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영화? 맵고 시리고 화끈하다!

“진짜 재밌고 감동했다. 정말 끝내 준다!”

보는 내내 탄성이 일어나는데, 그 놈의 예의를 차리느라 탄성을 안으로 꾸욱 눌렀으나, 끝내 서너 번이나 탄성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상영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보았지만,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맘을 지그시 누르며 가다듬었다.

우리 영화에서 내 열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은 <박하사탕> <친구> <공동경비구역> <와이키키 브라더스> <지구를 지켜라> <타짜> <방가 방가> <황해> <완득이> <변호인> 등이다.

감독의 관점이 민주파 쪽이라기보다는 사회파 쪽에 가까운 영화들이다. 세상의 어두운 그늘을 향한 슬픔이 배지 않은 작품은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슬픔에 민감한 체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세상이 너무 나쁘고 잘못 가고 있다는 분노 때문이기도 하다.

이 슬픔과 분노가 상당히 심각하다. 그런데 이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가까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니와 더구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자칫 몸과 맘을 다쳐서 건강을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다치지 않도록 많이 노력한다.

이번 <암살>과 <베테랑>이 작품성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이러한 나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재미있고 고마웠다. 더구나 폭발적인 쌍끌이 쌍천만명의 관객이 모여드니 더욱 기뻤다.

“XX! 이 개 같은 세상에,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아자! 아자! 아자!” 그 통쾌감이 하늘을 찌르고 수그러들 즈음에 <내부자들>이 떠올랐다.

우민호 감독? 누구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감독과 시나리오다. 모르는 감독이어서 불안하다. 그러나 이병헌 · 조승우 · 백윤식, 예고편에서 그들의 ‘한 카리스마’가 사시미 칼날처럼 번뜩인다. 가슴이 두근두근 박동쳤다. 원작 만화가 <이끼>와 <미생>의 윤태호 작품이니까, 믿고 보기로 했다.

<메인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85378&videoId=49373&t__nil_VideoList=thumbnail

존경하는 윤태호! 나이가 나보다 10살이나 적지만, 그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가득 차오르는 감동이 너무 커서,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에 그의 <파인>과 최규석의 <송곳>을 이야기했다. (<송곳>은 JTBC에서 12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지금 10회까지 성황리에 방영하고 있다. 토,일요일 밤 9시40분 / <파인>은 2017년 상영예정으로 영화를 만든단다. <추격자>와 <황해>를 만든 나홍진 감독이 만들면 좋겠다.)

그가 만화가이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나 이끌어가는 힘과 속도의 호흡이 어찌나 강렬하고 절묘한지 최고의 소설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거기에 화면을 처리하는 구도는 빼어난 영상작가이고, 감칠 맛에 깊은 맛까지 베어나오는 말맛은 둘도 없을 시인이다. 그의 모든 걸, 마치 최명희가 <혼불>에 한 땀 한 땀 새겨 넣은 생활 민속 · 송기숙이 <자랏골 비가>에 알알이 박아 넣은 속담 · 조정래가 <태백산맥>에 질펀하게 펼쳐내는 전라도 사투리 · 유용주가 <마린을 찾아서>에 시리고 맵게 맺혀서 토해낸 땀방울처럼, 머리 속에 박아 넣지 않고는 다음 쪽으로 넘어갈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의 <내부자들>은 미완성 작품이다. 이명박 정권을 배경으로 하는 정치드라마인데,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가 되기 1년 전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장하는 시기에서 이야기를 멈추었다.

앞으로 그 뒤를 다시 이어갈 것인지, 이대로 미완성으로 방치할지 궁금했는데, 갑자기 영화로 만들어졌다. 만화에서는 깡패 안상구가 어떤 사진기자와 방송국 피디와 엮여서 스토리가 펼쳐지는데, 영화에서는 이와 달리 정의와 부패권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검찰(조승우)과 엮여서 스토리가 펼쳐진다.

그 각색을 감독이 혼자 작업했는지 원작자 윤태호와 협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매끄럽게 잘 바꾸었다. 원작이 완성본이 아니기 때문에,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서 말하기 어렵다.

<캐릭터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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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그의 매력을 2009년 TV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했듯이, 그의 매력은 단순하게 외모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뛰어난 연기력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 영화에서도 그의 연기력은 역시 대단하다. 무엇보다도 전라도 사투리가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좀 서운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놀랐다.(전라도 사투리를 잘하는 주연이나 조연이 없어서 그게 항상 신경 쓰인다. 성동일이나 박철민이 전라도 사투리를 제법 잘 하지만, 자주 오바하고 그게 상당히 거슬린다. 결국 전라도 사투리는 김수미 말고는 아직 없다.)

조성우, <말아톤>에서 그의 장애인 연기에 깜짝 놀랐는데, 마침내 <타짜>에 이르러서 완숙해졌다. 몸집이 자그마해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순전히 연기력으로 자기 캐릭터를 강력하게 북돋우어낸다.

백윤식, <지구를 지켜라>에서 튀어 오른 뒤에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영화의 스크린을 온통 휘젓고 다녔는데, 이 영화에서도 간악한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물론 이병헌의 역할이 가장 크지만, 이 세 배우가 모두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자기 캐릭터에만 그치지 않고 상대방 캐릭터까지 삼각으로 어우러져 펄떡펄떡 뛰는 생동감이 넘쳐났다. 게다가 그 주변의 조연들마저 실감나게 잘 살려냈으니, 감독의 능력도 대단하다고 보아야 한다.

<친구>와 <타짜>처럼 남성 느와르의 맵고 쓴 맛도 갖추었고, <변호인>처럼 불의에 분노하는 뜨거운 열정도 갖추었고, 게다가 <범죄와의 전쟁>이나 <베테랑>의 화끈한 재미도 있다. 게다가 스토리를 일방적으로 몰고 가다가 막판에 한 번의 반전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업어치고 메치고 다시 뒤집어서 또 다시 거꾸로 매달아 오른다.

긴박감이 숨 가쁘게 몰아친다. 이 반전에 반전을 조금 더 천천히 몰고 가면 더욱 긴박감이 있었을 텐데,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인지라 빨리 진행할 수밖에 없었겠다. 그러하고도 120분을 넘어선 130분이었다. 이 영화가 좀 더 짜임새가 있으려면 150분이나 180분까지 가야 했는데, 뒤쪽을 너무 빨리 몰아친 게 아깝다. 앞쪽을 좀 줄였어야 했나? 아니다. 차라리 이대로가 더 낫겠다. 아~참! 맨 끝에 5분은 없애는 게 더 나았겠다.

너무 재미있고, 맵고 화끈하고 후련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영화중에서, 가장 재밌고 감동까지 안겨준 영화의 ‘최고 1등’으로 엄지를 추켜올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어서 다시 생각해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과 <쥬라기 공원> <킹콩> <터미네이터2> <스파이더 맨2>, 월트 디즈니 작품들까지. ‘최고 1등’이라할 영화들이 시샘하듯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무튼 정말 끝 내 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어서 더욱 그렇다. 강력히 추천한다. 남자들은 꼭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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