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광주 문빈정사, 망월동 묘지에서 추모식 개최
시민사회활동가들 참석 "평화의 길 따르겠다" 결의
지난달 16일 혈액암 투병 중 58세로 세상을 떠난 평화운동가 정의행 법사 49재 추모 법회가 4일 오전 광주 동구 운림동 문빈정사(주지스님 법선)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법회는 불교의식 따라 '49재(막재)'로 진행됐으며 고인의 유가족과 지선 백양사 방장 스님, 법선 문빈정사 주지스님,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김희용 목사, 이범식 광주불자회장 등 불교계 활동가, 그리고 시민사회활동가,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회원, 장화동 정의당 광주 서갑후보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아래 추모사, 결의문 전문, 추모시 참조)
평소 불자로서 가깝게 지냈던 지선 백양사 방장스님은 영가천도 법어(추모사)에서 "고인은 이제 생사 이전의 삶이다. 사바세계에 와 목적이 끝났기 때문에 갔다. 모든 것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크고, 높고, 깊고, 영원한 그 자리, 생명의 본질 자리"라며 "마음의 본질에서 살다 왔고, 또 갔다. 그 자리, 생과 사, 주의 주장, 모든 경계가 무너진 자리, 불생불멸의 자리"라고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또 지선 방장스님은 "앞으로 우리는 정 법사의 말과 행동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진실되게 사는 것이다. 불생불멸의 본질, 자비광명의 자리, 성스러운 자리를 찾아 가는 것"이라며 "원망, 증오보다 자비로 저항하는 세상, 참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월호 시민상주모임을 같이 했고, 고인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김희용 목사는 추모사에서 "이웃 종교를 존중하며 진리의 가르침에 경청하고 예를 갖추어 만났던 도반이요 역사의 아픔을 보듬고 불의에 대면했던 길벗을 너무나 일찍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제 영혼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다"고 고인을 빈자리를 슬퍼했다.
김 목사는 "'겸손하게 살아 달라. 섬기며 살아 달라' '광주가 정의를 실천해 가듯 평화도 더 넓게 행동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배고프다, 너도 배고프다, 아직도 세계 민중들은 배고프다'"는 고인의 생정 당부를 회고하면서 "시대의 장벽을 무너트려 가는 혼불로 동행하고, 묵묵히 고요하게 살아온 따스한 숨결과 영원한 길벗 되겠다"고 추모했다. 추모법회는 강숙향의 추도 노래와 헌화 극락생염불기도로 마쳤다.
이어 오후에는 고인이 잠들어 있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이채언 전 전남대 교수, 유종훈 시민주권행동 대표, 정상엽 전남대 총학생회장 등 사회단체 및 통일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민중의 벗, 평화통일운동가 고 정의행 선생 49재 추모제'가 열렸다.
한편 광주 동구 운림동 광륵사(주지스님 능인)에서도 고인을 추모하는 재를 100일 동안 지낼 예정으로 알려졌다.
은은한 숨결, 義行의 삶을 추도하며 부처님의 정직한 제자요 민중과 평화의 벗인 의행(정철)법사님을 떠올려 봅니다. 이웃 종교를 존중하며 진리의 가르침에 경청하고 예를 갖추어 만났던 도반이요 역사의 아픔을 보듬고 불의에 대면했던 길벗을 너무나 일찍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제 영혼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떤 불자께서 새 인연으로 이어질지 생명 새싹으로 돋아날지 당신께서 그루터기가 되어 주리라 믿으며 기다리면서 맞이하렵니다. 당신의 출가가 홀로 평안을 누리려는 것 아니었듯 당신의 환속 또한 욕망이나 영달을 향한 것 아니었습니다. 노동자가 되고 5.18 민중항쟁에 참여하고 투옥되고 불교교육운동의 길을 열고 마을들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역사의 맥을 잇고 폭격에 죽어간 생명들을 품은 국경을 넘은 평화 연대, 깨달음에 정진하고 수행과 성찰을 일상으로 살았던 시인, 불의한 정권과 폭력엔 거침없이 저항했던 몸짓들. 5월 어머니들의 아들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 후 희생자의 애비처럼 살았던 사람. 당신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분들 가운데 그 분들이 계셨습니다. 당당했지만 은은한 자비 은은한 향기, 낮아지면서 스며들면서 살아온 숨결이었습니다. 빛고을 광주가 ‘평화운동가 의행(정철)법사 민주 시민장(葬)’으로 품어 준 것은 아쉽고 서러웠기 때문입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상실의 아픔, 물결 같은 삶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입관, 추도의 밤, 발인, 5.18 민주광장 노제, 국립 5.18 민주묘지 영결식, 안장식까지 정성을 다해 동행해 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불자인 당신의 장례식을 목사가 집행위원장이 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를 두고 누구 하나 어색해 하거나 부당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당신 삶에 대한 이해와 수용 아니었을까요?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융합들을 보았습니다. 부끄러워 울면서 껍데기를 벗는 변태를 보았습니다. 당신의 자취는 ‘보냄의 장례’를 ‘깨달음의 잔치’로 바꿔놓아 버렸습니다. 같은 형식으로 기도하진 않지만 같은 주제로 기도했던 형제 종교인이여. 생명을 죽이고 불의를 저지르며 평화를 깨뜨리는 같은 종단(宗團)사람보다 생명·정의·평화로 살아가는 이웃 종교인에게서 더욱 깊은 친밀감과 동지감을 나눴던 ‘살림’의 종교인이여. 물결로 흐르리라 믿나이다. 평화로 꽃피리라 믿나이다. 그래서 장례식 속에 당신의 가치를 담아보려 했습니다. 아시나요? 보셨습니까? 여성이 운구위원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중환자실에 앉아 계신 당신의 자세는 수행과 성찰이 몸에 밴 분이기에 가능한 것. 마지막 혼불을 태우고 계시는 모습은 아직도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겸손하게 살아 달라. 섬기며 살아 달라” “광주가 정의를 실천해 가듯 평화도 더 넓게 행동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시는 길에 가족들과 우리에게 남겨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히 “나는 배고프다, 너도 배고프다, 아직도 세계 민중들은 배고프다”는 말씀은 열반 후에도 감당해 가고픈 사명을 고백한 것이라 여깁니다. 아, 사후(死後)의 세계에서도 바꿔놓고픈 숭고함이여. 사랑하는 그대여. 5월과 4월의 별들 가장 가까이에 있어 줄 당신이여. 나 힘들면 속삭여 주오. 나 어두우면 새벽별로 비춰 주오. 당신의 삶과 당신과의 인연을 추억으로 여기지 않겠나이다. 시대의 장벽을 무너트려 가는 혼불로 동행하리다. 묵묵히 고요하게 살아온 따스한 숨결과 영원한 길벗 되리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았던 꿈, 그 꿈 이루는 날 꼭 반드시 만나십시다. 김희용(넘치는교회 목사) |
[결의문] 한생을 조국의 자주와 평화, 민주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조국의 자주적인 통일과 진정한 평화, 민주를 위하여 한생을 헌신한 그러나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대단결을 위하여 투쟁한 애국통일 투사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평화주의자요 사회적 인권신장의 실천가였습니다. 한국사회의 현실을 경험하고 아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허나 정의행 동지처럼 알고 있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 그의 따스한 눈빛과 중단없는 행진을 볼 수 없지만 그의 깊은 사색과 굴함없는 실천은 그의 벗들과 민중들의 삶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
추모시 조현옥 누우셨나요. 봄날이 오면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슬픔은 강물처럼 흘러 벗꽃이 하얗게 지는 날 세상 어디에도 이제는 아직도 밑기지 않아 그러나 망월동에 누운 북한어린이돕기를 한다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등산 아래 한송이 연꽃 처럼 살다가신 이제 당신을 못잊어하는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하면 이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청년의 기백으로 힘찬 이제 우리는 조선이 자비와 화합과 통일 이것이 열사의 정신을 감히 저는 열사라 조국은 벗꽃 흩날리는 이제는 슬퍼하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