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고3 진학실은 지금 입시와의 전쟁 중이다. 일선 고3 담임선생님들은 40여 명의 반 학생들 진학상담 하랴, 원서접수 돌봐주랴, 추천서 써주랴, 자기소개서 첨삭 지도해주랴, 각종 증빙서류 챙기랴, 여기에 더하여 공문 처리하랴, 교재 연구하랴 등등 연일 눈코 뜰 새 없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학교의 명운이 자신들의 손에 있는 양 눈에 불을 켜고 진학실을 지킨다. 이런 모습은 비단 우리 학교의 모습만은 아니다. 전국 고교의 고3 진학실의 판박이 모습이다. 수년 전 이맘때의 고3 진학실 풍경과 별로 달라진 건 없다.

고3 학생들이 수업 중 졸다 혼나는 풍경도 그대로다. 아마도 현재의 대학의 계급적 서열구조가 혁파되지 않는 한 이러한 풍경은 수십 년이 흘러도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시간의 수레바퀴 아래서 달라진 건 교사와 학생들 개체일 뿐일 것이다.

나는 복 받은 고3 담임교사다. 불량기 제로에 가까운 40여 명의 순수 무균질 학생들의 담임을 맡아서다. 그래서 지금까지 반 아이들을 상대로 크게 노기를 띤 적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다들 교사란 권위에의 복종을 내면화했는지는 모르지만 유교적 질서의 가부장적 권위에 길들여진 내게 그들은 거세된 도전과 응전으로 내게 미소로 지으며 대할 뿐이다. 만약 토인비가 봤다면 역사의 퇴행을 가져올 존재들이라 여겨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변명 같지만 40여 명의 학생들이 나를 거세된 도전과 응전으로 대하는 건 나의 가부장적 절대 권력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내게 대항할 그들의 육체적 기력이 다 소진돼서가 아닐까?

물론 장휘국 교육감의 과감한 등교시간 늦추기로 인해 전년도에 비해 학생들이 든든한 아침 식사를 하고 온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학교, 아니 대한민국의 고3들은 학습량 면에서 우리 국민들이 좋아하는 세계 1위의 기염을 토하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정규수업 외에도 방송수업에, 보충학습에, 자율학습에 밤 열시까지 이어지는, 아니 귀가 후에도 밤 열두 시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고난의 학습 행군’은 흡사 맹목적인 종교적 행위에 가깝다. 이런 교육 여건 속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 흥미도가 꼴찌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누가 이 놀 줄 모르는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랴. 우리 학생들이 가련하지 않은가? 돌은 기성세대인 나와 우리를 향할 때 그 방향을 올바로 잡은 것이리라.

나는 요즘 참회의 심정으로 새로운 교수법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내 수업을 두고 ‘교수법’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하지만, 그래도 교사란 일말의 자존심이 있기에 조는 학생들을 보면 나는 으레 호통부터 치며 졸음 쫓도록 푸시업을 약 30회 가량 시킨 후 자리에 돌아가게 해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는 건 학생들 자신이지만 학생들을 졸게 만드는 데 이 땅의 교육환경도 한몫한다.

하지만 보다 더 큰 몫은 가르치는 교사인 내게 있는 게 아닐까. 즉 학생들을 재운 주범은 보잘 것 없는 고리타분한 수업을 한 교사인 나였던 것이다. 이래 놓고도 나는 여태 조는 학생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그들에게 벌만 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의 행위에 대한 참회의 심정으로 조는 학생들을 불러내 벌을 주는 대신 “고3 생활 힘들지? 힘내라.”라는 내 성격과는 극히 부조화를 이루는 멘트를 날리며 학생들을 껴안아 주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이 행동이 학생들의 졸음을 쫓는 데 벌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내 이미지와 대척점에 서있는 부조화스러운 내 언행을 보며 킥킥대곤 한다. 지적당한 학생은 나와의 어색한 포옹을 나누며 멋쩍어 하면서도 낄낄대며 자리로 돌아간다.

웃음은 전염병이 강하다는 말을 방증하듯 한 녀석이 낄낄대면 교실 전체가 ‘우하하!’ 소리를 내며 웃음바다를 이루곤 했다. 학생들은 다음엔 누구와 어색한 포옹을 할까를 기대하며, 아니 거기에서 파생되는 웃음을 즐기기 위해서 눈빛을 더욱 빛내곤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에도 한계는 있다. 내가 남교사라서 여학생 반에서는 써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조는 여학생을 깨우기란 남학생들보다 곱절은 어렵다. 부드럽게 말하자니 소위 씨알이 안 먹히고, 호통을 치자니 곧 울 것 같고, 푸시업을 시키자니 알통 생길 것 같고, 매를 들자니 체벌 금지돼 있고, 벌점을 주자니 형식적 매너리즘 같고, 욕을 하자니 인격살인 같고…… 허허참!

교수법이 미숙한 내가 고작 찾아낸 것은 사물함 앞에서 잠 깰 때까지 서 있다가 들어오는 것이다. 아니면 가끔 “너처럼 이쁘고 착한 학생은 여태 없었어야.”라고 아부를 떨거나, 어설픈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의 약발이 다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학생에게 노래를 시켜보거나 내가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이다. 하지만 고요와 정적을 좋아하셨던 전직 교장이 옆 교실에 피해를 준다고 큰 소리를 내지 말라는 교시를 내려왔기에 수년 째 여기에 길들여진 내가 노래로 잠을 쫓는 건 요원해 보인다.

이 최후 수단으로도 불가할 경우 궁극의 최후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그건 불교 종립학교의 이념을 받들어 졸음을 관용과 용서로 포장한 자비로써 용서하는 것이다. 이처럼 고3 여학생들의 졸음을 쫓기란 정말 어렵다. 여학생들과의 즐거운 수업은 나의 숙제다. 하지만 눌변에다 유머조차 없는 내게 이건 정년퇴임할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할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만 같다.

학생은 교사의 존립근거다. 교사가 있어야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있어야 교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결코 억압과 호통의 대상이 아니라 교사인 내가 마땅히 떠받들고 섬겨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의 실천을 장담하진 못하겠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역량과 인품을 소유했던 역대의 통수권자들도 국민을 섬긴다고 거듭 맹세했음에도 국민의 머리 위에 독재의 암울한 먹장구름을 드리웠던 기억이 내게 과거형, 혹은 현재형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찌 이들의 내 삶의 기준이 될 수 있겠는가. 한번 해보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교사인 나를 존재하게 하는 가방 무거운 측은지심의 짠한 학생들과 마주한다. 이들의 눈을 보며 처진 어깨에 꿈의 날개가 돋아 삼포세대, 칠포세대의 철창을 뚫고 푸른 초장에 높이 떠 환희의 소리로 젊음과 생의 찬가를 구가할 한 마리 파랑새로 거듭나길 빌어보는 나의 꿈이 정녕 헛꿈이 아니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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