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5·18 광주항쟁과 위선자
[이기명 칼럼] 5·18 광주항쟁과 위선자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16.05.1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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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5·18 그 날이 왔다. 광주가 민주투쟁의 깃발 아래 피투성이가 되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했느냐. 부끄러워 말을 할 수가 없다. 전두환이 광주를 찾는다며 예우를 요구하고 있다. 역시 부끄러움에 고개를 못 든다.
 
■ 4·19와 5·18
 
5·18 당시 도청에서 무기를 관리하던 소년을 어른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어머니는 집에서 꼼짝 말라고 했다. 그러나 소년은 집에서 사라졌다. 얼마 후 도청 앞에 다시 나타났다. 어른들이 야단을 쳤다. 소년을 울면서 호소했다. 난 여기 있을래요. 소년은 그 후 영원히 집에 갈 수 없었다. 광주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가슴이 미어진다.
 
4·19혁명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당시 16세의 한성여중 진영숙(16세) 학생의 마지막 편지다. 진영숙은 4·19 그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가방을 두고 시위현장으로 갔다. 그가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는 유서였다.
 
어머님께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뻐해 주세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 (사진 왼쪽)1980년 5월 29일 망월동에서 일제히 진행된 1백 29구의 장례식.‘폭도’라는 이름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통제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유족들의 슬픔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사진 오른쪽) 독일 ‘슈피겔’지에 실린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 사진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를 절묘하게 대비함으로써 광주의 아픔을 전 세계인에게 전해준 5·18의 상징적인 사진 중 하나다.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광주 5·18 묘역에 가면 묘비마다 한 인생의 역사가 있고 광주의 역사가 있고 한국 민주주의 역사가 있다. 상석에 발을 올려놓는 철면피의 역사도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도 그들의 말을 살아있는 자들이 기억하고 전한다. 죽은 자들은 거창한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답게 살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들에게 전두환은 총을 쐈다. 살인이다. 집단살인이다.
 
■ 전두환, 예우를 바라는가
 
전두환은 사과해야 한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사과를 안 한 사과까지 해야 한다. 5·18 국립묘역에서 두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 예우를 바란다고 해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예우는 받을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할 사람이 해야 한다. 예우받을 자격이 있는가. 죄 없는 국민을 학살한 죄인이 무슨 예우를 바란단 말인가. 그 옆에 전두환과 더불어 광주학살을 주도했던 자들도 모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 될 사람은 또 있다.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아낌없이 찬사를 바쳤던 사람. 전두환에게서 훈장을 받은 사람, 그는 지금 호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자임하고 있다.
 
왜 호남은 그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가. 진정한 호남의 지도자라서 그런가. 영원한 비서실장이라서 그러는가. 몸이 불편한 이희호 여사까지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지도자가 호남에는 정녕 필요한가.
 
김종인의 국보위 전력은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전두환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그를 찬양한 사람은 의원 배지를 달아야 하는가.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같은 위선자들을 응징하는 게 바로 5·18의 정신이고 광주정신이다.
 
■ 5·18을 모욕한 자들은 누구인가
 
5·18 광주학살 이후 처음으로 망월동을 방문했을 때 참담함과 죄스러움을 기억한다. 광주시민들이 총탄에 맞아 죽어갈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저기 철조망 넘어 복면을 한 폭도들이 총을 들고 서성거린다’

▲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조선일보 김대중 기자의 기사를 보며 우리는 독재와 투쟁하는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했고 어느 언론도 총탄에 쓰러져 가는 광주시민들의 참극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렇게 믿었고 전두환을 광주시민들이 흘린 피바다 위에 호화선을 띄우고 대통령이 됐다.
 
부산에서는 노무현과 문재인이 광주비극의 비디오를 구해 가톨릭 회관에서 최초로 공개함으로써 부산에서도 광주의 비극을 알게 됐다. 그런 노무현과 문재인은 호남에서 매도됐다. 이토록 진실의 눈을 가린 범인들은 누구인가.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채우기 위한 권력중독자들의 소행이다. 그것이 바로 숭고한 5·18 정신과 깨어있는 호남을 모욕하는 것이다. 틀린 말인가.
 
■ 5·18 정신을 살리는 길

 
해마다 5월이 되면 5·18 광주민주화 투쟁은 불꽃처럼 살아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5·18 국립묘역은 전국에서 찾아 온 진정한 민주국민들과 얼굴만 비치는 사이비 정치꾼들로 붐빈다. 묘비를 어루만지는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싶은 영령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4·13 총선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호남에서는 ‘더민주’가 전멸했고 국민의 당이 휩쓸었다. 광주에서 물어봤다. 당연하다는 얘기다. ‘더민주’를 어떻게 찍어주느냐고 했다. 국보위 출신이 당의 대표고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회담을 폄훼하고 광주와 호남의 공천을 엉망으로 하고 스스로 셀프공천 2번을 차지하고 국민이 열광하는 ‘필리버스터’를 중단하는 정당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물을 것이 있었다. 전두환을 찬양하고 훈장을 받은 국민의 당 지도자는 어떻게 당선시키느냐고. 대답을 못했다. 4·19와 5·18 민주투쟁을 정강에서 제외하자는 사람이 대표인 정당을 그토록 지지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역시 대답을 못 했다. 국민의 당은 호남에서 한시적 정당임을 강조했다. 국민의당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 1980년 5월 전남 도청 앞 광장에서는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 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열고 대대적인 횃불행진을 벌였다.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호남은 이 나라 정치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향타가 됐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광주에 내려가 자신들이 호남을 위한 적자임을 역설한다. 호남인들과 아니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5·18은 광주만의 5·18이 아니며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부심이다. 국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 함께 부르며 다시는 이 땅에 독재가 발을 못 붙이고 보통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가 되도록 결의를 다진다. 권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목줄을 쥐고 있다. 그래도 좋다. 이미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민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항상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함께 부르자.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우리는 산 자다. 살아 있는 자는 5·18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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