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제대로. 멀리, 넓게, 깊게.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은 모르는 지식인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옳은 말이라고 좌우명으로 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처럼 현명한 사람도 무서운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삼국지 열 번 읽은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안다는 것이다. 제갈공명의 지혜를 따라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마는 공명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알고 있었을까.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려는 노력을 부단히 계속 해야 하고 그것이 또한 인간으로서 완성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안철수와 박원순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라고도 한다. 특히 남들이 잘났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착각증상은 심하다. 날랜 고양이 밤눈이 어둡다고 한다.

2011년 안철수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로 50%의 지지율이면서도 불과 5%의 지지율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직을 포기했다. 양보였다. 당시 정가의 최고 뉴스였던 후보직 양보는 안철수의 주가를 하늘로 치솟게 했다. 야권 대선후보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대통령 자리도 가까이서 손짓을 하는 듯했다.

▲ 안철수 의원.

박원순은 서울시장이 됐고 이제 대통령 후보군에 속해 있으면서 지지율은 안철수를 앞서 있다. 안철수가 속 좀 상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때 안철수가 양보하지 않고 만약 서울시장에 당선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앞일을 누가 알 수 있으랴만 지금처럼 어려운 처지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하는 사람들은 거의 민주화 투쟁경력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물론 민주화를 방해한 세력도 당당하게 정치를 한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과문한 탓인지 민주화 투쟁에는 전혀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입이 험한 친구는 안철수 의원의 경우 백신 빼면 뭐가 있느냐고 한다. 대학생 상대 강연과 무릎팍도사 출연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민주화 투쟁 한번 한 적 없고, 약자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 본 적도 없다. 문재인이나 박원순과는 그런 부분에서 차이가 나지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니까.

그렇다면 왜 안철수는 주위에서 생각하기에 심하다 할 정도로 자기 고집에 매몰되어 있는가. 머리 좋은 사람들의 일반적 함정이다. 나 밖에 누가 있으랴. 내가 최고다. IT 최고 권위자. 내가 하면 옳다는 자만과 오만이 바로 정치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믿는 그것이 바로 안철수 의원이 빠진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의 실수

안철수 의원은 자타가 인정하는 IT 전문가다. IT가 미래 예측기능까지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의원이 좋은 머리인 것만은 틀림없으니 확실히 보통사람보다 미래 분석 능력은 탁월할 것이다. 그러니까 50%의 지지율로 5% 지지율에게 양보를 할 때는 분명히 주도면밀한 분석과 계산을 했을 것이다. 요즘 안 의원이 화제의 인물이라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특히 정치평론가나 정치칼럼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약방에 감초고 술안주다.

이름을 밝히기는 그렇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정치판 분석가 한 분이 안 의원을 분석했다. 왜 그때 박원순에게 양보했을까. 그의 분석이다.

“안의원의 생각은 서울시장에 있지 않았다. 푸른 기와집에 있었다. 50% 지지율에다 전국이 안철수 열풍이다. 대학 토론에 가면 열기가 무섭다. 바야흐로 IT 시대 아닌가. 어느 누구도 내 길을 막지 못한다. 괜히 골치 아픈 서울시장 하다가 까딱 실수라도 하면 큰 꿈은 일장춘몽이다. 작은 고기는 박원순이 먹게 내버려 두자.”

▲ 안철수 의원이 지난 5월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35주년 전야제에 참석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광주인

사람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맹점이 있다.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다. 그러나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어디 있는가. 안 의원도 예외일 것이 없었다. 순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것도 야심만만한 똑똑하다는 사람들의 일이다.

그의 앞에는 문재인이란 큰 벽이 있었다. 그 벽을 넘어야만 하는 것이다. 고민이 시작됐다. 아니 시련의 출발이었다.

“여론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뭔가 밀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설마 대세에 무슨 지장이 있으랴’ 대선출마도 선언했고 후보 등록도 했다. 헌데 그게 아니다. 단일화의 압력이 거세다. 외면 할 수도 없다. 참모들의 피를 말리는 협상도 계속된다. 여의치가 않다. 분명한 것은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정당이라는 배경. 노무현의 후광. 문재인이 인품, 밀린다 우쩨 이런 일이.”

안철수 후보는 사퇴했다. 문재인 후보는 48%의 득표를 했지만 낙선했다. 사건 뒤에는 말이 남는다. 안철수가 문재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실수다. 국민들이 보기에 어쩌면 저렇게 열심히 문재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정성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선거일에는 투표만 끝내고 미국으로 갔다.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가뜩이나 서운한 판에 이런 안철수의 행동이 기름을 부었다. 안철수만 열심히 했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스크럼을 두려워말라

성인군자라도 속이 상할 것이다. 문재인만 아니었으면 내가 되는 건데. 하지만 아무리 원망해도 날아가 버린 새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역시 앞을 막는 벽이 있다.

“김한길과 공동대표가 되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꿔도 소용이 없다. 방법은 하나. 문재인이 정치에서 사라져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앞 길이 보인다.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문재인이 후보가 되면 5년이 지나간다. 다음에 보장이 있는가. 모른다. 다음에는 박원순·김부겸·안희정 등 기라성 같은 후보군이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더욱더 희망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문재인이 후보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게 최우선 과제다.

▲ 안철수 2012년 11월 광주 충장로에서 광주시민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광주인

지금 안철수 의원이 보여주는 정치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흔들어서 떨어트리자. 비주류와 손을 잡고 안철수의 후보 선출을 막자. 새누리 후보가 대통령 되는 것이 차라리 자신의 대권가도에는 이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 공천권에 목을 매는 비주류의 행태가 안철수 의원의 생각과 제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이익 앞에서는 적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적의 적은 동지라지 않던가.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 열화같은 지지를 받으며 정치권에 등장했을 때 국민들은 또 하나의 희망을 보았다.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새로운 똑똑한 인물이 나왔다고 설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를 따르던 좋은 참모들이 다 떠났다. 되는 집안에 인물이 모인다지 않던가.

아직도 늦지 않다. 정치에도 정도는 있다. 정도를 가라. 지금 국민이 너 나 없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권교체다. 이명박-박근혜정권 10년이 진흙탕으로 만들었다. 진흙을 걷어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앞장 서 삽을 들어야 할 것이다. 왜 비주류의 들러리를 하는가. 문·안·박 스크럼을 짜야 한다. 나는 럭비선수 출신이다. 스크럼의 위력을 아는가. 상대방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문·안·박에 참여해서 진정성을 보이는 게 가장 좋은 길이다.

지난 대선 중에 최선을 하지 않은 과오는 가장 빨리 벗어 버려야 할 누더기다. 안철수 의원은 지금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재목임을 국민은 알고 있다. 문·안·박 스크럼. 안철수가 여기서 빠지면 그는 영 영 도태다.

IS도 아닌데 왜 얼굴 가리느냐고 한다. 민중총권기는 폭도로 규정된다. 이러다가 감기 들어도 마스크도 못하는 세상이 되고 인기 절정인 ‘복명가왕’도 못 보게 되는 세상이 됐다는 뼈 있는 농담이 오간다. 물대포 얻어맞고 사경을 헤매는 노인에게는 일언반구 사과도 없다. 이게 정부냐 이게 나라냐 하는 소리가 국민들 입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안철수 의원도 이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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