판하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었지만,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자질구레한 재주를 자랑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스토커>는 죽도 밥도 아닌 맹탕으로 추락해 버렸다. 그러나 <공동경비구역>의 훌륭함과 <올드 보이>의 강렬함을 잊지 못하기에, 그가 교만에서 비롯한 자기 자랑을 멈추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아가씨>가 올해 칸-영화제에서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단다. 칸-영화제는 포스트모던한 현대예술을 추구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각광을 받는다는 건 “별로 재미없는 영화”라는 게 십중팔구이다.

그런데 아무런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하니, 오히려 ‘그가 대중재미를 갖춘 작품을 만들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동성애’로 참새들의 잡담이 소란스러웠다. 김민희는 너무 삐쩍 말라서 누드나 에로장면에 볼품이 없을 텐데? 게다가 박찬욱의 에로장면 솜씨가 아주 빈약하고 상투적인데? 의아스러움에 갸웃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동성애 에로장면이 치졸했다. )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23519&mid=30749#tab

<스토커>만큼 실망스럽지는 않았지만 많이 실망했다. 의상과 무대미술에 정성이 지극하다. 게다가 화면의 톤도 깊고 그윽했으며, 카메라의 앵글도 다양해서, 영상미가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아주 아름답다.

그 영상을 하나하나만 쪼개서 보면 더욱 깊은 아름다움이 우러난다.(때론 심오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칸-영화제의 서양인들은 매우 이국적인 미감에 특이한 에로틱 장면까지 곁들여져서 시각적인 환타지를 맛보았을 것이다. 그들의 기립박수는 아마 여기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다.)

하정우, ‘하정우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영화판을 휩쓸고 있다. 조진웅, <범죄와 전쟁>에서 주목을 받더니 급상승세를 타며 떠오르고 있다. 김민희, 괜찮은 배우에서 <화차>로 화악 떠오르고 있다.

김태리,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유명한 배우들에게 밀리지 않고 자기 캐릭터를 당차게 밀고 갔다. 중심배우들이 잘 이끌어갔고, 조연배우들도 흠잡을 게 없으며, 지나치다 할 정도로 강렬한 개성을 갖춘 박찬욱 감독의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왜 맹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제1부·제2부·제3부’로 세 조각으로 나눈 것이다.

그게 관객에게 색다르게 참신한 관점을 주어서 그 3가지 관점이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관객을 어지럽혀서 어리둥절하게 만들면서 영화 전체를 싱거운 맹탕에 빠뜨렸다.

영화 전체가 맹탕에 빠지니까, 나머지 좋았던 것들도 모두 허우적대고 만다. 그의 작품이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톡 쏘는 장면들>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23519&mid=30749#tab

짐작컨대, <올드 보이>에 수많은 찬탄이, 그를 잔혹스릴러의 최고봉으로 만들었지만, <스토커>와 <아가씨>의 추락을 가져왔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올드 보이> 앞쪽의 작품에는 그 치열함에 진정성이 느껴지지만, 뒤쪽의 작품에는 치열하다기보다는 잔재주를 피우고 자기 교만으로 배우나 관객에게 암암리에 갑질하고, 대중재미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으며, 그런 태도에 오히려 자부심을 갖는 듯하다.

이번 <아가씨>가 수지타산이 맞으면, 그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오만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 어떤 계기로, 그가 이러한 오만의 허울을 벗고 나아가서 포스트모던의 잘못된 수렁을 벗어나길 바란다. 그의 재능이 아깝고, 그의 태도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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