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따라 흘러온 길의 역사. 봄기운 가득한 섬진강에서 길의 의미를 다시 묻다.

물이 흐르는 강은 예부터 길의 역할도 대신해왔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수로(水路), 즉 물길이다. 적어도 철도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국경을 허물면서 육상교통의 총아로 떠오르기 전까지 물길은 세계로 통하는 길의 중심이었다. 물길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오가면서 인류문명이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고, 마침내 세계를 단일네트워크로 묶은 오늘의 지구촌시대를 만들었다.

철도와 도로에 길의 역할을 내준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태곳적 관성을 유지한 채 오늘도 바다를 향하여 유유히 흘러간다. 온 산하가 꽃향기로 가득한 봄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 중 하나인 전라선 철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 숨가쁘게 달려온 여수행 고속열차는 익산역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전라선에 들어선다. 여기서부터는 고속선이 아니라 일반선, 아까보다 속도가 반으로 줄어 조금 답답하지만 오히려 온통 푸른빛으로 물든 남도의 산하를 여유롭게 바라보는 눈맛이 즐겁다.

▲ 전남 곡성군 압록역 철교 주변 경치.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 더 큰 섬진강을 만들고 있다. ⓒ전남 곡성군청 누리집 갈무리

익산에서 한 시간 쯤 달려 여행의 무료함이 서서히 물려올 무렵, 푸른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아름다운 섬진강이 마치 옆자리의 다정한 승객처럼 시야 가득 들어온다. 여기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 중 하나로 꼽히는 그 유명한 압록역이다.

압록역 앞은 보성강과 섬진강이 합쳐지는 곳으로 자연이 만들어 낸 압록유원지가 있다. 예전에는 두 강의 푸른 물이 합류하는 곳이라 하여 ‘합록(合綠)’으로 불려 지던 것이 오리 같은 철새들이 날아든다 하여 ‘압록(鴨綠)’으로 바뀌었다.

압록역 부근 철길이 아름답다고 소문난 이유는 주변에 철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흐르는 섬진강이 계절마다 연출하는 자연의 합주(合奏)가 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섬진강 가를 달리다보면 사계절의 풍광이 비발디의 ‘사계’를 무색케 한다.

봄이면 형형색색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 강변을 수놓고, 여름에는 옥빛 물빛과 신록이 어우러져 싱그러움을 더해 준다. 어디 그뿐이랴? 가을에는 강을 에워싼 산에서 오색단풍이 불타오르고, 눈 내린 겨울이면 겨울 산의 장엄함이 자못 사색적 묵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섬진강이 있다. 섬진강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주변 풍광을 거느리고 장엄하게 흐르면서 자연의 합주곡을 연주한다.

강물은 인류문명이 오갔던 통로, 철길이 생기기 전까지 수로는 길 중, 최고의 길.

사람은 길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태초의 인간이 나무 위에서 땅으로 내려와 서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동물도 길을 만든다. 하지만, 동물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할 뿐이다.

이와 달리 인간은 수렵과 채취를 위한 필요에서,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길을 만들고 관리했다. 강과 바다를 이용한 수로, 기차가 다니는 철도,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잇달아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길을 타고 오가는 문명을 통해 개인과 세계를 발전시켰다.

▲ 입록역 주변 섬진강 풍광. ⓒ전남 곡성군청 누리집 갈무리

강은 산에서 발원하여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강은 그 자체가 움직이는 길, 즉 ‘흐르는 길’이다. 동력이 없던 시절엔 수로가 길 중에서 최고의 길이었던 이유다. 수로는 해발 표고차에 의한 유속과 지구자전이 만드는 무역풍이 천연 동력이 되어 육지의 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먼 거리까지 많은 짐을 싣고 왕래할 수 있었다. 고대 가야의 김수로왕이 인도에서 온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흐르는 길’ 즉 수로 덕분이었다.

섬진강도 예외는 아니어서 옛날부터 조운선(漕運船)이 드나들며 세곡을 운반했던 물길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 말 극성을 부린 왜구나, 임진왜란 때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일본군의 내륙 침공로가 되기도 했다.

강이 하던 길의 역할을 철도가 대신하면서 인류의 역사가 달라지기 시작

강에 수로가 있었다면 육지엔 육로가 있었다. 중국의 ‘비단길’, 고대 로마의 ‘로마로 통하는 길.’ 페르시아 제국의 ‘왕의 길’이 대표적이다. 이 도로들은 무역이나 변방통치를 위해 사람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기거나 인위적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동력의 부재에 따른 낮은 속도와 이동중량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늘 숙제였다. 초원에서 풀을 뜯던 말을 길들여서 투입해 봤지만 결과는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침내 산업혁명이 일어나 당시로선 꿈의 기술이었던 증기기관이 발명됨으로써 길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된다. 스티븐슨은 물의 부피를 1.300배나 팽창시켜 운동에너지를 얻는 증기기관을 응용하여 드디어 속도 기계, 즉 기차를 발명했다.

이로써 인류는 범선과 상업이 지배하는 상업자본주의와 해양교통시대를 마감하고 육상교통이 주도하는 산업자본주의 시대로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수로(水路)의 시대에서 철로(鐵路)의 시대가 된 것이다.

기차가 달리는 철로는 강을 닮았지만 수로와는 차원이 다르다. 강은 흐르는 물을 길로 삼은 자연의 길이지만 철도는 처음부터 빠르게 달리자고 작정하고 낸 길이어서 인공의 극치를 이룬다. 철로는 두 가닥 레일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침목에 단단히 결박돼 궤도를 구성하며, 곡선을 도는데도 일정한 반경을 가지고 일관되게 돈다. 세상의 길 중에서 이토록 치밀한 길이 또 있을까? 철도(Railroad)가 길(road)이기보다 육상경기장의 트랙(Track)처럼 낯설게 보이는 이유다.

게다가 철로는 고도로 조직화되고 체계화된 운행체계를 갖춰 다른 것은 통행을 허용치 않은 배타적 길이 되었다. 길이 가진 아날로그적 감성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속도기계의 길이 바로 철도인 것이다.

▲ 섬진강 물안개. ⓒ전남 곡성군청 누리집 갈무리

철도에 내재된 길의 특성은 이후 기차가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통제와 독점, 그리고 규율이란 ‘철도적 DNA’를 심어 놓았다. 빠름의 추구, 통제의 순응, 촘촘한 시스템 등 새로운 가치체계가 작동하는 현대사회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가히 사람이 길을 닮은 경우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옛날 유유자적 흐르는 강을 길로 이용하던 시대의 가치관으로 속도의 길로 무장된 현대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를 정착시키며 더 많은 길을 만들고 있던 길을 직선화했으며 길의 감속을 막기 위해 다양한 법과 제도를 갖추었다.

빠름을 얻는 대신 섬진강의 아름다운 조망권을 잃어버린 전라선 철도

불과 17년 전만 하더라도 곡성부터 구례까지 약 20킬로미터의 전라선 철도는 순구하게 흐르는 섬진강과 나란히 달렸다. 덕분에 기차의 승객은 따로 섬진강을 찾지 않아도 강의 정취를 보고 느끼기가 참 좋았다. 강변을 달리는 기차는 승객들을 편안하게 이동시키면서도 덤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철도가 고속의 열풍을 타고 직선으로 개량되면서 수많은 터널이 생겼다. 그리하여 기차와 나란히 달리던 아름다운 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사라지고 말았다. 겨우 한두 곳 남은 구간마저 빠른 속도 탓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개량된 철로는 풍경에 대한 체감의 강도와 감동의 폭을 대폭 낮추었다. 결국 지금 고속열차가 다니는 새 철길은 빠름을 추구하다 낭만을 잃어버린 황량한 길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굳이 강변의 풍경을 조망하려면 레일바이크나 증기기관차가 이끄는 놀이용기차를 따로 타야한다. 차창 밖의 풍경마저 상업적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 곡성역과 압록역 중간 두가교 아래 다리. ⓒ블로그 갈무리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nokaruna&skinType=&skinId=&from=menu&userSelectMenu=true

일찍이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기차의 편리함은 찬양하면서도 “기차가 공간을 살해했다”는 표현을 썼다. 출발지와 목적지 이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삭막한 공간으로 만들어버렸음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실제로 현재, 갈수록 속도는 높아지고 곳곳에 설치된 소음차단벽은 여행자의 조망권을 더 억압하고 있으므로 시인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속도에 대한 욕구는 멈추지 않고 있다. 속도에 중독된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증속을 욕망한다. 그래서 오늘도 산하는 찢기고, 잘려나가 고운 풍경을 잃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풍경들을 잃어야 할지 모른다.

과거 섬진강변을 오가던 완행열차는 고작해야 시속 70~80Km로 달렸다. 하지만 요즘 KTX는 ‘빠름~빠름~’하는 광고 문구처럼 그보다 몇 배나 빠르게 질주한다. 과연 우리는 빨라진 속도만큼 더 행복해지는 걸까? 세상은 휙휙 돌아가고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며 치열한 경쟁으로 모두가 피로한 이 시대, 달리는 기차에서라도 느긋하게 풍경을 바라보며 쉼표의 휴식을 가질 수는 없는 걸까?

다행히 요즘 들어 길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최근 유행하는 올레길, 둘레길, 차 없는 길 등은 이동기계에 내준 길을 되찾으려는 의미가 크다. 경관을 공유하고 소통 교감할 수 있는 생태적 길이 많아져야 무작정 빠름의 무의미함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사라져간 섬진강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추억의 손길을 뻗어본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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