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찾아갔다. 사전에 약속도 없었다. 광주지역 일반 시민 40여 명으로 구성한 ‘봉하마을 참배단’은 29일 오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자택이 있는 경남 양산시 매곡마을로 향했다.

광주에 사는 김진태(58) 씨가 한 달쯤 전 지인들과 만나 노무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봉하마을에 참배하러 가자고 제안한 게 계기였다. 가는 길에 문 전 대표의 집에 들르자는 얘기가 나왔다. 중간에 통도사도 둘러보기로 했다.

김씨는 “‘무작정 방문’이 실례라는 지적도 나왔고 한편으론 연락하고 찾아가는 게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며 “하지만 문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드리기 위해 못 만나더라도 조용히 다녀오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 29일 경남 양산시 매곡동 문재인 전 대표 자택을 방문한 시민들이 대문에 붙여놓은 포스트잇 응원 글. ⓒ광주인
▲ 광주시민 40여 명이 29일 경남 양산 매곡동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자택을 방문하고 있다. ⓒ광주인

△ ‘무작정 양산행’…“문 전 대표 못 만나도 좋아”

김씨를 비롯한 지인들은 각자 입소문을 내고 함께 갈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모인 시민은 모두 43명. 이들은 관광버스를 빌려 이날 오전 7시 광주 염주체육관을 출발, 문 전 대표의 집이 있는 경남 양산시 매곡동으로 향했다.

시민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광주에서 280km를 달려 이날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매곡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산자락에 있는 문 전 대표의 집까지 남은 거리는 1.5km.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라 관광버스는 들어가지 못했다. 시민들은 버스에서 내려 20분 남짓 골목과 계곡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대운산 초입 돌담 축대 위에 자리한 별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문에 내걸린 ‘金正淑·文在寅’(김정숙·문재인) 문패를 보고 문 전 대표의 집임을 다시 확인했다.

머뭇거리던 한 시민이 용기를 내 초인종을 눌렀다. 일부 시민은 “문재인 대표님”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집에 사람이 없는지, 일부러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아무 인기척 없는 문 전 대표 자택

“문 전 대표님 얼굴이라도 보고 가면 좋겠지만, 안 계시나 보네요. 집 앞까지라도 왔다는 데 만족하고 돌아갑시다.”

김씨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시민들도 안타까워하며 대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돌아섰다. 일부는 포스트잇에 응원글을 적어 대문에 붙였다.

‘대표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세요’ ‘대표님! 사랑합니다.’ ‘삶이 외로울지라도 목표를 향해 건강하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노란 포스트잇이 대문에 붙어 나부꼈다. 김씨는 ‘광주에서 왔다’며 ‘광주광역시’와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기도 했다.

시민들은 다시 마을입구까지 1.5km를 걸어 관광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통도사로 이동했다. 경남 양산시 영축산에 있는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佛寶) 사찰로 유명하다.

▲ 문재인 전 대표가 29일 오후 1시40분께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 도착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광주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운전하고 왔다. ⓒ광주인
▲ 문재인 전 대표가 29일 광주시민들을 만나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광주인

△ 통도사 가는 길, 낯선 전화

시계는 낮 12시를 훌쩍 넘겼다. 4시간 넘는 오랜 버스 여행에 점심도 먹지 못한 승객들은 하나둘 눈을 붙였다. 그때 김씨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였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김씨의 목소리가 환해졌다. 그는 관광버스 안내방송을 통해 통화 내용을 알렸다.

“방금 문 전 대표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표님이 집에 들어가시려다 대문에 붙은 포스트잇을 보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저희가 통도사로 가는 중이라고 하니 직접 통도사로 오신다고 합니다.”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한 시민은 “로또 맞은 것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매곡마을에서 통도사까지는 약 40km. 문 전 대표는 40여 분 뒤에 도착하기로 했다. 시민들은 통도사 주차장에 좌판을 깔고 집에서 싸온 음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40분, 통도사 주차장에 문 전 대표가 그레이색 기아차 쏘렌토를 직접 운전하고 들어섰다.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문 전 대표를 맞이했다. 검은색 바지 정장에 회색 재킷을 입은 문 전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일일이 인사했다.

“오늘 뵙게 된 게 굉장히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조용하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의 매일 다니는데 오늘 모처럼 쉬는 날로 잡았거든요. 쉬는 날 성당 가서 미사 참배했는데, 오늘은 성당에서 바자회를 하는 바람에 마치고 바자회 기웃기웃하느라 조금 늦었더니, 그 사이에 다녀가신 거예요. 그래도 전화번호 남겨놓으셨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게 됐습니다.”

△ “고 노무현 대통령 7주기 희망을 말하다”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 7주기를 잊지 않고 찾아준 광주 시민들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올해 고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이 월요일이어서 그때 못 오신 분들이 일요일을 이용해 오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고 추도식 자리도 추모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신나게 흥겹게 즐기면서 희망을 말하는 그런 자리가 됐는데,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다’를 콘셉트로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을 슬로건으로 추모식을 치렀습니다.”

문 전 대표의 얼굴은 구릿빛으로 평소보다 검게 탄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23일 추도식 하는 날 참배객들에게 인사하느라 ‘꾸웠다’고 설명했다.

“작년까지는 추도식 마치고 묘역참배를 하면 내빈들까지만 인사를 드리고 일반 국민들 참배하는 순서에는 그냥 와버렸는데, 저는 그게 영 마음에 걸렸어요. 올해는 저하고 노건호씨, 김해에 당선된 김경수씨가 일반 국민들 참배할 때까지 끝까지 남아 일일이 인사를 드렸더니 완전히 땡볕에 꾸웠습니다. 그래도 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9일 오후 경남 양산 통도사를 방문해 광주시민들과 만남을 갖고 환하게 웃고 있다. ⓒ광주인
▲ 문재인 전 대표가 29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주차장에서 광주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광주인

△ 국회의원 임기 마친 문재인 “정권교체” 올인

이 날은 문 전 대표의 19대 국회의원 임기 마지막 날. 지난 4·13총선에서 불출마하면서 문 전 대표는 외견상으로는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그는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는 게 시원섭섭하다. 많이 시원하고 조금 섭섭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4년 임기동안 초선이었는데 대선 후보가 되고 사랑받고 제1야당 대표도 하고 우리당이 전국정당으로 제1당이 되는 모습도 봤습니다.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데, 이런 날 뵈니까 더 뜻 깊게 생각됩니다.”

그는 4·13총선 불출마 배경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불출마의 가장 큰 이유는 ‘정권교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불출마한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다른 정치는 다 관두고, 오로지 2017년 정권교체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그것으로 제 정치를 마치겠다, 또 하나는 여의도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나 국민들 속으로,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불출마한 겁니다.”

시민들 속으로 들어간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쉽지만 갇혀있는 여의도 정치에서 벗어나 이제는 제가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제 페이스대로 시민들 만날 수 있게 됐다”며 “과연 이걸 어떻게 잘, 창의성 있게, 구태의연하지 않게 할 것인가가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카메라 몰고 다니면서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정성 가지고 시민을 만나는 그런 식의 행보를 조용조용하게 해나가면 그게 오히려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시기와 관련해서는 “아직은 조금 조심스럽다. 전당대회까지는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 같고 전당대회 끝나면 조금 더 힘차게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좋은 아이디어 언제든 보내주시면 호남도 자주 가고, 호남뿐만 아니라 경북, 충청, 강원도 자주 가겠다”고 덧붙였다.

정권교체와 시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결국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힘을 쏟겠다는 말로 귀결된다.

문 전 대표는 “궁극적 목표는 결국 내년도 정권교체에 제가 역할을 하든, 제가 보탬이 되든 어쨌든 힘을 보태서 기필코 정권교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 문재인 “4·13총선서 더민주 호남 밖 역량 커져”

문 전 대표는 4·13총선 결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더민주는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8석 중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호남 전체를 따지더라도 28석 중 3석 확보에 그치는 등 호남에서 참패했다. 반면 수도권과 비호남 등에서 선전하면서 전체 123석으로 원내 제1당이 됐다.

그는 “광주 전멸을 포함해 호남쪽의 대 참패, 그것은 우리에게 또 저에게 아주 뼈아프다”며 “그 대신에 영남을 비롯해서 비호남지역에서는 정말 우리가 꿈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 5석, 경남 3석, 대구 2석, 강원에서 1석을 얻었고 우리당 후보는 아니지만 우리와 함께 단일화한 후보가 경남에서 1명, 울산에서 2명이 당선됐다”며 “그 덕분에 우리가 단숨에 전국정당이 되면서 제1당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호남에서 선거결과 보고 호남민들 스스로 놀랐다는 말씀을 듣는데 영남은 영남대로 그 결과 보고 또 스스로 놀라면서도 고무받고 사기가 높아졌다”며 “중간층 분들도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져 이제는 뭔가 해보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결국 호남 밖에서는 우리의 정권교체 역량이 과거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라며 “이 역량을 키워나가면 호남에서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국민들이 도저히 새누리정권 안되겠다, 그렇게 완전히 분노투표로 심판해 정권교체를 명령하신 것”이라며 “정권교체에 앞서서 의회권력부터 교체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들이 만들어준 아주 소중한 희망을 우리가 잘 키워나가고 좀더 책임지는 모습, 더 유능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제는 우리가 원래 잘하는 민주주의나 인권, 복지, 남북평화, 지역균형발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도 민생도 안보도 우리가 훨씬 유능하다는 걸 보여주면, 국민들께서 우리를 선택해주실 거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 문재인 전 대표가 29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주차장에서 광주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광주인
▲ 문재인 전 대표와 광주시민들이 29일 통도사 주차장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진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주인

△ “많은 분들이 연락없이 찾아온 건 처음”

이 날 만남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극적으로 진행됐다. 양산 자택을 찾은 시민들도 ‘실례’는 아닐까 걱정반 기대반으로 방문했고 문 전 대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문 전 대표는 지금까지 40여명 넘는 많은 시민들이 연락도 없이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예전에 대전에서 한 팀이 오셨는데, 그때는 사전에 연락이 있었고, 이렇게 많은 분이 한꺼번에 아무 연락 없이 오신 건 처음입니다. 가끔 몇 분씩 연락 없이 오시기도 하는데, 전남 강진이나, 전북 등에서 오시는 분이 있었어요. 그때는 제가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대문 앞에 뭐 하나씩 놓고 가시기도 합니다.”

그는 시민들이 자택으로 찾아오면 만나느냐는 질문에 “아니, 그렇게 멀리서 오셨는데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정말 와 주신 게 저에게는 아주 큰 격려가 된다”며 “제가 이 고마운 것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김덕심(55)씨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 중산층이 살아있는 민주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써서 대문에 붙여 놓았다”며 “문 전 대표님이 광주 오시면 막걸리라도 편하게 드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 힘내시라”고 말했다.

이름을 적지 말아달라는 김아무개(42)씨는 “호남지역민들은 더민주가 밉고 싫어서가 아니라 아끼는 장자인데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애증 관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이 준 황금 같은 기회를 잘 활용해 정권교체를 이뤄내면 다시 호남지역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들과 만남이 끝난 후 문 전 대표는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화답했다. 지나가던 양산 시민과 매곡마을 주민들 일부도 문 전 대표와 인사하며 사진을 찍었다.

40여 분 간의 만남 끝에 문 전 대표는 다시 운전을 하고 차를 돌렸다. 시민들은 “힘내시라”며 박수와 환호로 문 전 대표를 배웅했다.

문 전 대표와 기념사진을 찍은 신숙영(54)씨는 “통도사까지 직접 운전하고 찾아준 문 전 대표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꿈같은 일을 경험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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