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4.13총선을 앞두고 대다수 언론들이 매일 거대정당 중심으로 선거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라는 광주의 지역언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안언론 <광주in>은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영세자영업자, 경제정의, 통일, 환경, 생태, 여성, 노인, 어린이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과 정책을 끊임 없이 생산해온 진보정당들에게 주목한다. 민중정치연합,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의 젊은 당원들이 내놓은 '소속 정당 지지이유'를 연속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내게 노동당은 ‘약자를 향한 혐오’를
‘강자를 향한 분노’로 바꾸어 준 ‘세계관’입니다.

우리 엄마의 꿈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빚을 전부 갚는 거다. 수능을 얼마 앞둔 시점, 엄마는 내게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보여줬다.

▲ 안명진 노동당 당원.

"엄마는 명진이가 훌륭한 사람이 돼서 엄마 빚 좀 갚아줬으면 좋겠어."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가난을 체감했고, 그때부터 내게 훌륭한 사람이란 빚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놈의 빚, 그림자처럼 떼어낼 수 없는 지긋지긋한 그 빚. 그리고 그에 비례해서 늘어갔던 우리 엄마의 근무시간. 저녁 9시가 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정말이지 참 막막했었다.

최근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선언했었다. 한국 경제 역시 그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12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의 일부인 엄마와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엄마의 초라한 월급통장에서는 또 얼마간의 인상된 대출이자가 인출될 테고, 나는 언제나처럼 용돈 달라는 말을 죄스러워하며 두 번, 세 번 고민해야 하겠지.

그 와중에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정부당국은 그 대책으로 서민금융을 확대한다고 했었다. "서민금융 공급 확대", 그 세련된 말의 동의어는 우리 엄마가 다시 한 번 국민은행 대출창구에 도장을 들고 고개를 들이밀어야 한다는 말일 테고,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또 한 번 줄어든다는 말이겠지.

'빚으로 빚 갚으라'는 나라. 무려 경제부총리쯤이나 되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국민경제의 "돌려막기"를 선언하는 나라에서 대체 우리 엄마는 언제쯤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아니, 도대체 우리 엄마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 정치인이 존재하긴 하는가. 나는 정치인들이 끔찍이도 싫었다.

1996년, 한국의 신자유주의화와 함께 노동이 유연화되고 임금이 줄면서 대출의 이유들 중 급격히 늘었던 명목이 있다. 바로 '생계형 대출'.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옷을 사 입고 밥을 사 먹기 위해 돈을 빌려야만 한다는 의미다. '빚'이라는 링겔 없이는 연명 불가능한 한국경제의 음습한 변두리. 바로 거기에 엄마와 내가 곰팡이처럼 피어 있었다.

'가계의 빚'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시작한 나의 대학생활은, 말하자면 눅눅했다. 학교가 끝나면 과외를 뛰었다. 그나마 시급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용돈만이라도 내가 벌어 내가 써야지’ 하는 다짐은 사회 일반이 생각하는 '청년다움'을 저당잡았다.

강의 끝나고 흔히 가지는 술자리에는 언감생심 참여할 수 없었다. 동아리 뒤풀이를 한 번 가지면, 으레 회비는 만원을 상회한다. 한 시간 넘게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감히 '청춘'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숙사 통금은 12시였지만, 나는 언제나 학교에서 적어도 10시엔 출발했다. 혹여나 지하철을 놓치고 택시를 타면 이틀 치 생활비가 날아가니까. 아무리 특별한 날이고, 아무리 즐거운 술자리여도 나는 동기들과 언제나 조금씩 일찍 헤어져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언제나 아버지를 혐오했다. 연속된 사업 실패와 쌓인 빚더미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었으므로. 멋진 차를 타고 넓은 집에서 살고 싶었다. 다른 아버지들이라면 으레껏 그렇게 해 주는 줄 알았다.

가끔은 밤 늦게 택시를 타고 집에 가보고도 싶었고, 애인과 데이트를 하면서 통장의 잔고를 계산하고 싶지 않았다. 학자금 대출이 아직 20대인 내 명의에 쌓이는 것이 싫었고, 교통비가 100원, 200원씩 오르는 게 신경쓰이는 나도 혐오스러웠다. 모든 게 아빠 탓, 내 탓인 것만 같았다.

▲ 11일 서울 대림역 근처에서 노동당이 '차별금지법 제정'과 '이주민에게 인권을!' 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두 구호 손팻말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네팔어, 힌디어, 아랍어, 불어, 러시아어 8개 언어로 번역돼 있다. ⓒ노동당 누리집 갈무리

그런데 노동당의 청년당원들과 만나게 된 뒤로부터 조금씩 내가 변했다. 사업 실패가 꼭 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배웠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영세자영업이 왜 무너질 수 밖에 없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임금이 낮은 이유가 단지 그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없는 이유가 나의 무능력함 때문이라기보다 이윤을 위해 비정규-불안정 노동을 무한정 확대하는 재벌과 대기업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노동당은 내게 앞이 아니라 옆을 보게 했고, 고민의 답을 찾아주기보다는 왜 같은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었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강자에 대한 분노를 가르쳐주었던 ‘세계관’이었고, 사적인 '화풀이'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 제기'를 앞장서 실천했던 ‘삶의 태도’였던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노동당은 우리 삶이 비참한 이유는 우리 곁의 ‘우리들’의 문제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 임하는 노동당의 3대 핵심 정책을 보라.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욕심많은 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들 탓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장기 저성장 때문이므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노동시간이 줄면 임금이 깎일 수 밖에 없으므로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릴 것과 전 국민에게 조건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 30만원을 통해 그 삭감분을 충당해야한다고 말한다. 덜 일해도 삶이 행복한 “연대적 노동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경제 위기를 약자에게만 전가하려는 저들에 맞서, ‘우리의 정치’를 꿋꿋이 실천하는 노동당을 지지한다. 또 ‘경제 위기’가 곧 ‘삶의 위기’로 직결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대안, 노동당을 지지한다.

우리 모두에게 노동당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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