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오후 2시 광주 지방법원 201호 법정에는 인화학교 안에서의 성폭력 가해자들의 첫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인화학교 동문, 재학생, 학부모들과 인화학교 대책위 사람들이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판부는 방청객을 향한 수화통역사의 통역에 제동을 걸었다. 피고 중에 청각장애인이 있어 심리를 위해 수화통역사가 배치됐는데 “방청객에게는 수화통역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들은 일어서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아인들이 방청하기 위해서는 수화통역이 필요하다며 항의했지만 재판부는 오히려 계속 통역하고 있는 수화통역사를 의자에 앉게 하고 통역을 중지시켰다.

이날 재판부가 청각장애인에게 수화통역을 중지시킨 것은 재판방청을 사실상 제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공개 재판주의는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 위원회의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법개혁의 주요골자인 공판 중심주의의 주요한 원칙이기도 하다. 이는 법적용에 대하여 국민들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하여 재판이 편파적이거나 강압적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재판은 광주지역 청각 장애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인권과 관련한 중요한 사안이자 그들이 그동안 가해자들로부터 핍박 받으면서 왜곡되었던 사회인식을 바로잡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부가 수화통역을 중지시킨 것에 대해 청각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알권리를 침해했으며 청각 장애인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법률 제16조의2항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의제공) ①장애인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 시설을 이용하고자 할 때에는 시설주에 대하여 안내 서비스·수화 통역 등의 편의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법에서는 ‘할 수 있다’라는 모호한 문구로 되어있어 ‘해야 한다’가 아니라는 것인데 재판부에 백번 양보하여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할 수 있다’가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그동안 재판부는 청각장애인 방청객을 위한 대책위의 수화통역 요구를 묵살하였다. 재판부에 항의하다 퇴장당한 전동문회 부회장과 인화 학교학생들의 소리 없는 몸짓을 보며 한없는 서글픔을 느꼈다.

그들의 알권리를 제한하면서 제판부의 권위와 위상은 만족할 만큼 높여졌는가? 만약 언론사에서 뉴스를 내보내면서 직업별 직종별 분류하여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니 알 필요 없다고 뉴스를 제한하여 제공한다면 동의하겠는가?

정보의 홍수 시대, 그것마저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를 법치의 중심인 사법부가 앞장서는 모양새다. 대한민국 꼴이 말이 아니다. 이럴 때 배우 한예슬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대한민국 꼬라지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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