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 아무리 깊어도

2002년 17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 노무현 대선 후보는 문밖에 서 있는 남자였다. 당시 정몽준은 갑자기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그날 밤, 노 후보는 정몽준의 자택으로 찾아갔지만 ‘문밖에 남자’ 신세였다. 정몽준이 삐친 이유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는다.

노무현이 문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정몽준은 술이 만취되어 있었다는 잘 아는 정몽준 최측근 참모의 전언이다. ‘창밖에 남자’ 노무현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서 있었을까. 이제나저제나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대통령 후보 노무현. 그 때 광경을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린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2015년 12월 13일 새벽. 또 하나의 ‘문밖에 남자’가 있었다. 그 이유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후배 작가인 배명숙의 연속방송극 ‘창밖에 여자’는 인기 연속극이었다. 주제가는 조용필이 불러 공전에 히트를 치고 지금도 사람들의 애창곡이 되어 있다. 그중 가사의 일부분인데 참 예쁘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그대의 찬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 ⓒ새정치민주연합 누리집 갈무리.

누군가는 정치를 최고의 예술이라 했다. 예술은 아름답다. 가사를 한 번 바꿔보자.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누가 정치를 예술이라 했던가
누가 정치를 예술이라 했던가
차라리 국민의 찬 손으로 정치를 잠들게 하라


국민들이 웃을 것이다. 그만큼 정치는 추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인식되었다. 정치인 자신들의 죄다. 또한, 국민들의 탓이다.

■사람이 아무리 미워도

피차에 정치적 이해득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람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2002년 정몽준이 찾아 온 노무현 후보를 맞아 차 한 잔 함께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냥 차 한 잔 마시면 된다. 내 집에 찾아온 사람이니까. 결코, 욕은 먹지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의 경우도 그렇다. 미울 것이다.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가 얼마나 원망스러우랴. 12시가 지나고 새벽이다. 밖에는 겨울바람이 차다. 들어오라고 해서 차 한 잔 마시면 된다. 정치제안이야 거절하면 된다. 긴 얘기할 필요 없다. 그냥 사람의 도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에는 동냥아치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 ‘내일 맑은 정신에 만나자’ 문재인이 술이라도 취해서 왔던가.

집에는 노웅래를 비롯한 당의 중진들이 있었다. 차 한 잔 함께 마시자고 권하지도 않았는가. 인심이 고약하다. ‘정치는 예술’이라고 했다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이토록 인간성을 함몰시키는 정치가 무섭다.

안철수는 탈당했고 남은 것은 끓는 양은냄비 물속에서 데어 죽는지도 모르게 죽는 개구리들뿐이라고 했다. 섬뜩한 표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평생 야당을 하기로 작심을 한 정당이라고 했고 집권을 해서도 안 된다고도 했다. 아무리 심술쟁이 놀부라고 해도 자신이 먹든 밥에 침은 뱉지 않는다. 안철수는 탈당 하루 전만 해도 자신이 탈당할 줄 몰랐다고 했다. 세상사 그런 것이다. 침 뱉은 밥을 다시 먹게 될지 어떻게 아는가. 그토록 모진 저주는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의학을 했으니 잘 알 것이다.

어차피 탈당했으니 잘해서 성공을 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는 이번에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너무나 순탄한 인생을 보냈기에 정치판이 얼마나 비정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반문재인 투쟁을 할 때 살이라도 떼어 주며 온몸으로 지원해줄 것 같던 비주류들의 체온이 식어간다.

몸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송호창도 탈당은 거부다. 먼저 탈당할 것 같았던 정읍에 유성엽은 말할 것 없고 황주홍·문병호는 의리를 지키려는지. 몇몇 비주류는 탈당의 탈 짜도 뻥끗하지 않는다. 그들을 믿었다면 안철수가 너무 순진하다.

자신을 편들던 사람들이 지금 뜨악한 걸 보면 안철수는 복장이 터질 것이다. 진짜 이럴 수 있는 거냐. 하루에도 열두 번씩 땅을 칠 것이다. 그 사람들 원망할 필요 없다. 원래 인간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되는 집안에는 사람이 꼬인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에게는 좀 안 됐지만, 초창기 그를 도왔던 사람들이 많이 안 보인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안 좋은 일이다. 이른바 친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친노의 응집력을 비난한다. 그럼 뿔뿔이 헤어지면 칭찬받을 일인가. 옛날에는 의리가 미덕이었다. 지금은 바보들이 하는 짓이라고 웃는다.

■문재인은 무엇을 반성해야 하나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직책은 엄청난 벼슬자리다. 사극에서도 보았다. 극작가며 연출가로 유명한 이윤택 씨는 경남고등학교 출신이며 문재인과는 동기동창에 같은 반이었다. 공부를 잘하던 문재인과는 그렇게 친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문재인이 비서실장이던 시절에 얘기를 글로 썼다. 동창들은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이유는 다 알 것이다.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했다는 것이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이다. 내 경우 동창들이 날 돌려놨다. 다 내 탓이다. 지금 만나도 그때의 서운함을 말한다. 무슨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닌데 피하더라는 것이다. 많이 사과했다. 문재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다 안다.

요구하는 것이 없으면 눈이 냉정해진다. 국민들은 정치인이 부패했다고 비난을 하면서 그 원인을 자신들이 제공했다는 사실은 모른 척한다. 부탁 안 들어 준다고 비난한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것이다. 정치인들이라면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원칙을 얘기하며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문재인에게 몇 가지 조언했다가 거절된 적이 있다. 인기영합이라는 것이다. 좋은 일이면 영합해야 한다. 울지 않는 아이 누가 젖을 주던가. 잘 보여야 인기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문재인의 결벽증은 문제가 있다. 나는 단언한다. 버려야 한다. 인기 없는데 어떻게 대통령 되는가.

■싸워도 치사하지 말아야

물어뜯어도 이겨야 한다. 이건 개싸움이다. 사람이야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정치는 말로 한다는데 너무 상처 내면 치유가 힘들다. 악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피차가 말이다. 안철수가 독이 오른 것 같은데 화를 눌러야 한다. ‘냄비 속 개구리’나 ‘평생 야당’ 같은 소리는 상처가 너무 큰 소리다. 화 날 때는 나도 심한 소리 하지만 난 정치가가 아니다. 정치가는 그래도 정제된 말을 써야 한다.

안철수가 완전히 옷을 벗은 것 같다. 그러면 안 된다. 김진태나 강용석이야 다르지만, 안철수에게는 그래도 어울리는 말과 행동이 있다. 분별이다.

자기 집 찾아 온 사람을 문밖에 세워두는 일은 다시 안 하는 게 좋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