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문재인을 버렸는가

“호남에서 지지를 못 받는다면 정치를 포기한다. 대선도 같다” 문재인이 광주 충장로에서 밝힌 이른바 ‘충장로 4·8선언’이다.
 
재빠른 입이 있다. 박지원이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싹쓸이를 했으니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고 그러니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예상했던 그대로다. 호남이 문재인을 버렸는가. 안철수는 국민의 당이 40석을 채우지 못하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박지원은 안철수의 책임을 물을 것인가. 대책 없는 사람이다.
 
■ 나는 어디에 서란 말이냐
 
“호남에선 ‘영남패권주의자’ ‘호남홀대자’라고 욕을 먹고 영남에선 ‘종북빨갱이’ ‘친호남’이라고 배척받으면 저는 어디서 살아야 합니까”
 
호남의 어르신과 대화를 하면서 문재인이 털어놓은 고백이다. 이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문재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큰 절을 하는 문재인의 찢어진 구두창이 아프다. 구름처럼 모여드는 시민들. 광주 호남은 문재인을 버렸는가.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더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수도권의 민심을 모으는데 문재인이 큰 기여를 했다” 김종인의 말이다.
 
문재인의 호남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김종인이 한 말이다. 문재인의 말이라면 쌍지팡이를 집고 나서던 이종걸의 말은 어떤가.
 
“문재인 전 대표가 이번 총선에 수도권 승리의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박지원을 비롯한 호남출신 ‘국민의당’ 의원들과 종편들, 그리고 대단한 정치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물고 늘어질 것이다. 호남에서 패했는데 왜 약속한 정치포기와 대선포기 선언을 하지 않느냐고 박지원은 잽싸게 칼을 뽑았다. 입을 모아 떠들어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약삭빠른 지식인들이다. ‘더민주’의 압승을 보고 ‘가자미눈’의 평론가들 말투가 달라진다. 그것도 민심이다. 조·중·동도 조금 말랑해졌다.
 
‘국민의당’이나 안철수를 비난할 것 없다. 어쨌든 그들은 호남민심에 의해 선택되었다. 그것이 전략투표라면 또한 인정해야 한다. 다만 대선에서의 전략투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문재인을 버리는 것이 정권교체의 방법인가. 아니라면 무슨 방법이 있는가.
 
■ 김홍걸, 호남의 인물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은 당당하게 문재인을 선택했다. 평생을 아버지를 모시고 영예를 누리고 살아온 이른바 ‘평생비서실장’을 비롯한 가신들이 문재인을 버리라면서 동교동을 떠날 때 그는 문재인을 지켰다. 정연한 논리로 가신들의 배신을 질타할 때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문재인이 광주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부끄러움 없는 삶 때문이다. 전두환의 광주학살 만행이 담긴 비디오를 부산 가톨릭 센터에서 노무현과 함께 최초로 공개해 부산시민들에게 광주학살의 현장을 보여줬다.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그런 자신이 광주에서 버림을 받는다면 그의 마음은 어떨까. 김홍걸을 그걸 알고 있다. 그는 문재인과 함께 호남 곳곳을 다니면서 ‘더민주’ 지지를 호소했다.
 
■ 호남의 진심은 무엇인가
 
따스한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고 편안하게 금배지 단 호남의원들의 지역구는 철옹성이었다. 지역과 계파로 똘똘 뭉친 그들의 아성은 공천이 바로 당선이었다. 주민들은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고 새 인물을 요구했다. 그것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기대였다. 헌데 왜 ‘더민주’가 호남의 찬밥이 되었는가. 며칠 전 광주에 갔을 때 들은 말이다.
 
‘김종인의 셀프공천을 보고 포기했다’
 
김종인 ‘셀프공천’이 무엇인가. 꼭 설명해야 알겠는가. 호남을 통째로 ‘국민의당’에다 진상한 것이 ‘셀프공천’이다. 김종인 대표가 구성한 비대위는 ‘비례대표’ 순위를 끼리끼리 정했다. 김종인 대표는 2번을 받았다. 지역구 공천은 함량 미달이다. 어느 누가 납득을 한단 말인가.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허겁지겁 재조정을 했으나 오히려 김종인은 당무를 거부했다. 물은 엎질러졌다. 돌이킬 수가 없었다.
 
문재인은 당이 반대하는데도 광주로 달려가 엎드려 빌었다. 그의 곁에 김홍걸이 있었다. 함께 절을 하며 용서를 구했다. 전남대를 찾아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월곡시장을 찾아 막걸리 토론을 하고 5·18 유족회 어머니를 만나고 무등산에서는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눴다.
 
SNS는 문재인의 모습을 그대로 전했다. 진실이 뚫지 못하는 벽은 없다. 그러나 셀프공천에 대한 호남주민들의 냉소는 너무 차가웠다. 억울할 것도 없다. 셀프공천, 스스로 자해한 상처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SNS는 순식간에 지구를 돈다. 광주와 호남을 헤매 다니는 문재인의 모습을 국민들이 지켜봤다. 국민들 가슴에 무슨 동요가 일어 난 것일까. 총선을 압승이었다. 부산·영남에서 7석. 서울에서 강남을 뚫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됐다.
 
이번 총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심판을 요구했고 국민은 심판했다. 그러나 심판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정청래가 셀프공천 5인방을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또 다른 심판이 벌어질 것이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