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제창 불허…정치권·시민단체 등 반발

국가보훈처가 올해 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도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불허하면서 광주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9년 제창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일각의 문제제기에 따라 합창으로 전환된 뒤 8년째 5·18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지 못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와 광주시민사회단체 등이 16일 오후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한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광주인

국가보훈처는 16일 “올해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식 식순에 포함해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참석자 자율 의사’를 존중하면서 노래에 대한 찬반 논란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정부기념식이 국민 통합을 위해 한마음으로 진행돼야 함에도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자에게 의무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도록 강요해 또다른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지난 13일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관련해 긴급회의에 들어갔으나 결과는 기존 입장 재확인에 불과했다. 5·18공식 기념곡 지정도 거부 입장을 고수했다.

5월단체 참석해 항의…시민사회 불참

광주시민사회단체는 올해 기념식에 불참하고 5월 3단체(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는 참석해 국가보훈처에 항의하기로 했다.

제36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박근혜 정부에 변화를 기대했던 광주시민들과 우리 국민들은 분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허탈할 뿐이다. 이번 결정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 5·18에 대한 폄하와 왜곡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줬다”며 이 같이 말했다.

5월단체는 “그동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더니 보훈처가 가짜 유족들을 기념식장에 버젓이 앉혀놓고 가짜 기념식을 열어왔다”며 “올해는 이걸 방관할 수 없어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방식으로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대부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정영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기념식에 참여하는 5월단체와 유가족들의 뜻을 존중하되 시민사회단체는 거부할 것”이라며 “반쪽 행사가 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공동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일제히 비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도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야권은 청와대 회동 이후 ‘소통과 협치’ 무드가 백지화됐다며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재고를 요구하고 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 제출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더민주 광주시당은 “국가보훈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기념식 ‘제창’을 즉각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광주시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박근혜 정권의 ‘말 바꾸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끝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 대통합의 길을 스스로 외면했다”며 “소통과 협치를 강조한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불통과 독선으로 돌아선 박근혜 정권은 아직도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국민의당 광주시당도 논평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 결정은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역사 앞에 다시 한 번 죄를 짓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광주시당은 “‘님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과 제창요구에 합창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박 대통령과 국가보훈처의 결정에 대해 148만 광주시민과 함께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광주시당도 논평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하고 국민적 합의로 개최되고 있는 기념식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라며 “국가보훈처를 강력히 규탄하며 36주년 기념식에선 제창 방식으로 불릴 수 있도록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나서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광주시의회 침묵시위, 윤장현 시장 '유감'

지역 정치권도 정부의 제창 거부 방침을 규탄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재고를 촉구했다.

광주시의회 의원들은 시의원 전원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5·18민주묘지 ‘민주의 문’앞에서 당일 오전 9시부터 침묵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윤장현 광주시장도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국가보훈처가 ‘찬·반 논란으로 인한 국론 분열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창을 불허한 것은 민주·인권·평화의 ‘광주정신’, 나아가 4·13총선에 보여준 국민의 뜻에 반(反)하는 것”이라면서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폭압적인 군사정권 아래서도 불려왔으며, 광주만의 노래가 아니고 민주·인권·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와 억압받는 모든 이들이 보편적으로 불어온 노래”라며 “특정 권력, 특정 세력이 (제창을) 막을 수도 막아서도 안된다”고 밝혔다.

박주선 국민의당 광주동남을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권이 또다시 합창으로 하기로 한 것은 총선 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박 대통령의 고집을 더 이상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합창은 되고 제창은 안 된다는 것은 한낱 코메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광주북갑 당선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국민의 뜻을 받들고 진정으로 국민의 통합을 바란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하루 빨리 5·18 민주화운동의 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면서 “36주년 기념식에서 제창될 수 있도록 정부의 입장변화를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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