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광주 문빈정사, 망월동 묘지에서 추모식 개최
시민사회활동가들 참석 "평화의 길 따르겠다" 결의


지난달 16일 혈액암 투병 중 58세로 세상을 떠난 평화운동가 정의행 법사 49재 추모 법회가 4일 오전 광주 동구 운림동 문빈정사(주지스님 법선)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법회는 불교의식 따라 '49재(막재)'로 진행됐으며 고인의 유가족과 지선 백양사 방장 스님, 법선 문빈정사 주지스님,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김희용 목사, 이범식 광주불자회장 등 불교계 활동가, 그리고 시민사회활동가,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회원, 장화동 정의당 광주 서갑후보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아래 추모사, 결의문 전문, 추모시 참조)   

▲ 고 정의행 평화운동가(법사) 49재 추모법회에서 지선 백양사 방장스님이 영가천도 법어(추모사)를 하고 있다. ⓒ김동채

평소 불자로서 가깝게 지냈던 지선 백양사 방장스님은 영가천도 법어(추모사)에서 "고인은 이제 생사 이전의 삶이다. 사바세계에 와 목적이 끝났기 때문에 갔다. 모든 것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크고, 높고, 깊고, 영원한 그 자리, 생명의 본질 자리"라며 "마음의 본질에서 살다 왔고, 또 갔다. 그 자리, 생과 사, 주의 주장, 모든 경계가 무너진 자리, 불생불멸의 자리"라고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또 지선 방장스님은 "앞으로 우리는 정 법사의 말과 행동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진실되게 사는 것이다. 불생불멸의 본질, 자비광명의 자리, 성스러운 자리를 찾아 가는 것"이라며 "원망, 증오보다 자비로 저항하는 세상, 참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월호 시민상주모임을 같이 했고, 고인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김희용 목사는 추모사에서 "이웃 종교를 존중하며 진리의 가르침에 경청하고 예를 갖추어 만났던 도반이요 역사의 아픔을 보듬고 불의에 대면했던 길벗을 너무나 일찍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제 영혼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다"고 고인을 빈자리를 슬퍼했다.

▲ 고 정의행 평화운동가가 잠들어 있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49재 추모식. ⓒ김동채

김 목사는 "'겸손하게 살아 달라. 섬기며 살아 달라' '광주가 정의를 실천해 가듯 평화도 더 넓게 행동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배고프다, 너도 배고프다, 아직도 세계 민중들은 배고프다'"는 고인의 생정 당부를 회고하면서 "시대의 장벽을 무너트려 가는 혼불로 동행하고, 묵묵히 고요하게 살아온 따스한 숨결과 영원한 길벗 되겠다"고 추모했다. 추모법회는 강숙향의 추도 노래와 헌화 극락생염불기도로 마쳤다.

이어 오후에는 고인이 잠들어 있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이채언 전 전남대 교수, 유종훈 시민주권행동 대표, 정상엽 전남대 총학생회장 등 사회단체 및 통일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민중의 벗, 평화통일운동가 고 정의행 선생 49재 추모제'가 열렸다.  

한편 광주 동구 운림동 광륵사(주지스님 능인)에서도 고인을 추모하는 재를 100일 동안 지낼 예정으로 알려졌다. 

          은은한 숨결, 義行의 삶을 추도하며

부처님의 정직한 제자요 민중과 평화의 벗인 의행(정철)법사님을 떠올려 봅니다. 이웃 종교를 존중하며 진리의 가르침에 경청하고 예를 갖추어 만났던 도반이요 역사의 아픔을 보듬고 불의에 대면했던 길벗을 너무나 일찍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제 영혼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떤 불자께서 새 인연으로 이어질지 생명 새싹으로 돋아날지 당신께서 그루터기가 되어 주리라 믿으며 기다리면서 맞이하렵니다.

당신의 출가가 홀로 평안을 누리려는 것 아니었듯 당신의 환속 또한 욕망이나 영달을 향한 것 아니었습니다.

노동자가 되고 5.18 민중항쟁에 참여하고 투옥되고 불교교육운동의 길을 열고 마을들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역사의 맥을 잇고 폭격에 죽어간 생명들을 품은 국경을 넘은 평화 연대, 깨달음에 정진하고 수행과 성찰을 일상으로 살았던 시인, 불의한 정권과 폭력엔 거침없이 저항했던 몸짓들.

5월 어머니들의 아들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 후 희생자의 애비처럼 살았던 사람. 당신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분들 가운데 그 분들이 계셨습니다. 당당했지만 은은한 자비 은은한 향기, 낮아지면서 스며들면서 살아온 숨결이었습니다.

빛고을 광주가 ‘평화운동가 의행(정철)법사 민주 시민장(葬)’으로 품어 준 것은 아쉽고 서러웠기 때문입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상실의 아픔, 물결 같은 삶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입관, 추도의 밤, 발인, 5.18 민주광장 노제, 국립 5.18 민주묘지 영결식, 안장식까지 정성을 다해 동행해 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불자인 당신의 장례식을 목사가 집행위원장이 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를 두고 누구 하나 어색해 하거나 부당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당신 삶에 대한 이해와 수용 아니었을까요?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융합들을 보았습니다. 부끄러워 울면서 껍데기를 벗는 변태를 보았습니다. 당신의 자취는 ‘보냄의 장례’를 ‘깨달음의 잔치’로 바꿔놓아 버렸습니다.

같은 형식으로 기도하진 않지만 같은 주제로 기도했던 형제 종교인이여. 생명을 죽이고 불의를 저지르며 평화를 깨뜨리는 같은 종단(宗團)사람보다 생명·정의·평화로 살아가는 이웃 종교인에게서 더욱 깊은 친밀감과 동지감을 나눴던 ‘살림’의 종교인이여.

물결로 흐르리라 믿나이다. 평화로 꽃피리라 믿나이다. 그래서 장례식 속에 당신의 가치를 담아보려 했습니다. 아시나요? 보셨습니까? 여성이 운구위원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중환자실에 앉아 계신 당신의 자세는 수행과 성찰이 몸에 밴 분이기에 가능한 것. 마지막 혼불을 태우고 계시는 모습은 아직도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겸손하게 살아 달라. 섬기며 살아 달라” “광주가 정의를 실천해 가듯 평화도 더 넓게 행동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시는 길에 가족들과 우리에게 남겨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히 “나는 배고프다, 너도 배고프다, 아직도 세계 민중들은 배고프다”는 말씀은 열반 후에도 감당해 가고픈 사명을 고백한 것이라 여깁니다. 아, 사후(死後)의 세계에서도 바꿔놓고픈 숭고함이여.

사랑하는 그대여. 5월과 4월의 별들 가장 가까이에 있어 줄 당신이여. 나 힘들면 속삭여 주오. 나 어두우면 새벽별로 비춰 주오.

당신의 삶과 당신과의 인연을 추억으로 여기지 않겠나이다. 시대의 장벽을 무너트려 가는 혼불로 동행하리다. 묵묵히 고요하게 살아온 따스한 숨결과 영원한 길벗 되리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았던 꿈, 그 꿈 이루는 날 꼭 반드시 만나십시다.
2016년 4월4일

김희용(넘치는교회 목사)

[결의문]

한생을 조국의 자주와 평화, 민주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故정의행동지를 추모하며...

조국의 자주적인 통일과 진정한 평화, 민주를 위하여 한생을 헌신한
정의행동지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2016년 2월 16일 사랑하는 정의행동지가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지난 해 ‘세월호 사건’ 이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번뇌와 고통으로 날과 밤을 지새우던 그는 결국 그 과정에 병을 얻어 수많은 동지들의 걱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한생을 민족의 자주를 위해 헌신한 시대의 투사였습니다.
80년 5.18 민중항쟁을 경험한 그는 마지막까지 참여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며 ‘투사회보’ 발간 등에 참여하며 ‘5.18 민중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였습니다.

그리고 외세에 신음하는 조국의 현실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출판운동에 뛰어들어 진실을 기록하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고 역사적 사실과 사회적 진실을 알리는 데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한 시대의 증견자, 진실의 전파자였습니다.

그는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대단결을 위하여 투쟁한 애국통일 투사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통일시대를 준비한 선구자였습니다.
항상 조국의 통일을 고민하던 그는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6.15학교’의 운영위원으로서 통일교육사업에 헌신하였습니다. 머지않은 때에 밝아올 통일시대를 미리 준비하고자 대중들에게 통일의 당위성, 조국통일을 위한 현실적 방안, 그리고 통일시대에 맞는 사회적 변혁에 대한 얘기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평화주의자요 사회적 인권신장의 실천가였습니다.
2002년 ‘이라크 파병’ 당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우리의 소중한 자식들이 다른 민족을 학살하는 전쟁터에 끌려가는 현실을 반대하며 ‘평화실천불교연대’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는 미군의 장갑차에 무참히 살해된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도 촛불집회, 거리행진 등을 주도하며 나라의 전정한 평화를 위하여 거리에 나섰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뒤에는 ‘호남인권사랑방’을 조직하여 우리가 처한 비인간적이고 피폐한 천민자본주의 실상을 폭로하고 진정한 삶의 가치와 참된 인권의 실현을 위하여 자신의 몸에 피켓을 걸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한국사회의 현실을 경험하고 아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허나 정의행 동지처럼 알고 있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민중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는 민중의 벗으로서 한생을 깨끗하고 진실하게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뇌와 심장은 항상 민중의 고통 한복판을 누비고 있었으며 그의 손과 발은 거리에서 찬바람과 눈길 속을 실천으로 돌파하였습니다.

이제 그의 따스한 눈빛과 중단없는 행진을 볼 수 없지만 그의 깊은 사색과 굴함없는 실천은 그의 벗들과 민중들의 삶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민족의 자주와 평화, 그리고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헌신한 정의행 동지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그는 영원히 동지들과 민중들의 삶 속에 영생할 것입니다.
2016년 4월 4일

시민주권행동 대표 유종훈

         추모시

  님을 보내며
                     ~정의행법사49재에

조현옥

누우셨나요.
잠드셨나요.
어느 거리에선가
만날것만 같아 자꾸만
자꾸만 창밖을 보았어요.

봄날이 오면
꽃놀이 가자고
한번은 그렇게
약속하고픈
그리운 동지여!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고 흰벗꽃 만
바람에 흩날려

슬픔은 강물처럼 흘러
제 몸을 가눌수가 없는
봄날입니다.

벗꽃이 하얗게 지는 날
떠나고 싶으셨나요.

세상 어디에도 이제는
없는 님이시여!

아직도 밑기지 않아
멍하니 하늘 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망월동에 누운
몸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옵니다.

북한어린이돕기를 한다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등산 아래
사년을 거리에 서있었지요.

한송이 연꽃 처럼 살다가신
자비의 화신이시여!

이제 당신을 못잊어하는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소서.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하면
여기 이렇게 다시 모여
추모의 정을 가슴에 새기겠습니까.

이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소서.

청년의 기백으로 힘찬
투쟁의 불꽃 지필수 있는
무등의 영웅들로 자라나게 하소서.

이제 우리는 조선이
하나됨을 위하여
조국 통일의 길에
한몸 바쳐 싸우렵니다.

자비와 화합과 통일
상생의 정신으로
하얀 연꽃이 되어

이것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역사의 길입니다.

감히 저는 열사라
부르렵니다.

조국은 벗꽃 흩날리는
슬픈 봄입니다.

이제는 슬퍼하지 마세요.
편히 쉬세요.
민중의 참벗이여!

2016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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