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열두 달은 5월이다.

6월이다. 5월은 과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으며 생난리를 쳤다. 솥뚜껑 삼겹살 불판처럼 달아오르던 5.18 추도식은 객지에서 나눈 풋사랑처럼 기억에도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사랑과 불륜, 외설과 예술 사이에서 게거품을 물더니 슬그머니 합의를 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짐 길레스피 감독)’ 영화 제목처럼 국민들은 지난 5월 거품을 물었던 당신들의 입과 걸음걸이를 기억하고 있다.

6월의 나무숲 그늘에 몸을 감추지 마시라. 그렇다고 5월은 가지 않는다. 80년 5월의 기억에 멈춰있는 어느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처럼 대한민국은 1년 12달이 5월이다.

오해(誤解)와 곡해(曲解) 사이의 변명.

▲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씨가 쓴 최초의 악보.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두 단어가 갖는 의미는 알쏭달쏭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의미 해석의 좋은 말처럼 들리고 나쁘게 말하면 딱 부러지지 못하고 말 꼬리 뱅뱅 돌리는 변명처럼 들린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쟁의 중심에 있는 국가보훈처 박승춘 처장의 반응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다. 오해처럼, 실수로 잘못 생각하고 판단했다면 다소 협상과 대화의 기대를 걸어 볼만도 하는데 뭔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면서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국가지정곡 제1호 상징성’ ‘국론분열’ ‘보훈단체와 애국단체 결사반대’ ‘주빈으로 참석하는 대통령 또는 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총리 등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부담감’

이러한 이유들이 과연 임을 위한 행진곡 지정곡 불허에 대한 답변으로 맞는 것일까 싶다. 부정을 위한 부정을 하기엔 어딘가 어설프다. 그래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쩨쩨하게 굴지말자.

국가지정곡 제1호 상징성? 광주는 별 관심 없다. 국론분열, 보훈단체 결사반대? 큰 일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정도 반대는 미덕이다. 주빈 참석으로 인한 제창 부담감? 노래교실 선생님 과외 받으면 된다. 그것마저도 눈치 보이면 노래방 가요 목록에 넣어 혼자서라도 연습하면 해결된다.

아주 쉽잖아.

그런데 그런 이유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군인출신인 국가보훈처장의 개인적 입장과 군대라는 조직사회의 명예와 의리가 처장의 발목을 잡았으리라는 대목에서 인간적 이해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선배 군인들이 국가의 군대를 동원해 저지른 만행은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것이란 것쯤은 최소한 알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다소 늦긴 했지만 이쯤에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군대의 전통과 명예는 적군과 전투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자국민을 적으로 해서 얻어지는 경우는 어느 역사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결혼식 축가였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중 ‘새날이 올 때까지~’를 ‘새누리 올 때까지~’로 개사를 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양반, 상놈이 사용하는 언어가 따로 있나? 말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얄미워 웃자고 해 본 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의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시에서 따 온 가사다.

시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문학이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느끼는 감정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예술로서의 생명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또한 다양한 시적 해석이 가능하다 국정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님’이든, ‘임’이든, 연애의 아픔이든, 조국이든, 부처이든, 희생자들의 넋이든, 그냥 본인들 감정대로 받아들이시라. 그게 진정한 자유고 민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영혼결혼식 축가였을 뿐이다. 다만 노래가 좋아 입에서 입으로 불러지면서 시대의 유행가가 됐을 뿐이다. 언젠가는 결혼식장에서 결혼축가로 불러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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