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 각종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5.18 광주민주항쟁 추모 행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 강남역 지하철역 여성 사망사건, 구의역 청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2016년 5월은 여느 해와 달리 추모의 달, 장미꽃이 만발한 계절에 국화꽃이 주인공이 된 달이 되어버렸다. 

이 5월에 희망을 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이미 본지 기사로 소개된 바 있는 지난 5월 29일 광주 시민 43인이 봉하마을 가는 길에 양산에 들렀다가, 문재인 전 대표와 만난 이야기를 사진과 에세이를 결합하여 소개한다. /편집자 주

#001-1.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전날 오후 네 시쯤 따가운 햇살 아래서 노래하던 그녀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간주가 끝나고 후반부가 막 시작된 즈음이었다. 이 한 곡만 촬영하자, 사진 촬영을 멈추고 연주 시작부터 객석에 앉아 핸드폰 동영상을 촬영하던 나는, 얼른 멈추고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눈물은 쉽게 전이된다. 숙연해지던 객석에서는 곧이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1979년에 발표된 곡. MBC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곡이기도 했다는 <작은 연인들>(권태수·김세화, 1979)을 부르는 이는 경남 창원에서 왔다는 가수 배진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전까지 그녀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나 ‘대통령님을 보낸 충격’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끼’를 살려 전국 곳곳 의미 있는 행사의 무대에 오른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불과 6일 만에 김해 봉하마을을 다시 찾아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나는 이어폰을 꽂고 일부만 촬영된 동영상을 몇 번이나 재생했다. 지난 5월 21의 부산에서 진행된 추모음악제에 비하면 소규모이고, 참가자들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지난 총선 결과를 떠올리면) 그 울림은 상당한 것이었다.

#001-2.

#001-3.

 

#002.

또 가자고요?: 3일간 봉하마을에 머문 이야기와 사진들을 포토에세이가 인터넷신문(본지)에 게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시간쯤, 한 지인이 전화하여 일요일에 봉하마을에 가는데, 동행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냥, 광주 시민들이란다.

7주기 추도식이 월요일이어서 그날 참가하지 못한 시민들이 주말에 참배하러 간다는 것. 사진도 좋고 글도 좋고, 너무너무 잘 읽었다는 칭찬에 나는 그러마고, 그렇게 하겠다고 동행을 약속했다. 봉하마을 추모기행의 가이드 역할을 하려던 기사 때문에 졸지에 가이드로 나서게 된 사연이다.

지난 5월 16일, 김해을 국회의원 당선자인 김경수 의원의 광주 번개 모임이 동구청 부근에서 있었다. 30여 명의 참가했고, 늦은 밤 마지막 술자리까지 같이 한 분, 그렇게 일면식이 있는 분이 무작정 버스 한 대를 대절했단다.

그리고 식대로도 부족한 참가비만을 받는 조건으로 참가자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기사님을 포함 43명이 한 버스에 오른 것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통도사 주차장에 차가 정차했을 때에야 관광버스 앞머리의 전광판에 찍힌 몇 글자를 보았다. [문재인 사랑 모임]인데, 주최자 몇몇과 기사님이 즉석에서 붙인 이름이란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있거니와 즉석에서 이름 하나가 이날 뜻밖의 ‘행운’을 가져오게 될 줄이야.

그런데 양산 통도사를 들렀다가 절집 구경을 좀 하고, 봉하마을로 간다던 버스가 양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 대표가 사는 집이 어떻고 하는 얘기가 들려온다. 탐문하니, 버스는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양산지 매곡동 ○○○번지 문재인 대표가 사는 시골마을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냥 소주방에서 소주 한 잔 먹다가 보고 싶으면 가면 되지 왜? 그렇게 조직된 여행”이라고 했다. 막지 마, 우릴 그냥 내비도(내버려 둬)! 코팅이 된 유리창이라고 해도 창밖 날씨는 아직 개지 않았다.

#003.

대체할 사진이 마땅찮다.: 지리산 둘레길이니 제주도 올레길이니 오솔길을 산책하는 시민들은 자연과 어우러져 한 장의 그림이 된다. ‘올레’란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 통상 큰길에서 집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말한다. 무작정 찾아간 길인데, 마을 입구에서 문재인 대표 집까지는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 1.5km, 걸을 수밖에 없다.

버스를 기준으로 치면 뜻밖의 올레길이다.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도 있고, S자 곡선으로 시원스럽게 휘어진 길 등 자연에 맞는 길이 이어진다. 때문에 행렬의 맨 뒤편에서 걷는 사람에게는 앞서 걷는 일행들이 시야에서 문득 사라져 나 혼자 걷는 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꽃들이며 사물에 신경을 쓰노라니 그것이 몇 차례 반복된다. 일행 중 몇몇은 배도 고프고 걷기도 숨차고 그렇게 뒤처지다가 낙오를 선언한다.

그러나 이날 머잖아 비록 집 정원은 아니지만 문 대표와의 만남이 기다릴 줄 알았다면 결코 멈출 수 없는 걸음이지 않았을까? ‘가로 본능’으로 ‘세로 본능’으로 열심히 우리 일행들을 뒷모습을 담았지만, 지금 그 사진들은 내게 없다. 그 사진들을 담던 장비도 내게는 없다. 대체할 사진이 마땅찮다.

#003-1.

#003-2.

빛고을 광주에서 왔어요!: 문 대표님 나오세요! 저희가 왔어요! 빛고을 광주에서 왔어요! 맨 마지막으로 문 대표의 대문 앞을 떠나면서 한 참가자가 포스트잇들을 문패 부근으로 모으고 있다. 아쉽지만 문 대표를 만나거나 집 안에까지 들어가 구경할 수 있는 행운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통도사 주차장에서 만난 문 대표가 들려준 집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제가 있었으면 ‘아방궁’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을 텐데, (웃음) 진짜 아방궁이에요. 집이야 볼품없지만 마당이 넓고 주차장 안쪽으로 계곡이 있는데 정말로 주변 경관은 진짜 아방궁 소리를 들어도 전혀 억울하지 않습니다.(웃음) 제가 2008년 2월 25일, 참여정부가 끝나는 비서실장 공관에서 이곳으로 이사왔어요.

그때는 도로 포장이 안 된 구간도 있었고. 그때 심정은 착잡했지요. 우리가 정권재창출을 못했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나빠서 마음의 상처도 굉장했고요. 이제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온 거예요. 그때 더 깊숙하게 지리산 자락쯤으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저축해놓은 게 별로 없어서 1년 정도 보내고 나니까 변호사는 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부산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며 세상 밖으로 나왔고 그게 오늘까지…….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 책 제목도 『운명』이라고 지었지요.

광주에서 여기가 굉장히 먼 길인데 시간을 내서 봉하 마을도 참배하고 저도 방문해주신 마음들이, 얼마나 간절하면 그럴까 생각이 들고요. 결국 우리의 간절함이 반드시 뭔가 이룰 겁니다. 이미 정치가 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꽃과 그 꽃. 또 만난 인동초: 나는 시인 고은의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선후배 시인들의 모든 시는 나의 선생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지만, 왜 그런지 대학생이던 80년대 중후반 문학청년 시절부터 그랬다. 해서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군이 관심사가 되는 무렵, 한국의 후보로 고은 시인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곤 한다. '올해도 또' 정도랄까? 그런데 한 편의 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 185편을 모은 『순간의 꽃』(문학동네, 2001)에 대해서는 찬사를 담은 리뷰를 쓰곤 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그 꽃」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시이며, 많은 독자들의 반응도 나와 다르지 않으리라. 언론에 비친 문 대표의 집은 평지에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굽이굽이 휘어진데다가 조금은 경사지기도 하여 숨이 차고, 앞에서 또는 뒤에서 일행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으랴, 길에서 만나는 풍경이며 이정표들(기록할 시간이 없으니까), 만개한 각종 꽃들까지 담느라 정신이 없다.

게다가 통도사에 가는 길에 진짜 ‘번개 모임’ 수준으로 결정한 여정이라 주어진 시간도 빠듯하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니 제대로 된 풍경을 담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기다리는 마을 입구까지 걷는 길 위에서는 조급함이 사라진다.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인다.

#004-1.

#004-2.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때 보았다, 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 꽃’이라고 특정 혹은 한정할 때는 조금 복잡해진다. 마음이 급해 어떤 꽃이 있음은 알겠는데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라고 이해할까? 실제로는 꽃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다.

전자는 김춘수가 노래한 꽃,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도 와서 나의 꽃이 되는 상황과 맥락이 통한다. 어쨌든 매곡마을을 빠져나오는 길에서 나는 그렇게 인동초 꽃이 한창 피어난 소담한 무리들을 보았다. 봉하마을에서와 같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

본래 그곳이 고향인 사람들이 은퇴하여 귀향하였건 입지를 보아 별장으로 하나 더 소유한 집이건,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만나는 집들은 단장이 잘 되어. 일반 농가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 집 담장에 핀 인동초 꽃이 특히 아름답다. 앞서 만난 개천 석축 사이에 핀 것들에 비해 나무 전체가 살집이 올라 있고 꽃잎도 토실토실하다. 어쨌든 이 꽃들은 내게 ‘그 꽃’이 아니라 그저 ‘꽃’일 뿐이다. 관리가 되는 꽃이건 관리가 필요한 꽃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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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2.

미디어 몽구의 ‘자랑질’: 인동초에 얽힌 얘기는 아직 소개하지 않은 것만도 서너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지난 5월 23일 오전 10시 봉하마을, 인동초를 촬영하고 습지 식물들을 살펴보는데, 제2정자라고 부르는 곳에 두 남자가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그 중 한 사람이 ‘몽구’(미디어몽구, 본명은 김정환)다. 80년 5월에 벌어진 처참한 광주 상황을 시(詩)로나마 전국에 알리자고 결성한 시동인 ‘5월시’, 고교 국어 선생 중 한 분이 동인이었고, 나는 81년부터 해마다 한 권씩 나오는 5월시 동인지를 통해 아련하게 80년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후 숱한 잡지를 만들면서 원고를 주고받는 관계로, 이 동인 소속의 시인들을 두루 만나게 되었다. 그 중 한 분이 『샘터』 편집장을 맡고 있던 박몽구 시인이다. 어쨌든 ‘몽구’라는 예명은 오랜 친구처럼 다가오고 그래서 반가웠다. 취재하다 따온 인동초 하얀 꽃잎 하나와 노란 꽃잎 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뭔 꽃인지 알아요?” “글쎄요.” “김대중 대통령을 상징하는 꽃이고, 귀향한 노무현 대통령이 ‘역부로’ 심은 꽃이래요.” 사연을 들려주니 가보잔다.
 

몽구는 꽃을 촬영하고 나는 꽃을 촬영하는 몽구를 촬영했다. 그렇게 다시 정자로 돌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정서불안인 사람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나중에 보니 바로 그 시각에 그는 자신의 트윗터에 이 사연을 짧게 올린 모양이다.

이 친구 말로는 ‘자랑질’, 내 반응은 ‘어허~’.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덕분에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지만 역시 이 프로그램 때문에 얼굴이 널리 알려진 몽구, 그래도 앞으로 탐사형 보도를 더 하라고 뒷모습을 촬영했다.

#006.

노는 아이들 소리는 역시 없다: ‘밤꽃 피는 유월에’라는 동일 제목의 시는 고재종 시인의 것도 있고 김용택 시인(‘섬진강 26’)의 것도 있다. 문병란 외 공저인 80년대 민족시인 신작선2의 제호도 『밤꽃 피는 유월에』(지양사, 1985)다.

이즈음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 안, 장성 갈재 부근을 지날 때마다 버스 안에서도 밤꽃 향기를 확연히 맡을 수 있는 정도였다. 마을 입구로 가는 길에서 만난 밤나무 한 그루는 꽃을 터트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휴일인데도 이 마을에서도 노는 아이들 하나 보이지 않는다.

“신난 간난, 모내기 끝난 마을에/ 밤꽃 향기 자욱합니다/ 엉덩이 여문 처녀애라곤 없는데/ 수컷내 같은 그 향기 온 마을을 덮다니,/ 괜스레 개구리떼 소리만/ 마을의 밤을 장악해버립니다/ 세상은 항시 옥신각신/ 욱신거리는 관철처럼 고단하고/ 머루빛 잘 저민 하늘은/ 그래도 지상의 땀방울들을 죄 거두어/ 서걱서걱 별밭을 일구어대니/ 시방 모든 것이 잊혀진들 대수겠습니까? 청명한 바람도 물결쳐와/ 지친 숨결을 왜 쓸어주지 않겠습니까.“(고재종 시인, 「밤꽃 피는 유월에」 전반부, 시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문학동네, 1997에서)

#007.

담쟁이는 오늘도 옆으로도 자란다.: 통도사 주차장에서 문 대표는 내면에 담아두었을 얘기도 꺼냈다. “광주 전남을 포함한 호남권에서의 대참패가 저에게는 아주 뼈아픕니다.” “이제 드디어 완전하진 않지만 부분적이나마 결실을 맺기 시작해서 이 지역구도가 상당 부분 깨지거나 완화가 되고 전국정당이 되었어요, 우리는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이렇게 호남 외 지역에서의 선전(善戰)을 화제로 할 때와는 다른 어조다. 호남이 한국 정치에서 소외되어 늘 많이 아파했다. 하지만 영남에서 민주당 깃발 들고 정치한다는 것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역 내에서는 왕따가 되거나 뺄갱이고….” 핍박받는 게 일이었는데 “이제 거기서 벗어나는 희망을 보니까” 좋다는 말씀. 비록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서는 참패했지만, 영남에서의 선전과 전국 전당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은 “아주 오래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호남 지지자들 각고의 노력”덕분이라고 했다.

문 대표의 집을 떠나 마을입구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는 길, 어느 블록 담벼락에 껌 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은 담쟁이를 만난다. 시인 도종환은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고 노래했다. 본인의 처음 생각과는 달리 재선에도 성공한 국회의원 도종환의 생각은 어떠할까? 그 벽을 넘어 선 것일까?

그러나 담쟁이는 위로만 오르는 것은 아니다. 작년 혹은 재작년에 한창 푸르렀을 담쟁이의 줄기들이 잘려, 벽의 일부가 된 듯 회색빛이다. 오른편 생기발랄한 담쟁이 순들이 왼편을 향하고 있다. 대표님, 어서 빨리 호남 민심과 지지를 화복하시라고, 담쟁이는 오늘도 옆으로도 자란다. 자꾸자꾸 자란다.

#008-1.

다시 길을 내려가다가 대문 밖 화분에 곱게 피어난 접시꽃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접시꽃 여린 잎이 살랑대는 것을 보고 있다.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 순례를 마치던 날의 실종자 유가족들을 떠올렸다. 특히, 다윤 엄마는 휠체어에 앉은 채 행진을 계속했는데,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겨우 겨우 버티고 있었다.

마침 이 시각에 더불어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팽목항을 찾고 있을 것이다(22명이 참여했다고 함). 어쩌다보니 이번에도 도종환 시인을 언급하는 시를, 마을을 떠나 통도사로 가는 길에 떠올렸다. 완성작은 아래와 같다.

<기다림>- 곽진영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그림 하나/ 신윤복의 기다림// 접시꽃 당신을 노래한 시인은/ 재선에 성공한 의원이 되었고/ 오늘은 초선으로는 마지막 날// 화분에서도 대견하게 피어난/ 접시꽃은 시방 기린 목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 반반 치킨처럼 지난 총선은/ 패자도 승자도 특정하기 오묘한/ 절반의 승리 혹은 절반의 패배//오늘 팽목항 찾은 초선들은 다짐한다지/ 접시꽃을 보며 은화 엄마의 절규를/ 휠체어에 겨우 앉은 다윤 엄마를 떠올린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않게 또 다시/ 4년 목 빼고 기다리는 일 없게/ 그런 비극이 되플이 되지 않게.

#008-2.

▲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일명 '기다림'.

#009-1.

#009-2.

이렇게 그늘이 되어주세요!: “오늘 뵙게 된 게 고맙기도 하고 뜻 깊게 생각되는 게 오늘이 제 국회의원 임기 끝나는 날입니다. 그래서 성당에서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초선 4년 임기도 무사히 마치고 그동안 대선 후보도 되고 무엇보다 우리 당이 전국 정당이 되면서 제1당이 된 것도 너무 고맙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날 뵙게 되니 정말 고맙습니다.”

문 대표는 이렇게 우리 일행을 만난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부산에서 진행된 7주기 추모음악회(노랑콘서트)는 작년 아니 여느 해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가했으며, 특히 이번에는 “추모만이 아니라 즐기면서 희망을 말하는 자리”라서 더욱 좋았다고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추도식도 밝은 분위기였다고 소식을 전하는 국회의원 문재인의 표정도 밝다. 파이팅과 박수갈채, ‘문재인. 문재인. 문재인.’을 연호하는 소리들이 뒤섞인다. 그렇게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한 개의 양산이 또 한 개의 양산을 문 전 대표에게 쏟아지는 햇빛을 차단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한 여성 참가자가 응원의 말을 던졌다.

“이렇게 (우리들의) 그늘이 되어주세요!”

나중에야 녹음 내용을 들으면서 이 한마디를 찾아냈다. 이 한마디에도 문 대표는 답변을 했다.

“23일 추도식 하는 날, 완전히 구웠습니다. 작년까지는 추도식 후에 묘역 참배하는데 내빈들 참배할 때까지만 인사했거든요. 그런데 돌아오려니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올해는) 내빈들 참배가 끝나고도 끝까지 남아 일반 시민 참배객들에게 노건호 씨하고 김해을 김경수 당선자라고 셋이 끝까지 남아서 인사를 드렸더니,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010-1.

#010-2.

#010-3.

본지에 광주 시민들이 양산 통도사에서 문 대표와 만난 기사가 소개되고, 나는 당일 촬영한 동영상 두 건을 다음의 한 카페(http://cafe.daum.net/moonfan)에 올렸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 회원들에게는 꼭 공유하고 싶은 순간이었기에. 나주시 산포면에서 한방 간장게장을 담아 판매한다는 한 여성 참가자가 핸드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이다.

현재(8월 3일 15:00)까지 조회수 679회로 반응이 상당하다. 이 동영상은 다음tv팟에도 동시에 올랐는데, 조회수가 1189회, ‘문재인’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최근 게시물 가운데 조회 수가 가장 많았다. 카페의 댓글 반응도 뜨거웠다.

‘잘 봤습니다. 동영상 보니 잠이 확 달아나네요.’ ‘보는 동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정치권 뉴스를 접하면서 이런 느낌 받는 게 참 어려운데, 문 대표님으로부터 좋은 추억이 쌓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뉴스 기대하고 행복해지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뒤에 양산 씌워주신 분 센스 있으시네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광주 분들의 정성에, 대표님께서 큰 힘을 얻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광주 분들 고맙고요~^^ 뭔가 희망이 보이네요~’ ‘우와 감동입니다 찾아오신 광주 분들과 그분들을 만나러 손수 가신 대표님~ ♡♡멋지고 아름답습니다.’(로그인과 가입이 필요한 카페이므로 닉네임은 생략함)

주차장에서의 첫 만남, 대화를 나누는 동안의 표정, 주차장을 떠나는 모습 세 장면에 나타난 문대표의 표정은 말이 필요 없게 한다. 이날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011-1.

#011-2.

그래도 좋아!: 사실 갑작스런 여행에 흔쾌히 따라 나선 데에는 통도사를 돌아보는 여정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불상이 없다는 통도사 적멸보궁의 면면을 직접 살피고 싶었다.

한국미술사는 곧 한국불교미술사라고 할 수 있는데, 통도사 적멸보궁의 천정에 아로새겨진 조형들이 간직하고 있는 의미는 특별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까지 거슬러 오르는 문양(文樣)의 맥을 잇고 있는 것, 지금이야 서울을 떠나 거의 참여하지 못하지만 나는 3년가량 매주 수요일이면 강우방 원장(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조형해석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는데, 『한국미술의 탄생』(이라는 다소 ‘오만한’ 이름의 저서)에 그 이론이 담겨 있다.

통도사 적멸보궁 천정의 조형은 이러한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라고, 재작년의 강의에서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통도사 주차장에서 만난 문재인 대표가 통도사를 소개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 행운 때문에 주차장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입장할 수 있는 성보박물관에도 들르지 못했다. 그토록 가고자 했던 통도사에 이르렀다가 사찰 입구의 구름다리만 건넜다가 건너왔을 뿐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우리는 이제 봉하마을로 간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

#012.

▲ 나해철 시인이 어제(2일) 페이스북에 올린 시를, 최근에 촬영한 내 사진을 배경으로 소박하게 앉혀보았다.

/사진: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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