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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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통도사를 뒤로 하고 김해 봉하마을로 가는 버스 안, 뜻밖에 문재인 대표를 만난 광주 시민들이 옆 좌석의 동행과, 앞뒤 좌석까지 삼삼오오 나누는 얘기는 굳이 옮길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다만, 들뜬 기분에 미리 준비했다는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싶은 이들이 있는 듯한데, 봉하마을에서의 참배 일정을 마치기까지는 ‘금주령'을 선포한 상태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처럼 ‘준비된’ 우리 일행에게 뜻밖의 행운 하나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

‘지붕 낮은 집’으로 불리는 대통령의 사저는 지난 5월 1일부터 주말에 한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우리가 찾은 29일(일)은 그 마지막 날이었다. 게다가 사전 (인터넷)예약이나 이른 아침에 관람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경우가 아니고는 입장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참배를 마친 우리에게 뜻밖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날의 마지막 모듬 입장이 끝난 상태인데, 우리 일행이 관람할 수 있게 배려해준 것. 나중에야 "전라도 광주에서 버스 한 대를 대절해서 왔는데, 으째야 쓰것소!" 일행 중 한 분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고, 이를 만류할 수 없었다는 얘기를 앞서 3일간 봉하마을에 머물면서 사귄 자원봉사자에게 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예정에는 없던 사저까지 관람하는(그것도 마지막 날의 마지막 타임에) 행운을 누렸다.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입구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당부한다. 지난 한 달 동안 안내를 맡은 분들, 고생이 많았습니다. 고생한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해달라는 것, 덕분에 관람 내내 대통령의 사저는 감사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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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주차장, 대통령을 추억하게 만드는 탈것들이 모여 있다. 매스컴에서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진 소품들이니 긴 설명은 하지 않는다. 다만, 꼬마 굴삭기는 ‘현역’으로서 봉하 마을 친환경농업에, 마을 곳곳을 가꾸는데 쓰이고 있는데, 이번 전시를 위해 한 달 동안의 특별한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사저를 둘러보는 동안, 앞서 문재인 대표가 우리에게 들려준 얘기들을 떠올린다.
“대통령이 봉하로 내려오신 데에는 뜻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참여정부 때 한미FTA는 전체적으로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나 피해를 보는 분야도 있다. 대표적인 게 농업분야다.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마련해도 한계가 있어 농업 분야의 피해 때문에 가슴 아프고 미안해서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는데 도움 되라고 그런 마음으로 내려 와서 오리쌀 농법(을 시행하고) 등 농부의 삶을 사신 것이고…….”

또 하나는 지역구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었다. 두 가지를 위해 정치할 때 거의 지지해주지 않았던, 오히려 박대했던 고향을 찾아왔다는 대통령. 그래서일까, 소형이라 얼마나 힘을 쓸까 싶지만 ‘진행형’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굴삭기가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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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이드는 ‘오늘은 마침 산딸나무 꽃이 개화한 날’이라고 했다. 그날 우리에게 마련된 세 번째 선물이었다.

층층나무, 밤나무와 더불어 6월에 피는 하얀 여름꽃을 피우는 나무가 산딸나무다. 그런데, 이 나무는 2008년 11월 16일,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에서 보내주어 식수했단다. 앞서 문 대표의 집을 등지고 내려오는 길가 개울에서도 본 꽃(사진은 분실)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개울에 낙화한 산딸나무 꽃들이 동동 떠 있는 풍경을 담는데 없는 시간을 쪼갰었는데…….

산딸나무는 층층(層層)나무과(科)에 속하는 나무로 10미터 정도 자라는데 가지들이 층을 이루면서 자라는 것이 남다르다. 그런데 꽃필 무렵 멀리서 보면 꽃의 색깔, 꽃 피는 시기, 가지의 모양새 때문에 층층나무와 헷갈리기 십상이다. 봄의 산 곳곳에서 피어난 산벚나무 꽃들은 연두색 숲을 캔버스로 삼은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에 여름의 짙은 푸름을 배경으로, 산 곳곳의 산딸나무와 층층나무 꽃은 순백의 점을 콕콕 찍어 신비로운 풍경을 만든다.(6월 5일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바라본 해남 두륜산 일대의 풍경이 꼭 그랬다) 두 나무는 가지가 층을 이룬다는 점에서 생김새가 유사하고, 그래서 산딸나무는 층층나무과에 속한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제주 4,3항쟁에 대해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했고, 그것에 감사하는 제주도민의 마음을 담아 보낸 나무가 산딸나무다. 가이드는 사저(와 산딸나무)를 등지고 앞산을 바라보라고 한다. 삼각형 모양의 과수원이 보인다. 진영의 특산물인 단감 나무들이다. 과수원 중턱 어디쯤에 대통령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토굴이 있었다.

영화 <변호인>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은 오로지 ‘출세’하기 위해 공부했노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고, 사람들 모두가 평등한 삶을 사는데 헌신하게 된다.

평화는 평등을 전제로 이룰 수 있는 것, 층층나무과에 속한 산딸나무 곁에서 토굴이 있었다는 산 중턱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바람개비처럼 생긴 산딸나무의 네 장의 흰 것은 꽃잎이 아니라 포(苞)다.

네 장의 포가 꽃차례 바로 밑에 십(十)자 형태로 달려 꽃차례 전체가 한 송이 꽃처럼 보이는 것, 곤충들을 끌어 들여 번식을 하기 위해서다. <능엄경>이었던가, 달을 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는 검지손가락만을 본다는 가르침을 담은 불경은. 친노 프레임을 생각한다.

4ㆍ3 유족회가 산딸나무를 선택한 데는 연유가 있다. "산딸나무 하얀 꽃은 제주도민의 순수한 마음을, 가을에 열리는 빨간 열매는 4ㆍ3의 아픔을 상징한다."는 것,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난 다음 당시 산딸나무를 선물한 4ㆍ3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꽃이 피는 내년 5월에 다시 오세요'라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됐다고 탄식했다"고 한다.(<오마이뉴스>2009.6.8.
http://m.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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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사저에는 상록수들이 유독 많은데, 매실나무, 석류나무 등의 유실수와 여러 종류의 나무와 갖은 꽃들이 있다. 매실나무에 얽힌 사연은 널리 알려져 있기에 따로 소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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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프다. 대통령이 사저 '지붕 낮은 집'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다는 책상과 의자. 노 전 대통령은 주로 거실에서 작업을 했다. 컴퓨터와 책상 등 물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거실, 대통령은 모니터 하나는 자료조사용으로, 다른 하나는 집필용으로 사용했다는데, 그날 무슨 자료를 보셨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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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대통령이 주로 독서하거나 집필하거나 퇴임하고 나서 보좌진들과 민주주의와 진보의 미래 등에 대해 토론했다는 회의 공간이다. 서재에는 1000여 권의 책이 서거하기 직전까지 꽂혀 있었는데,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ㅁ자 마당에서 마지막 가이드의 해설이 진행되는 동안, 서재와 거실을 다시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의자는 자리를 상징한다. 자리에 걸맞게 의자도 제각각이다. 마땅히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을 위한 의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그 의자의 주인이 아닐까? 얼마 전에 내가 쓴 시 하나를 소개한다.

의자의 자리
- 곽진영

의자는 자리를 지키고
자리는 의자를 지키네

너는 지금 누군가를
지키고 있느냐
그런 적이 있긴 하느냐

의자는 묻고 또 묻고
내 발길은 그 자리에
한동안 묶여 있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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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형태의 하나인 'ㅁ' 자 구조다. 건축가 정기용 선생의 작품인데, 곳곳에는 노대통령의 생각과 고집이 들어가 있다고. 하늘을 볼 수 있는 ㅁ자 마당의 정원 구성이 대표적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한다.

서양화가 채움이라면 동양화는 비움이 특징이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를 떠올리게 한다. 마당을 거의 비운 상태인데, 물이 채워진 돌확 하나가 눈에 띈다. 화재를 예방하려는 목적(?)보다는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라고 한다. 퇴임한 우리나라 몇몇 대통령들에게는 아마도 이런 거울이 없는 모양이다. 하필이면 지난 5월 자서전 출간을 계기로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내세운 '전두환 씨'가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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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 촬영을 끝으로 일행들은 하나둘씩 ‘지붕 낮은 집’을 나선다. 해가 많이 기울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사저를 빠져나오면서 통도사 주차장에서 문 대표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당신의 집을 ‘아방궁’이라고 빗대는 언론에 대해 쓴 소리 섞인 농담을 했다. 아방궁 운운은 노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귀향했을 때 이 사저를 두고 운운한 것이 원조다. 그래, 그 규모가 문제이겠는가? 퇴임한 통치자가 머물면서 아름다운 꿈을 꾸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곳을 작은 궁궐이라고 할 수 있겠지.

김수영은 노래했다.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1965, <문학춘추>)라고. 창경궁의 비원을 살피고 나왔을 때를 떠올리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 그래, 크게 보자 담대해져야 한다. 다짐하는 내 앞에 드리운 키다리 아저씨의 그림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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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경남 양산의 매곡마을, 문재인 대표의 사저를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촬영한 사진, 개천 옆의 족구장이다. 코트가 풀 한 포기 없이 반질반질한 것이며 곳곳에 놓인 의자의 상태로 보아, 선수들이 시합하다 점심이라도 먹으러 간 것처럼 생각될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가끔씩 봉하마을의 젊은이들과 문 대표를 찾아와 매곡마을 젊은이들과 족구 경기를 한다면, 이곳이었을 것이다.

하루쯤이야 하고 갔던 봉하마을에서의 3일, 그리고 일주일도 안 되어 양산과 봉하마을을 다녀온 이튿날, 나는 광주의 거리를 걷다가 화정4동에서 펼침막 하나를 만난다.

봉하마을에서도 보았던 펼침막인데,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아직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영화로 보고 책을 봤던가. 책을 보고 영화를 봤던가? 광주극장에서 본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I've Loved You So Long>를 새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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