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MBC였다

‘읍참마속(泣斬馬謖)’ 하도 많이 들어서 ‘모르면 간첩’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다. 군율을 어긴 부하 장수인 마속을 울면서 벤 제갈공명의 삼국지 고사를 말한다. 더 없이 교훈적인 고사지만 이제는 쥐나 개나 하도 써먹어서 제갈공명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그럼 소참마속(笑斬馬謖)이란 말을 아는가. 모를 것이다. 내가 처음 써먹는 말이기 때문이다. 소참마속(笑斬馬謖)은 ‘웃으며 마속을 벤다’는 의미인데 바로 아무 잘못도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부하의 목을 웃으며 벤 대한민국 어느 방송사의 대단한 간부들을 존경해 드리는 말이다. 

<소참 박성제·최승호>  

▲ ⓒMBC홍보영상 갈무리

이미 언론을 통해 전부 알려진 사실이며 녹취록까지 공개됐다. 한번 보자.
 
<한겨레>와 <뉴스타파>는 25일 오전 최민희 의원실이 입수한 녹취록을 바탕으로 MBC 경영진 핵심 인사가 2012년 파업 도중 해고된 최승호 피디와 박성제 기자에 대해 “증거가 없는 것을 알고도 해고했다”고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민희 의원은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어제(25일) 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극우 매체 관계자와 만나서 나눈 대화를 폭로했다. 2012년 MBC에서 벌어진 대량해고 사태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내용과 MBC의 온갖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했다.
 
<한겨레>는 25일치 신문 1면과 3면을 통해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2014년 4월 1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식당에서 김재철 전 MBC 사장의 변호사, 일부 사내 인사 등과 함께 극우 성향의 인터넷 ㅍ매체 소속 인사 2명을 만나 “박성제하고 최승호는 증거 불충분으로 해서 기각한다든가(법원에서 기각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면 그때 최승호하고 박성제 해고시킬 때 그럴 것을 예측하고 알고 해고시켰거든. 그 둘은, 왜냐면 증거가 없어. 그런데 이 놈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해고를 시킨 거예요. (…) 나중에 소송을 제기해서 들어오면 그때 받아주면 될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을 갖고서 (해고했다)” 

■ 파리 목숨, 기자와 PD
 
해고 사유가 없는데도 우선 잘라놓고 나중에 소송을 제기해서 들어오면 받아 준다는 이 기막힌 발상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 순간 그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동물로 추락한다. 미안하지만 한겨레 기사를 하나만 더 인용하자.
 
백 본부장은 이 밖에도 “우리가 좀 사람을 키우고 준비를 해야 한다”, “경력 사원 뽑으면서 인사 검증을 한답시고 (출신) 지역도 보고 여러 가지 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일부가) 노조로 간다”, “라디오는 다 빨갛다”, “피디는 프로그램 다 배제시켰다”, “(예능 프로그램은) 회사가 손을 못 대고 있다” 등의 발언을 통해 내부 구성원에 대한 ‘정치적 물갈이’ 의도가 있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어떤가. 부끄러워 손이 떨린다. 한 때 MBC는 자랑스러운 언론이었다. 낙하산 사장은 회사 안에 발도 드려놓지 못한 채 쫓겨났다. MBC가 파업하며 거리시위를 할 때 시민들은 박수쳤다. 그런 MBC가 이제는 어떤가.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엠병신’이란 소리를 듣는다.
 
언론사에는 독특한 관행이 있다. ‘선배’라는 호칭이다. 머리가 허연 상사에게 아들뻘 되는 새파란 기자가 ‘선배’라고 부를 때 좀 거북하기도 하지만 기자사회의 특성과 의리같은 것을 느낀다. 지금 의리니 자부심이니 소리를 하다가는 바보 소리를 들을 것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KBS 중앙홀을 가득 메운 노조원들과 꽹과리 북소리를 들으며 또한 언론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쓰러진 기자들을 넘어서 한국의 민주언론은 정착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다. 잡혀가 주리를 틀리던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언론환경이다.

▲ ⓒMBC노동조합 누리집 갈무리

왜곡과 편파와 날조와 허위보도를 일삼는 언론을 매일처럼 봐야 하는 국민의 눈이 불쌍하다. 무관의 제왕이란 불의를 척결하는 의미며 결코 불의를 감싸고 편 들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 종편에 나와서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인간들이 과거 나를 찾아와 무슨 아첨을 했는지 그들 스스로는 알 것이다.
 
오늘의 언론 현실은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기레기’란 말을 들으며 귀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지금도 언론사에는 백발이 성성한 후배들이 있다. 어쩌다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하는 소리는 거의 같다. ‘애들도 먹고 살아야죠’ 그렇다. 처자식 하고 먹고 살아야 한다. 그 보다 중요한 일도 별로 많지 않다.

그러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진 동아일보 기자들과 조선일보 해직기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월부 책장사하던 친구들 생각이 난다. 얼굴조차 몰라보게 된 친구들. 벌써 많이 죽었다. 그들이 언론민주화를 위해 흘린 땀과 피는 지금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들은 처자식 먹고살 걱정 안 했단 말인가.
 
조·중·동은 아직도 언론임을 자부하는가. 종편에 나와 떠들어 대는 얼굴을 보며 그들로부터 선배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부끄럽다. 벼슬 한자리 얻고 싶은 간절함도 이유임에는 틀림이 없다. 청와대 고위간부로 발탁되어 부러움을 사면서 과연 그들 자신도 마음이 편안할 것인가. 최승호·박성제의 목을 웃으며 잘랐을 안광한·백종문. 물어 보라.
 
“MBC 아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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