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택배 노동자들 ‘노동착취’ 하소연
“하루 4~6시간 공짜노동에 14시간 중노동”
사측 “분류 작업은 배송비에 포함된 업무”

광주 북구 신안동에 사는 택배 노동자 박아무개(42)씨의 하루는 오전 6시에 시작한다. 전날 피곤이 풀리기도 전에 일어나 씻고 광주 북구 월출동에 있는 CJ대한통운 광주 물류터미널로 향한다. 아침밥은 언감생심. 거르기 일쑤다.

아직 미혼이라는 박씨는 22일 “이른 아침에 밥 챙겨주는 이도 없고 챙겨먹을 여력도 없다”며 “주위에 결혼한 동료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아침을 거르고 나온다”고 말했다.

▲ 20일 광주 남구 송하동 CJ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 택배분회 소속 조합원들이 "공짜노동 분류작업을 즉각 철폐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합원들의 주먹 뒤로 CJ대한통운 로고가 선명하다. ⓒ광주인

오전 7시, 물류센터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택배 박스가 끊임없이 밀려나온다. 박씨는 박스 송장에 적힌 주소지를 보고 자신의 지역에 해당하는 물품을 골라 1톤 택배 탑차에 싣는다.

하루에 적을 땐 250개, 많을 때 400개의 물품을 분류한다. 물품 분류 작업을 하는 4~6시간 동안은 꼼짝없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분류 작업은 빠르면 오전 11시, 늦을 땐 12시를 훌쩍 넘기도 한다.

푹푹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쉴 틈 없이 쏟아지는 택배 물품을 분류하고 나면 온 몸이 흠뻑 땀으로 젖는다.

물류 분류 작업이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본격적인 배송이 남았다. 1톤 탑차에 실은 물품을 아파트와 주택가, 골목골목 곳곳을 돌며 배송한다. 배송작업은 오후 8시나 9시가 돼야 끝이 난다. 물량이 많을 땐 밤 10시나 11시에 끝나기도 한다.

하루 평균 14시간 노동,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택배 1개당 700원씩이다. 단순 계산해 하루 250개를 배송하면 17만5000원, 400개를 배송하면 28만원을 번다. 이 금액이 순이익이라면 좋겠지만 택배 노동자들은 직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차량도 자신이 사야 하고 기름값과 감가상각비, 세금, 영업소 수수료, 송장 등 각종 소모품비 등도 자기 부담이다. 하루 평균 250개를 배송하면 한 달 실수령액이 200만원이 채 못 되기도 한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특히 택배는 배송 물품 숫자만큼 돈을 받기 때문에 오전에 하는 택배 물류 분류 작업은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이른바 ‘공짜 노동’이다. 

박씨는 “택배 물류 작업은 사실상 ‘공짜노동’이다. 이 작업만 제대로 정리해도 보다 빠르고 안전한 배송을 할 수 있다”며 “택배 배송하려면 시간이 부족해 점심도 먹지 못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과 점심을 못 먹고 저녁 한 끼만 먹을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 20일 광주 남구 송하동 CJ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 택배분회 소속 조합원들이 "공짜노동 분류작업을 즉각 철폐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광주지부 1지회 택배분회 안병화 지부장이 22일 오전 광주 남구 송하동 CJ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광주인

이날 오전 11시, 광주 남구 송하동 CJ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는 박씨처럼 일하는 광주지역 택배 노동자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공짜노동’ 문제를 제기했다. 박씨는 조합원이 아니라 참여하지 않았다.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 택배분회 소속 조합원 등 50여명은 “CJ대한통운은 공짜노동 분류 작업을 즉각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14시간의 중노동에, 그 중 6시간은 공짜노동 분류 작업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회사는 그동안 자신의 배만 불려가며 택배 노동자들을 여전히 천시하고 노예취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십 수 년째 단 한 번도 택배수수료는 오르지 않았다”며 “최소한의 노동자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는데 대해 화물연대 택배분회 전 조합원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숱하게 택배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우롱해왔던 CJ대한통운 사특은 이번 울산파업 협상과정에서도 여지없이 그 속내를 드러냈다”며 “울산지부 택배조합원들에게 강요한 ‘서약서’는 노예문서와 다름없다. 울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아니고 명백히 택배 노동자를 기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짜노동 분류 작업 철폐와 삭감된 수수료 즉각 환원, 노예문서와 다름 없는 울산조합원들의 복귀서약서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안병화 택배분회 지회장은 “고객에게 빠르고 안전하게 택배 물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측에서 ‘공짜 노동’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배분회는 오는 24일까지 사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공짜노동’인 물류 분류작업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 사측은 “분류 작업은 택배기사 본인이 배달할 상품을 선별해 자신의 차량에 싣는 과정으로 배송비에 포함된 업무”라며 “2011년 법원 판례로도 인정받았고 국내 모든 택배기사가 분류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수수료 환원과 관련해서는 “내부프로세스 효율화를 통해 택배기사 수입 총액은 2013년 월평균 434만원에서 올해 546만원으로 26% 증가했다”며 “택배기사 수입증대를 위해서는 택배운임 현실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CJ대한통운 측 관계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차량 경적을 울리는 등 회견을 방해하고 조합원들을 약올리다 일부 마찰을 빚었다. 이 남성은 끝내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밝히지 않고 방해하다 경찰의 저지로 회사 안으로 되돌아갔다.

▲ 22일 CJ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회사측 관계자로 보이는 한 남성(오른쪽)이 차량 경적을 울리는 등 회견을 방해해 택배 조합원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항의를 받는 와중에도 이 남성은 약을 올리며 마찰을 유도했다.ⓒ광주인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광주지부 문진 지부장이 22일 “CJ대한통운은 공짜노동 분류작업을 즉각 철폐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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