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무시, 꿈도 못 꾸게

세상에 어찌 잘난 인간만 있으랴. 어리석은 인간도 참 많다. 설사 못났다 해도 살 권리는 있다. 얌전하게만 살면 말이다. 그러나 바보가 사고를 치면 대책이 없다. 사리판단을 못 하니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다. 제발 사고만 치지 마시라고 애원을 할 뿐이다.
 
나쁜 예측은 맞는다고 했던가. 걱정하던 것이 그대로 맞았다. 선거 때면 불어 닥치는 바람이다. 일컬어 ‘북풍’이라고 한다. 이번 불어 닥친 북풍의 이름은 ‘개성공단 폐쇄’라고들 한다. 이미 국민들도 알고 있으니 중언부언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발표한 가운데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을 출발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차량이 입경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갈무리

개성공단 폐쇄 이유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하고 우리 정부는 핵실험에 이어 핵탄두 운반체를 발사했다고 한다. 정부는 북한의 이런 행위를 응징하기 위해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벼락처럼 내린 신속처방이다.
 
옛날에는 왕이 사약을 내렸다. 그래도 예고는 했다. 사약을 받으면 옷도 깨끗이 입고 대궐을 향해 왕의 만수무강을 빌면서 절도 한다. 죽는 걸 미리 알았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에는 예고도 없었다. ‘문 닫아’ 한 마디로 끝이다. 북한이 덜덜 떨면서 살려달라고 애걸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웬걸. ‘문닫으라구? 좋다. 니들도 당장 나가’ 그야말로 빤쓰 바람으로 쫓겨났다. 이것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아
 
개성공단에는 124개 공장이 입주해 있다. 연관된 중소기업이 6,000여개다. 여기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6만 7천여 명. 우리 국민 6만 7천여 명의 밥줄이 끊긴 것이다. 설마 굶어 죽겠느냐고 하겠지만, 하루아침에 맞은 벼락이 보통 고통이겠는가. 삶의 터전이 이렇게 파괴되어도 되는가.
 
통일부장관은 개성공단에서 북한이 벌어들이는 돈이 핵 개발에 쓰인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왜 그러는지 구체적 공개는 않는다. 그냥 믿어?.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일 년에 1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이걸 몽땅 핵 개발에 쓰는지는 몰라도 개성공단에 북한 노동자들은 뭘 먹고 사는가.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로 1억 달러를 못 버는데 북한이 대외무역으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80억 달러라고 하니 1억 달러 못 벌어 핵개발 못하는가.
 
우리의 손해는 얼마인가. 우리 기업들은 공단 조성과 투자비용 등을 합치면 피해액이 2조 원에 달할 정도라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피해를 감수하면서 개성공단의 문을 닫았다. 대단한 결단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과연 설득력이 있는 결단인가.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를 함으로서 북한이 핵개발과 실험을 중단한다면 우리가 입은 경제적 손실쯤이야 감수할 수 있지만, 북한은 중단은 고사하고 ‘해 볼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북한이 버티면 개성공단 입주 기업은 막말로 깡통차게 생겼고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얻을 이익은 무엇인가. 다들 알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사드(THAAD) 배치로 중국의 심사가 뒤틀린다면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되는가. 중국 관광객이 끊기면 문 닫는 관광회사 부지기수고 뒷감당할 자신은 있는가.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조치가 정부의 강경세력들이 대통령에게 권유해서 결정됐을까. 참모들은 이번 조치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해 매우 우려했으며 통일부는 ‘일시 중단’ ‘잠정 중단’을 주장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 지시로 공단폐쇄조치가 단행되었다고 한다.
 
2013년 북측의 일방적 폐쇄 통보로 촉발된 개성공단 중단 당시 양측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는 합의를 했고 이는 우리 정부의 주도로 작성됐는데 이번에 우리 주도로 파기한 것이다. 그 결정의 배경에는 북한 궤멸과 4월 총선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궤멸은 가능한가. 두고 볼 일이다. 그 대신 4월 총선을 겨냥한 조치라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4월 총선은 대통령의 운명과 직결이 되어 있다. 임기 끝나고 물러나면 그만인데 무슨 운명이냐고 할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이다. 총선에서 새누리가 압도적인 승리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측 못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개헌을 통한 영구집권이며 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대통령의 퇴임 후 영향력도 보장된다는 의미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청와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쿠데타는 예측하면 성공 못 한다. 예측을 못 하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국가비상사태가 벌어진다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권한은 막강하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어떤가. 이승만 정권 이후 최악이다. 군의 불만 역시 극한이다.
 
5·16 반란 당시 제대 말년에 쿠데타 총본산인 양평동 6관구 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취침 중 눈 비비고 일어나 총 들고 트럭에 올라 남산방송국을 접수했다. 국가에 대한 반란인 줄도 모르고 쏘라면 쏘고 죽이라면 죽였을 것이다. 기자들은 시청으로 가서 새파란 육군 중위 검열관이 찍 찍 볼펜으로 그은 넝마 같은 기사를 들고 신문을 만들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인가.
 
왜 총선이 중요한지 잘 들 알 것이다. 나 하나쯤 투표를 안 한다고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나가 열이 되고 백은 천이 된다. 할 일 없으니 투표라도 하자는 늙은이와 귀찮아서 투표 안 하는 젊은이들과 경쟁이 되겠는가. 선거혁명은 아득한 꿈이 될 것이다.
 
■북풍은 무덤 속에

 
억지를 쓰는 배후에는 반드시 흉계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억지를 쓸 이유가 없다. 정치는 법과 상식에 기초하면 된다. 상식은 보통사람들의 보편적 가치판단 기준이다. 태반이 보통사람인 국민들이 법과 상식이 통하는 정치라고 생각하는가. 하루아침에 124개 기업이 맨몸으로 문을 닫고 쫓겨나고 6천여 협력중소기업과 6만여 식구들의 밥줄이 간곳없이 사라지는 개성공단 폐쇄는 상식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작태가 어떻게 가능한가. 견제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를 누가 통제하는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와 국회다. 국회가 제대로 기능했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왜 선거를 잘 치러야 하는가. 상식의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4월 13일의 총선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 있다. 마지막 기회다. 선거 때마다 미친바람으로 불어오는 북풍도 이제 완전히 무덤 속에 묻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선거고 투표다. 국민이 무서우면 못된 짓 못 한다. 역효과가 특효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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