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착각 

‘제멋에 산다.’ 이런 영화제목이 있었던가. 있거나 말거나 제멋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거 없으면 사는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이게 없으면 사는 재미가 사라지지 않을까.

■나를 밟고 가라

군사독재자 전두환의 항복을 받아 낸 6.29선언은 독재에 저항한 국민의 위대한 승리였다. 전국이 반독재투쟁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때 목격했다. 부산 조방 앞 대로. 시위 물결을 경찰이 막아섰다. 해산하라는 경고가 연달았다. 시위대는 전진했다. 최루탄이 발사됐다. 구름처럼 흩어지는 시위대. 그 때 한 사람이 아스팔트에 버티고 앉았다. ‘나를 밟고 가라’

진압 경찰들이 그의 앞에서 멈췄다. 밟고 가지 못했다. 노무현이었다. 흩어졌던 시위대가 노무현 주위를 감싸고 보호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때 감동이 살아난다.

김대중 김영삼 두 대통령은 야당지도자 시절 단식을 했다. 죽음을 각오한 단식으로 정권을 울렸다. 무엇이 그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퇴전의 용기를 주었는가. 정의였다. 국민의 신뢰였다. 독재정권은 그들을 밟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다고 포기한 것이다.

■주승용의 ‘나를 밟고 가라’

▲ ⓒ<팩트TV> 갈무리

‘나를 밟고 가라’ 오래간만에 듣는 말이다. 당원과 국민에게 자신의 재신임을 묻겠다는 문재인 의원에게 반대하면서 재신임을 물으려면 자신을 밟고 하라는 선언이다. 무서운 소신이다. 모든 것을 각오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반응은 어떤가. 그냥 저 사람 왜 저러지? 정도라면 섭섭할지 모르나 실제로 그렇다. 신임을 물었으면 하든지 말든지 선택하면 된다. 왜 자기를 밟으라고 하는가.

그 전에 국민에게 설명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왜 문재인이 재신임을 물어 달라고 했는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이른바 비주류라는 정치인들이 문재인을 사퇴하라고 얼마나 흔들어 댔는지 그들이나 국민이나 모두 잘 알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선출한 당 대표를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심지어 문재인의 혁신 주장을 ‘유신’에 비유한 이종걸 원내대표도 있다. 최원식 의원은 ‘혁신은 유신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정치인들에게 지도력이란 매우 중요하지만 혼자 발휘되는 게 아니다. 특히 정당 같은 조직에서 작심하고 흔들어대면 방법이 없다. 요즘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협조나 타협 대화는 남의 나라 얘기다. 어떻게 해서든지 트집을 잡고 흠집을 내려고 한다. 이들이 바로 비주류라는 것을 세상이 다 안다.

20여 명 남짓한 비주류의원들은 마치 순서를 정해 놓은 것처럼 당 대표를 흔든다. 박지원 의원이야 당대표에서 탈락한 인간적인 감정이 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문재인 흔들기는 명분이 없다. 자신도 당 대표를 했고 혁신을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의 정치적 행태를 보면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안철수 김한길 박지원 주승용 등이 순서를 바꿔가며 문재인을 비판하고 나머지는 박수친다. 종편을 비롯한 보수언론들과 정치평론가들이 응원한다. 이쯤 되면 항우 같은 장사도 제갈공명도 방법이 없다.

국민들은 어떤가. 문재인은 속도 없는 정치인이냐고 한다. 아무리 점잖다고 해도 정도 문제지 저래서 무슨 정치를 하느냐. 저런 사람을 지지해도 되는 것이냐. 지지율이 추락한다. 급기야 당대표를 사퇴하라는 비주류의 주장이 터졌다. 예정된 수순이다.

■문재인의 전부를 걸었다

문재인은 정치생명 뿐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걸었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48%의 득표를 했고 제1야당의 당 대표다. 온갖 말로 타협을 시도해도 작심하고 끌어내리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있는가. 방법은 당원과 국민에게 묻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결심을 한 것이다. 이미 혁신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대표직을 사퇴한다고 했다. 아울러 중앙위원회에서 자신의 재신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약속했으니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신임을 취소하라고 비주류가 아우성이다. 조경태 의원은 ‘집단적 광기를 보았다’고 했다.

안철수는 뭐라고 했는가. "나는 당 미래 걱정하나 문재인은 자신 거취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인가.

도대체 왜들 이러느냐고 묻는다면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할지 모르나 국민들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간단명료하다. 혁신안대로 하면 자신들은 호남왕국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 때문이다. 얼마나 안락한 땅이었는가. 태풍이 불어와도 끄떡없는 낙원 같은 호남이었다. 죽을 때까지 금배지 달고 살 수 있는 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사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이해는 해도 동의는 안 된다.

■재신임은 물어야

문재인에 대한 재신임 문제가 제기된 후 여러 곳에 물어봤다. 주류 비주류 할 것 없이 속마음 털어놓는 의원들이 있다. 비주류의 말이다.

‘비주류 강경파들도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안다. 혁신안이 통과되고 문재인이 총선 사령탑이 되면 자신들의 입지는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는 다 곁가지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기주의다. ’ 주류의 생각은 어떤가.

‘이런 상태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총선은 참패다. 대선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들의 반대는 예상했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은 혁신이다. 문재인 대표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구태냐 새로운 정치냐.’

재신임이 되면 조용해지는가. 이미 비주류 중요인물이 한 말이 있다. ‘재신임과 상관없이 문재인 흔들기는 계속될 것이다’ 잘못된 생각이지만 정확한 속셈이다. 그러나 잊은 것이 있다. 국민의 싸늘한 여론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진흙탕 싸움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하고 대의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당원과 국민이 재신임했는데 무슨 낯으로 흔들기를 하면서 국민을 볼 것인가.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인은 죽기 마련이다. 밟고 가라고 하지 않아도 죽는다. 죽게 마련이다. 보고 있지 않은가. 신뢰를 잃은 정치인들의 추한 모습이 얼마나 주위에 득실거리는가.

이종걸 원내 대표에게 한마디. 그는 당 대표 흔들기를 넘어 당의 단합을 위한 당 대표의 재신임 요청 자체를 흔들고 무력화하려 했다. 원내 대표의 자세가 아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신뢰를 잃은 정치인의 갈 곳이 어디인가.

문재인 대표는 소중한 것은 간직해야 하지만 집착하면 추해진다. 포기해야 할 때는 깨끗이 미련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정치발전과 혁신을 위해서 지도자가 안고 가야할 운명이다.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사막에선 지도를 보지 말고 나침반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산’이라는 지도를 내려놓고 ‘국민’이라는 나침반만 보며 뚜벅뚜벅 큰 길로 가겠습니다. 당의 미래와 저의 미래를 국민과 당원들께 맡깁니다.”

문재인이 운명과 결단. 국민이 눈 크게 뜨고 지켜본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