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노동운동’ 위한 고군분투

지난 6월에 웹툰 윤태호의 <파인>과 최규석의 <송곳>을 이야기했다. 그 <송곳>을 이번에 JTBC에서 12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서 방영했다. 온 국민이 모두 보아야 할 드라마인데, 시청율이 2%쯤에서 그치고 말았다.(그래도 지상파 채널이 아닌 종합편성 채널 방송의 시청률로는 크게 성공한 드라마란다.) 왜 온 국민이 보아야 할 드라마란 말인가?

지난 50년을 흔히 ‘격동 50년’이라고 말들 하는데, 난 그 말로도 부족하다고 여겨서 “온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나쁜 어감을 담아서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드라마 <송곳>.

그 변화의 정도와 속도는 참으로 엄청나다. 이 ‘엄청난 속도’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난 500년의 유럽문명은 인류역사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런데 우리는 그보다 무려 10배나 빠른 50년 만에 이룩하였으니, 그 엄청난 변화 속에서 다시 또 엄청난 속도로 내달려 왔다”고 말한다.

GNP 1인당 100달러가 2만 달러까지 200배나 뻥 튀었다. 55~65년에 출생한 우리 ‘베이비 붐’ 세대는 그걸 생생하게 온 몸으로 부대끼며 감당하고 살아왔다. 기적이나 개벽이란 낱말이 있는데, 이 낱말도 그리 적절하지 않다.

“이젠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으로 가야 한다.” 그 열쇠는 ‘경제민주화’이다. 그런데 그게 ‘이명박근혜 정부’로 처참하게 묵사발이 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난 이젠 늦었다고 본다. 너무나 처참하게 뭉겨져 버렸다.

다음 정부가 정권교체를 이룩한다고 해도,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수렁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 뒷감당하다가 그 죄악의 업보를 모두 뒤집어쓰는 ‘오욕의 정권’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패배해야 한다고 본다. 그럼 그대로 폭삭 망하는 꼴을 두고만 보아야 하나? 그렇다. 개선이나 정권교체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폭삭 망한 뒤에, 다시 새로 일어서야 한다.

그 새로운 모색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화두는 ‘복지 민주주의’와 ‘생태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생태 민주주의’는 지구촌 전체의 문제니까, 우선 선결과제는 ‘복지 민주주의’이다. ‘복지 민주주의’의 핵심 열쇠는 ‘경제 민주화’이고, 그 ‘경제 민주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송곳>이 갈망하는 ‘노동 민주화’이다.

지난 80시절 말기에 일어났던 ‘노동 민주화’의 불씨를 잘 살려냈어야 했다. 그 절호의 찬스를, 노동운동 주체가 너무나 추상적 이념이나 방법에 사로잡혔고, 김대중과 김영삼의 통탄스런 잘못으로 불어닥친 노태우 정부의 모래바람이 뒤덮어 버렸다.(그들의 이 잘못으로 부산과 경남 지역이 ‘우리가 남이가’로 통째로 보수화 되어버린 지난 25년이 지금 이 ‘처참한 묵사발의 원흉’이다. 너무나 통탄스럽다.)

그러니까 ‘노동 민주화’에는 두 가지 커다란 장벽이 있다. 하나, ‘경상도 집단’과 그에 기생하는 ‘충청도 집단과 경기서울 집단’의 잘못된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 둘, 노동운동을 추상적 이념과 방법에서 벗어나 노동 현장의 생생한 현실에 깊은 공감과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것. 누가 이걸 모르나? 그렇다.

그런데 첫 번째 장벽은 도저히 넘어설 수가 없다. 그래서 겨우겨우 생각해 낸 게, 자폭하는 방법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패배해야 한다.” 아니, 그 다음 또 그 다음도.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두 번째 장벽은 어떻게든 넘어서야 한다. 예전의 노동운동은 이걸 ‘회색분자’의 농간으로 매도하였다.

그들이 이제는 이게 ‘회색분자’의 농간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이 드라마 11회와 12회에서 이 점을 강조해서 보여준 게, 이 드라마의 화룡정점畵龍點睛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걸 <송곳>이 보여주었다.

예전의 경직된 노동운동을 반성하고 실속있는 현실적 노동운동을, 과격한 데모나 딱딱하고 무거운 공부나 강의가 아니라, ‘시시한 노동자들’의 초라하고 짜잔한 행태들 그리고 ‘갑질’의 주체이면서도 도구이기도 한 ‘중간 관리들’의 비겁하고 교활하지만 그들도 어찌 할 수 없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온 국민이 모두 보아야 할 드라마”이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tv/detail/video/view.do?tvProgramId=69141&videoId=71171316-5926025&t__nil_VideoList=thumbnail

웹툰으로도 감동했는데, 드라마론 더욱 감동했다. 좀 더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서 더욱 좋았다. 두 주인공, 안내상과 지현우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외모도 그 캐릭터에 어쩌면 그렇게도 딱 들어맞는지….

안내상, 그 동안 여기저기서 만났지만, <송곳>의 노동상담소장 캐릭터처럼 단박에 화악 잡아당긴 건 처음이다. “저 사람이 저렇게 연기를 잘 했나?” 그 무슨 중고등학생 드라마의 학년주임 이미지에만 맴돌았던 내가 미안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작품에선 강렬하게 다가왔다. 눈빛 몸짓 말투…, 모든 게 달랐다.

그보다도 더욱 놀란 건, 그가 ‘광주 미국문화원’에 사제폭탄을 설치한 혐의로 감옥살이를 한 드센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 뒤 끝에 “나도 노동운동을 조금 했지만 실패했는데, 구고신을 연기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그 구고신은 하종강씨를 모델로 했다”고 했다. 그런데 하종강은 “나는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구고신은 최규석씨가 수많은 노동운동가를 치열하게 취재해서 만들어낸 모자이크의 조합이다”며 최규석의 고생과 역량을 강조했다.

그의 인터뷰도 감동이다. 이 땅에서 노동운동이 얼마나 척박한 고난 속에 오해받고 핍박받는지 구구절절하다. 거기에서 난 ‘올바른 노동운동’을 이룩하는 게 이토록 망가져 버린 우리나라를 그나마 새롭게 일구어낼 가장 소중한 ‘희망의 씨앗’임을 알 수 있었다.
 
<예고편들> http://movie.daum.net/tv/detail/video/view.do?tvProgramId=69141&videoId=71171315-5926025&t__nil_VideoList=thumbnail

우리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이렇게 드라마로 대중화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노조 없는 기업’의 상징인 삼성그룹과 매우 친밀한 중앙일보 계열의 JTBC에서 최초로 만들었다는 아이러니가 참 슬프다. 이 어려운 작업에 앞장선 최규석 작가와 이 드라마의 연출자에게 깊은 감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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