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와 상관없는 대통령의 불통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한마디 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서양속담도 있는 걸 보면 말조심은 동서고금 동서양을 관통하는 옳은 말이다. 대통령의 경우는 말 한마디로 선전포고도 할 수 있다.

6·25가 발발하자 이승만은 서울을 사수하니 ‘안심하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도망쳤다. 그의 한마디 말로 서울을 지킨 시민 중 50여 만 명이 죄 없는 빨갱이가 되고 납치되고 이산가족이 됐다. 대통령의 말은 이렇게 무겁다.

“영향력 있는 북한 인사들 망명해오고 있다”

“통일은 내년에라도 될 수 있으니 여러분 준비하셔야 한다”

지난 7월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한겨레 (8월 18일자 1면)가 보도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제일 먼저 머리를 친 것은 ‘어 이건 아닌데’였다. 파장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을 했으나 그 말은 이미 주워 담을 단계를 넘고 말았다. 믿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문제는 대통령이 이 말을 했드 안 했든 사실이든 아니든 이미 대통령의 말은 기정사실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대통령의 말이 아닌가.

▲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는 채로 걸러져 가장 중요한 것만이 대통령에게 보고될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정보를 기초로 해서 나오는 것이다. ‘내년에라도 통일이 올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북한 최고위층에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 발언을 북한이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였을까. ‘남한의 대통령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했을까?’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대담한 말을 했을 리는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진짜 내년에 통일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근거를 찾기 위해 북한은 지금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을까. 북한이 정말 급변사태를 야기 시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대통령은 자신이 일고 있는 정보를 함부로 발설하면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신뢰와 직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신뢰는 국가존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한국과 같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민감한 나라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론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지도자들은 지지율에 민감하다. 때문에 언론들도 여론의 지지율을 비중있게 다루고 국민들도 깊은 관심으로 주시한다. 더구나 언론을 다루는 기자들의 지지율은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기자들의 일상은 바로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든 일반 서민이든 기자들은 항상 그들과 접촉하면서 여론의 추이를 채감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은 어떤가. 매우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현역 기자들 10명 중 9명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비판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대다수 기자들은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해 민간인 사찰도 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등 대정부 불신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협회는 창립 51주년을 맞아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일에서 11일까지 현역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서운한 결과가 나왔다. 무려 88.5%가 ‘잘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아주 잘못 50.5%, 다소 잘못 38.0%)고 답했다.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자들은 그 이유로 46.7%가 ‘독선·독단적 리더십’을 꼽았고 ‘국민소통 미흡’ 35.6%, ‘경제정책 실패’ 8.2%, ‘복지·서민정책 미흡’ 6.1% 등이 뒤를 이었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기자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 자신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누구는 그렇게 보도하고 싶어서 하느냐. 결국, 마음에 없는 정직하지 않는 기사를 쓴다는 고백인데 그럼에도 기자들 자신의 여론조사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기자들 자신도 여론조사에서 ‘기자들이 사명감과 책무를 잊어버리고 ‘샐러리맨’이 되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82.9%가 ‘동의한다’(적극 동의 16.5%, 어느 정도 동의 66.4%)고 답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국민과 대화하고 국민의 생각을 살펴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되면 결코 국민이 실망하는 지도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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