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두려움을 이기는 것

“조용한 청춘들. 오늘(7월 30일) 앵커브리핑은 오래된 화두를 다시 한 번 꺼내볼까 합니다.

‘화창한 봄이었을까?’ 작가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란 단편을 펼쳐봤습니다.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 그 좁고 외롭고…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 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JTBC 누리집 갈무리

세상이라는 냉정한 문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입니다.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오늘 앵커브리핑이 주목한 말입니다. 왜 이들은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해야 하는가. 상반기 20대 청년실업자가 41만 명.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취업을 포기한 ’취포자‘와 취업재수생까지 합하면 그 수는 무려 12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지난달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몰린 인원만 13만 명입니다. 취업이 두려워 졸업마저 미루는 학생들로 대학은 넘쳐납니다.

사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뉴스들이지요.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책 역시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어 보입니다. 경제회생이란 명제 하에 대통령은 스스로 금기시했던 사면까지 거론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을 압박해 쥐어짜 낸 대책은 실상 절반 이상이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일자리였습니다.

‘나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도 내가 뭔지 잘 알 수 없으므로 오랫동안 멍하니 천장을 본다’ ‘하루종일 하는 말이라곤 “조용히 해” 밖에 없는 고시생’ 오늘도 조용히 도서관과 고시원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아들, 혹은 딸의 목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이 있습니다. ‘너무 힘든데 안아 주세요’ 등장하는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반입니다. 시민들은 함께 아픔을 같이합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든, 대학 졸업반이든, 졸업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희망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회는 언제 올 것인가.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한 것에 대한 보상은 있는 것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땡 전 뉴스와 손석희 브리핑

손석희 앵커의 ‘앵커브리핑’을 듣고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오늘따라 그의 앵커브리핑이 가슴을 흠뻑 적시는 것일까. 한동안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석희 앵커는 JTBC 뉴스룸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행한다. 손석희가 뉴스룸을 진행한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봤다.(못 본 날은 다음날 다시보기 시청)

방송뉴스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이 손석희의 뉴스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JTBC의 다른 시간 뉴스와도 다르다고 난 생각한다. 그것이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다. 언론이 신뢰를 받지 못하면 그것은 독약과 같다. 한국의 현실에서 언론이 끼치는 해악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 마약에 중독되는 원리는 언론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왜 생겼는가.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공정한 언론이고 용기 있는 언론인이다.

전두환 독재시절 ‘땡전뉴스’라는 것이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다. 땡 하고 시보가 울리면 어김없이 앵커의 입을 거쳐 나오는 ‘전두환 대통령은’ 이러고 저러고 지껄이는 ‘땡 전 뉴스’, 심지어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 격추로 250명이 사망했던 때도 뉴스의 첫 멘트는 ‘땡 전’ 이었다고 한다.

땡 전 뉴스의 진행은 앵커의 꿈이었다. 땡 전 뉴스를 거쳐 국회의원이 되고 부의장까지 한 기자도 있었고 언론사 사장은 손으로 꼽을 수도 없다. 독재자 전두환이 외국을 방문할 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했던 수행기자는 후에 야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가 됐고 지금도 왔다 갔다 탈당에 정신이 없다. 이런 언론인 출신 때문에 한국의 언론은 비참해진다.

이제 다시 ‘땡 전 뉴스’가 부할한다. 땡 ‘전’이 땡 박으로 바뀔 뿐이다.

■손석희는 누구인가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비극이었지만 집권세력은 빨리 잊고 싶었다. 손석희는 잊을 수가 없었다. 팽목항 현장과 안산 단원고에 기자가 상주하고 팽목항에 서복현 기자는 추위에 얼어붙은 입으로 세월호의 눈물을 전했다. 손석희도 현장 뉴스룸을 진행했고 국민들은 가짜 언론과 참 언론의 모습을 보았다.

메르스의 습격으로 온 국민이 공포에 휩싸였을 때 숨김없이 국민에게 알린 언론인은 누구였는가. 손석희가 없었으면 어림없었다고 국민들은 알고 있다. 왜 손석희는 따가운 눈총 받아가며 가감 없이 보도했을까. 바로 언론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는 국정원의 해킹의혹으로 정신이 없다. 국민들은 맨붕상태에 빠져있다. 지금 존재하는 것은 남인가? 자신인가? 조지오웰의 ‘대형(Big Brother)’이 곁에 있다. 누가 이를 명백하게 밝힐 수 있는가. 하루가 다르게 손석희 앵커가 제기하는 새로운 의혹은 설득력을 더해 간다. 뉴스룸과 앵커브리핑을 시청하는 국민들은 더욱 가슴이 아프다. 손석희의 뉴스룸에서 ‘국정원해킹’이란 말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국민은 국정원 요원만이 아닐 것이다.

■16시간 조사 받은 손석희

인터넷에서 손석희를 검색하면 수갑을 찬 채 닭장차에 실려 가는 밝은 모습의 손석희를 볼 수 있다. MBC 노동조합 간부로 있을 때 구속된 장면이다. 한 점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갖는 얼굴 모습이다. 며칠 전 손석희는 16시간 동안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왜 조사를 받았는지는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고소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를 스치는 ‘이제 시작됐구나’ 불행한 일은 얄밉게도 잘 맞는 예감이다. 검찰이 기소했다고 전한다. 이제 재판을 받겠지. 손과 발 중에 손은 묶어 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잘못 생각했다. 손발은 물론이고 온몸을 쇠사슬로 묶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손석희다.

▲ JTBC <뉴스룸>을 진행 중인 손석희 사장. ⓒJTBC 누리집 갈무리

손석희가 시청률 1위에 ‘시선집중’을 뒤로하고 JTBC 보도부분 사장으로 옮겼을 때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 걱정 안 했다. 바로 이것이 신뢰다. 손석희가 악마와 함께 일한다고 해도 나는 믿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를 믿기 때문이다. 어떤가? 손석희가 국민을 실망시키던가. 물론 언젠가는 그가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한쪽이 약속을 파기하는 경우다. 누가 파기할지는 지금 말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경우는 그가 구속되는 경우다. 손석희 뉴스룸을 눈엣가시로 여긴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를 구속하는 쪽에서 말이다. 왜냐면 역시 믿음 때문이다. 국민이 손석희에게 보내는 믿음 때문이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일제 때 마을에 분쟁이 있으면 법보다 기자에게 물었다. 역시 믿음 때문이다.

손석희가 던지는 앵커 브리핑은 지극히 평범한 말이다. 이 말이 우리들 가슴을 울리는 것은 지금 세상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그 많은 언론이 있음에도 손석희의 뉴스가 신뢰를 받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비정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고 못 지켰으면 사과를 하고 정권이 잘못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 년이 가도 비정상은 정상이 되지 않는다.

언론은 믿음이 생명이다. 오늘의 한국언론은 과장 왜곡 편파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국 언론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승만이 6.25 때 국민을 속인 것은 교훈이다. 만약에 다시 한국에서 불행한 일이 발생하고 이를 국민이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나 끔찍하다. 때문에 손석희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오늘은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으로 칼럼의 문을 열고 닫는다.

“2013년작 영화 <베를린>에는 국정원 요원이 등장합니다. 베를린 주재 첩보원 정진수. 완벽하게 정의롭지는 않지만 거친 현장의 밑바닥을 치열하게 지켜내는 모습에 많은 관객들이 몰입했었습니다. 비록 영화 속 장면이지만 이름 없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짐작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그러한 무명의 헌신들이 모여 지금 우리사회의 한 축을 이룩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지난 주말 한 국정원 직원의 죽음이 전해졌습니다. ‘업무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국가정보기관 직원의 죽음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선택했던 극단적 방법이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의 명의로 된 입장이 나왔습니다. ‘그의 죽음을 정치적 공세로 이어가는 개탄스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죽음으로 증언한 유서 내용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절대다수의 국정원 직원들이 음지에서 무명으로 헌신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도 있습니다. 굳이 군사정권 시절, 남산 대공분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반복되어온 도청 사건과 댓글 사건으로 신뢰를 잃어온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불신’ 말입니다. 어떻게든 켜켜이 쌓여온 그 불신을 ‘믿음’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국정원 직원들이 개탄스러워할 일은 지금의 도청 논란이 아니라 무명의 헌신이 폄훼 당하는 불신의 역사가 반복되는 현상이 아닐지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국정원이 건물 정면 묵직한 원훈석에 새겨놓은 다짐입니다.

짧은 문장 속에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단어가 없습니다. 자유, 진리, 무명, 헌신. 아마도 국정원 직원 모두의, 아니 우리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강렬한 문장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뢰받는 정보기관에 대한 믿음과 시민들의 지지를 위해서라도 그의 죽음을 단지 한 명 정보요원의 비극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국인 감청이 사실이든 아니든 진실은 밝혀내야 하겠지요. 수많은 무명의 헌신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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