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있다. 이제라도

지난 9월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제안한 10가지 혁신안 속에는 엄청나게 놀랄만한 것이 있다. 부패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거나 재판 중인 당원에게는 당원권을 정지시키고 공직후보 자격심사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것이 당헌 당규에 반영되면 저축은행에서 돈 받은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박지원 의원과 ‘입법로비’ 의혹으로 재판 중인 신계륜, 신학용 의원이 공천에서 제외된다. '막말 파문'으로 징계받은 정청래 최고위원, 복역 중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노영민·신기남·김창호도 성완종 뇌물과 관련해 소환이 요구된 김한길도 신경이 곤두 설 것이다.

▲ ⓒ팩트TV 갈무리

안철수는 지난 9월 당의 혁신안을 거부하고 자신의 파격적인 혁신안을 제시, 문재인을 압박했고 거기에 더 해 거의 불가능한 전당대회도 요구했다. 안철수로서는 절대로 문재인이 자신의 혁신안을 받아드리지 못할 것이라 확실했을 것이나 명분은 확실하게 쥐었다고 했을 것이다.

박지원·신계륜·한명숙의 정치 생명이 끝나는 이 제안을 무슨 수로 받을 수 있겠는가. 아울러 안철수는 이미 문재인이 제안했던 혁신위위원장 인재영입위원장 제의도 거부했다. 문재인의 제의는 거부하는 데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그러나 뭔가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문재인이 안철수의 10개 개혁안을 받아드린 것이다. 파장은 놀라웠다. 문재인이 뽑아 든 마지막 칼이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실패하면 정치 떠난다는 선언이다. 현 상태로는 아무 일도 못 한다는 절망에서 털고 일어나 승부수를 던졌다. 전당대회는 명분도 없고 시기적으로도 불가능 하다. 단호히 거부한다.

안철수가 거부한 인재영입위원장도 자신이 맡는다. 안철수의 10개 개혁안은 당헌당규로 정한다. “빠른 시일 내에 총선기획단, 총선정책공약준비단, 호남특별위원회, 인재영입위원회, 선거대책위원회를 순차적으로 구성해 총선체제에 돌입할 것”이다. 또한, 문재인 대표의 요청에 따라 노영민-신기남-유성엽-황주홍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전광석화 같은 결정과 추진이다. 점잖은 신사 ‘물재인’이 ‘강철재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지금까지 느긋했을지도 모를 안철수와 비주류는 아연했다. 안철수는 ‘당을 어디로 끌고 갈지’ 이 말이 전부였다. 비주류라는 사람들은 ‘비장의 카드’라는 ‘탈당’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복잡하게 머리가 돌아갈 것이다.

■명분도 실리도 잃었지만

안철수 의원이 6일 기자회견을 했다. 중언부언 늘어놓았지만, 이 정도의 논리밖에 세울 수 없는지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전직 정치학 교수 한상진은 뭘 하는가. 한 가지만 지적하자. 안철수는 ‘전당대회와 국가의 선거를 동일 시 했다’ 단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고력이다.

안철수는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고 묻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명한 생각이다. 당은 지금 혁신을 추진하고 있으며 안철수의 10개 혁신안도 당헌 당규에 규정토록 했고 당명도 바꾸고 새로 태어나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불가능한 전당대회 말고는 그의 제안을 다 들어 준 셈이다.

그래도 진통은 클 것이다. 당의 중진들이 공천을 받지 못하는 비참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당헌 당규대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주류 비주류의 구별도 없어야 한다. 오로지 쓰러지는 당을 일으켜 세운다는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한다.

비록 안철수의 꿈은 당 대표였고 10대 혁신은 명분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그의 혁신안은 당의 혁신안보다 더 철저하다. 이런 자신의 혁신안을 수용한 문재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번 혁신안에 트집 잡으려 한다면 안철수는 자신이 제안한 혁신안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누구도 이해 못 할 자기모순이다. 방법은 한 가지다. 순응하는 것이다.

박지원은 이미 엎드렸다. 민집모를 비롯한 비주류는 탈당 얘기만 나와도 펄쩍 뛴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공천만이 존재한다. 공천 탈락대상자 20%에 해당되지 않기 위해 온갖 재주를 다 부릴 것이다. 국민의 무서운 눈이 지켜보고 있다. 문재인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아님을 세상이 안다.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시절 자기 당 사람들의 의해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박지원·김한길·이종걸을 비롯한 의원들은 ‘후단협’을 만들어 당의 후보를 흔들었고 나중에 탄핵까지 주도 했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행태도 그 때에 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다르다. 국민이 용서치 않는다.

안철수의 목표는 크다. 눈도 크게 뜨고 대한민국을 보아야 한다. 지금 나라 꼴이 어떤가. 5일에도 4만의 시민이 모였다. 언제까지 문재인 흔들기에 전념할 것인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는 국민의 평가를 안철수는 잊지 말기 바란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더 멀리 더 넓은 세상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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