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통신사 실수 이어 일부 매체 사실 확인 없이 확대 재생산

사실 확인 없이 무차별적으로 받아쓰기만 하는 일부 언론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보는 또 다른 오보를 낳았고 제멋대로 확대 재생산했다.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정계은퇴’ 관련 발언 얘기다.

4·13 총선이 끝난 지 일주일째인 20일 오후, 인터넷 포털에 ‘양향자, 문재인 정계은퇴 발언 책임져야’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잇달아 쏟아졌다.

▲ 4.13 총선에서 낙선한 더불어민주당 광주지역 후보들이 21일 오전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광주인
▲ 21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가 4.13 총선 낙선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광주지역 후보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광주인

양 전 상무가 문 전 대표의 ‘호남 지지 거둘 시 은퇴하겠다’라는 발언에 대해 “그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 보도대로라면 양 전 상무가 자신을 영입한 문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해 정계 은퇴를 주장한 셈이 된다. 언론 입장에서 보면 정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핵폭탄급 발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오보’다. 양 전 상무의 정확한 멘트는 “오셔서 한 말씀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 된다라는 그런 의견들이 많이 있구요”다. ‘책임을 지셔야 한다’와 ‘책임을 지셔야 된다는 의견들이 많다’는 전혀 다른 의미다.

이날 오전 양 전 상무(서구을)를 비롯해 이용섭(광산을)·이형석(북구을)·이용빈(광산갑)·송갑석(서구갑)·최진(동남갑)·정준호(북구갑) 등 더민주 광주지역 총선 후보 낙선자들이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병훈 동남을 전 후보는 불참했다.

이들은 이날 ‘광주시민께 드리는 글’을 발표하고 총선 패배의 반성과 함께 “광주가 다시 더불어민주당의 심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부분은 기자회견 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다음은 <광주in>기자가 이날 오전 기자회견장에서 녹취한 내용을 푼 녹취록이다.(이 녹취록을 양향자 전 상무 측의 요청으로 제공했다.)

… (전략)
뉴스1 박아무개 기자 =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 총선 결과에 따라 본인의 진퇴 여부 결정한다고 하셨는데 사실 호남에서 참패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이제 전남을 방문했고, 사실상 재개를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후보, 낙선은 하셨지만 의견은 있으신지, 왜냐하면 본인이 광주시민들에게 약속 하셨는데 아무런 설명없이 바로 총선이 끝난 후에 전남을 방문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의견 조율이라든지 이런 입장을 내놓을 생각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양향자 전 상무 = 가장 핫한 질문을 하셨어요. 사실 이제 그 부분도 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오셔서 한 말씀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 된다라는 그런 의견들이 많이 있구요. 근데 당장 이 자리에서 저희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는 요청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구요. 일단 호남이 가장 지금 대선도 그렇고 총선 결과도 그렇고 가장 중요한 어떤 상황에 있기 때문에 의견을 좀 더 모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중요한 것은 전국적 지지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뉴스1 박 기자 = 의견을 좀 모아서 내실 생각은 있으세요.
양 전 상무 = 있습니다.

뉴스1 박 기자 - 그 부분에 대해서?
양 전 상무 = 예

뉴스1 박 기자 : 그럼 최소한 그 본인의 어떤 호남에 대한 입장 표명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뭐 ***이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신해서 입장을 내신다는 말씀이죠?

양 전 상무 = 고민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후략)

그러면 왜 이런 오보가 났을까. 첫 보도는 민영 뉴스통신사 <뉴스1> 모 기자의 실수였다. <뉴스1> 기자는 이날 낮 12시1분에 <양향자 “광주 패배, 국민의당 바람 감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기사 말미에 ‘호남 총선 결과에 따라 진퇴여부를 결정하겠다던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광주 출마자들의 의견 조율 및 입장으로는 “오셔서 한 말씀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 된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를 쓴 <뉴스1> 기자는 <광주in>과 통화에서 “양 전 상무의 말을 타이핑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말을 놓쳤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이 보도 후 2시간여 뒤 <아시아경제> 한 인턴기자가 <뉴스1> 기사의 맨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 ‘양향자, 문재인 정계은퇴 책임져야’라는 내용으로 보도했다. 이후 몇몇 매체들이 아무런 확인 없이 인용했다.

일부 매체는 ‘양향자, 문재인 거리두기…’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확대 재생산하기도 했다.

결국 양 전 상무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여러 언론에서 나온 보도 내용을 반박했다.

그는 “이 말 어디에, 제가 문 전 대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해석될 말이 있는지 의아스럽다”면서 “오늘 기자회견은 더민주 광주지역 낙선자들 뜻을 밝히는 자리였다. 그래서, 저만의 의견을 말씀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양 전 상무는 ‘문재인 전 대표의 책임론’에 대해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더불어민주당의 광주의 패배는 장시간에 걸친 당의 정치적 무능에 따른 결과입니다. 문 전 대표를 포함한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고, 해법도 될 수 없습니다.

둘째, 호남의 지지없이는 정권교체도 없습니다.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더불어민주당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희생양’을 찾는 것은 힘을 모으는 과정이 아닙니다.

셋째, 호남의 마음을 얻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 양향자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오보’ 논란이 불거지자 일부 매체는 기사를 수정했고, 일부 매체는 기사를 삭제했다. 또 일부 매체는 악의적으로 ‘말바꾸기?’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내기도 했다.

속보 경쟁과 사실 확인 없는 받아쓰기, 짜깁기 기사쓰기가 낳은 씁쓸한 언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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