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라 국민이 지킨다

‘저러다가 괜찮을까’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야’ ‘설마 손석희를 어쩌려구’
요즘 어버이연합 관련 소식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손석희를 걱정한다. 역시 한국적 현상이다. 슬프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시선은 팽목항으로 쏠렸고 언론의 보도도 세월호에 집중됐다. 그때 바닷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팽목항 현장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손석희를 볼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팽목항 현장에서 세월호에 매달린 것은 손석희와 이상호기자, 팩트TV의 생중계였다.
 
‘어버이연합’은 이제 여러 가지 의미에서 거물이 됐다.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여러 의혹이 있었는데 뒤에는 든든한 돈 줄이 있었다. 한 번 출동에 2만원이라면 ‘애개 겨우 2만원?’ 할지 모르나 한두 번이 아니고 그 많은 식구에게 주려면 한두 푼이 아닐 것이다.

▲ 손석희 JTBC 사장. ⓒ문화방송 누리집 갈무리

배후는 있었다. 전경련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라면 보통 단체인가. 우리나라 유수의 경제인들이 모인 단체며 건물만 봐도 빵빵하다. 바로 이들이 지원한 돈이 탈북할아버지들에게 일당 2만원으로 지급된 것이다. 처음 5만원에서 2만원으로 깎였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데 2만원이 어디냐. 지원자가 많아서 그렇다니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돈 많은 전경련인데 많이 좀 드리지.
 
뒤가 구린지 전경련은 꿀 먹은 벙어리고 총책임자인 부회장은 해외로 빠져나가다가 언론에 걸려 카메라와 술래잡기를 한다. 이게 무슨 꼴이냐.
 
■ 손석희는 국민에게 무엇인가
 
손석희 앵커가 어버이연합을 처음으로 거론했을 때 죄 진 인간들은 어이쿠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손석희 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1회용이다. 추적보도 별로 안 한다. 더구나 어버이연합 같은 골치 아픈 단체들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둔다. 실제로 어버이연합과 전경련의 유착을 제대로 보도한 방송은 JTBC 말고 거의 없다. 보도라고 해 봐야 찔끔. 병아리 오줌이다.
 
매일 밤 손석희의 입을 통해 어버이연합과 전경련, 탈북단체와 그리고 배후로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이 거론될 때 간이 오그라드는 인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어디까지 파고들 것인가. 끝은 어디인가. 빨리 손을 써야 되는 거 아닌가.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은가.
 
어버이연합은 이름도 많았다. 전경련의 돈이 입금된 기관의 이름은 ‘벧엘선교재단’, ‘비젼코리아’ 그리고 이번에 밝혀진 ‘희망과 나눔’이다. 현재까지다.
 
저걸 그냥 하고 주먹을 부르쥐는 인간들도 많을 것이다. MBC언론민주화 투쟁 당시 손석희가 오랏줄에 묶여 차에 태워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 지금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인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손석희가 JTBC로 간다고 했을 때 이제 손석희도 마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MBC 9시 앵커, 100분토론 진행, 라디오 ‘시선집중’ 등을 통해 국민이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쏟아내던 손석희의 입도 이제 ‘침묵의 금’으로 변하겠구나. 절망의 깊이가 달랐다.
 
결과는 오늘 우리가 보고 있다. 세월호를 통해서 전경련과 어버이 연합을 통해서 우리는 손석희를 확인하고 있다.
 
■ 언론의 신뢰
 
손석희의 뉴스브리핑은 대한민국 현실의 압축이다. 4월 27일 손석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언론을 말했다. 좀 길지만 ‘기레기’들에게는 뼈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언론은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개에 비유되곤 합니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워치독(Watchdog)과 랩독(Lapdog)입니다. 
워치독은 '감시견'을 뜻합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며 자유주의 체제의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지요. 즉, 건강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던 토머스 제퍼슨의 그 유명한 말은 이 워치독 신봉론의 금과옥조가 되었고,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던 워싱턴 포스트지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는 언론의 워치독 역할이 현실세계에서 구현된 가장 좋은 예로 꼽히곤 합니다. 

반면 랩독은 말 그대로 권력의 애완견 같은 언론을 뜻합니다.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랩독은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할 뿐이지요. 
권위주의 시대의 언론은 이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시견이나 애완견 같은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또 하나의 유형을 학자들은 내놓았습니다. 

가드독(Guard dog) 즉 경비견입니다. 가드독의 역할은 좀 복잡합니다. 
언론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되어서 권력화되었고, 그래서 권력을 지키려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대상을 향해서도 공격적이 되는 것.
물론 그것은 지키려 했던 대상의 권력이 약해졌을 때, 혹은 지키려 했던 대상이 자신의 이익과 반하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총선을 전후해서 달라진, 그리고 어제(26일) 대통령의 언론사 간담회 이후 드러난 변화무쌍한 언론들의 논조 변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
우리는 어떤 언론인가. 그리고 우리 시민들은 지금 어떤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가
 
■ 손석희를 지키는 국민의 눈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믿지 못하는 언론의 존재 이유가 어디 있는가. 조·중·동과 그 뒤를 이은 종편은 깨어있는 국민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스스로의 자괴감으로 신분 노출조차 꺼리는 ‘기레기’들을 보면서 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비록 기레기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물으면 가장 부러운 존재는 손석희다. 국민들에게는 어떤가. 역시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으로 손석희를 꼽는다.
 
‘기레기’란 이 시대가 만들어 낸 불행한 조어(造語)다. 길고 불행한 우리 언론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참담한 조어 위에 올라앉은 언론의 현주소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기레기‘는 분노조차 느끼지 못하는 일상의 어휘가 됐다.
 
오늘의 언론과 한국의 현실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언론이 죽은 세상은 역시 죽은 세상이다. 전경련과 어버이연합 보도를 보면서 국민이 느끼는 것은 비극을 보면서 느끼는 변태의 희열과도 같다. 거짓이 벗겨지는 적나라한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문득 투표출구 조사와 관련해 손석희가 경찰에 불려 나간 적이 있다. 국민들은 이제 손석희를 손 볼 모양이라고 걱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손석희는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그래도 국민들이 걱정을 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현실이 두려운 것이다.
 
‘기레기’들의 소망도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론의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알아서 기는 언론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 손석희는 언론자유를 위한 일관된 신념으로 오늘의 신뢰를 이루어냈다. 이제 손석희는 국민이 처 놓은 보호의 철조망 안에서 언론의 영역을 지켜 나갈 것이다. 그렇게 국민은 믿고 있다. 
 
‘기레기’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런 세상은 국민이 원하는 세상이다. 대통령과 면담하는 언론사 편집·보도 국장의 웃는 얼굴들이 환하다. 그들은 대통령과 면담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국민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손석희가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 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는 때는 올 것인가. 꿈같은 소망이지만 국민은 그런 세상을 원한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