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안 믿어’ 58%, 국정원 어디로 가느냐

7월 17일 새정치민주연합이 개설한 ‘국민 휴대폰 해킹 검진센터’를 찾아 검진을 받았다. 검진이라고 한 것은 감염 때문이다. 왜 감염인가. 감염되면 환자가 되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열심히 한다. ‘검진받아라. 기자라고 무사하겠느냐?’ 도대체 이게 무슨 놈의 세상인가.

믿거라 하고 거래를 했을 이탈리아 해킹업체가 어이없게 해킹을 당하는 바람에 한국의 국정원도 들통이 났다. 거래의 주인공은 자살한 요원이라고 했다. 왜 자살을 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과연?

▲ ⓒ국정원 누리집

지난 5일(현지 시각) 늦은 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IT기업 ‘해킹팀’이 발칵 뒤집혔다. 누군가 내부정보를 통째로 해킹해 인터넷에 올려버린 것이다. 트위터 계정까지 탈취해 ‘해킹당한 팀’이라고 이름을 바꿔 조롱했다. 한국의 국정원도 한 다리 끼었다.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 인정했다.

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국정원은 땅을 치겠지만, 이제는 이미 깨진 사발이다. 물을 다 쏟았다. 뭐라고 핑계를 대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거기에다 안 되려면 엎어져도 뒤통수가 깨지는 것인가. 해킹 관련 업무에 20년이나 헌신적으로 일했다는 해킹담당 전문가인 국정원 직원이 자살했다. 국정원 표현을 빌리면 희생이라고 한다.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

20년을 근무한 정예요원이 그렇게 목숨을 끊어도 되는가.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모두 밝힌다는 국정원 말과는 달리 담당 요원은 떠나면서 해킹 관련 파일을 삭제했다. "국민을 사찰하지 않았는데 사찰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자살을 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국민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토록 정상적인 사고력이 부족한가.

요즘 국정원은 ‘걱정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달고 있다. 막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해킹한 기록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도둑이 자신의 범행현장을 공개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막장도 너무 심하다. 기밀을 생명으로 하는 국정원의 선택에 비장감이 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믿어주지 않으니 공개하는 것이라고. 기가 막힌다. 여당의 대표라는 김무성은 국정원은 나라를 위해서 해킹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신뢰가 땅에 떨어진 국정원이 해킹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국민들은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이 부족한 사람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가슴이 떨린다.

외국에 이민 가서 사는 친구가 전화했다. 죽을 날이 머지않아 조국에 돌아가려고 했더니 포기해야겠다고 했다. 귀국해서 속을 볶으면서 사느니 그냥 외국에서 살다 죽겠다는 것이다. 친구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만 그러냐 나도 그렇다.

국정원이 해킹로그를 발표하는 참담한 심정을 국민에게 고백했다. 차라리 아무 소리도 안 하는 게 낫다. 지난 11일 키프로스에서는 정보기관이 사찰용 해킹 프로그램을 해킹팀으로부터 구매한 사실이 드러나자 정보기관 수장이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우리 국정원은 거짓말을 안 하는가. 국민은 말을 않는다. 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지금처럼 국가 기관의 신뢰가 추락한 적이 없다.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신뢰는 바닥을 기고 있다. 이명박을 가리켜 구관이 명관이라는 기막힌 소리가 들린다. 과거 박정희 독재 시대와는 다르다. 착각하면 안 된다. 박정희 독재 때인 1973년에는 서울법대의 최종길 교수가 고문으로 숨졌고 정보부는 투신자살을 했다고 허위발표했다. 아직도 지금을 그때로 착각하고 있는가.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고 한다. 우기면 된다는 배짱이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고 한다. 우기면 된다는 배짱이다. 우기다 들통 나면 마지못해 고백한다. 이제 배 째라고 버틸 것인가. 혹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권을 연장할 망상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망상이다. 바고 그 망상을 국민은 두려워하고 있다.

궁지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에게도 덤빈다고 한다. 인간도 다름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더구나 지금 같은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한다면 정신병자다.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를 막는 방법이 무엇인가.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공정한 법을 따르는 것이다.

대법원도 국정원도 검찰도 법대로 해라. 국민은 법대로 하는지 아닌지를 잘 알고 있다. 국정원 직원의 명복을 빈다.

대법원이 불쌍하다

옛날에 어른들은 잘잘못 따지는 일이 발생해 다툼이 있을 때 하는 말은 ‘재판소(법원)에 가자’였다. 판사가 옳고 그름을 결정해 준다는 것이다. 또 그 때는 기자들한테도 판단을 구했다. 이유는 기자들은 잘 잘못을 바르게 판단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때 국민들은 기자를 법관처럼 믿었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법원은 하늘 같은 존재다. 대법관도 하늘 같다.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정원의 2012년 대선개입을 인정했던 항소심 판단을 사실상 뒤집는 판결을 내놓자 국민들은 ‘혹시나 가 역시나’라며 말을 잃었다. 국민들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럴 때 예측이 맞지 않았다면 국민들이 얼마나 환호했고 대법원은 국민의 존경 위에 큰기침 한 번 했을 것이다.

“선거 공정성을 최우선에 두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판결”이라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제헌절을 하루 앞둔 날이어서 더 참담한 것인가. 아니다. 국민이 법을 불신하면 국민이 의지할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무법천지가 무엇인가. 법이 죽은 세상이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사건을 파기하더라도 유무죄 판단을 하는데 이번에는 명확한 판단을 피했다. 사실관계 확정은 2심이 해야 한다는 이유인데 그 속셈을 누가 모르랴. 원세훈이 유죄였으면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이 사라진다. 이제 파기된 재판이 끝나려면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임기가 끝난다고 한다. 아아 저렇게 좋은 머리라 대법관이 됐겠지만, 국민은 피가 끓는다. 역사는 2015년 7월 16일을 무슨 날로 기록할 것인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눈치 보기 끝에 나온 기회주의적이고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참여연대가 비판했지만 대법원은 말이 없다. 법관은 판결로서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법관들은 판결로 말했다. 대법관 13명이 똑같이 판결로서 말했다.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은 대법원에서 사형확정판결을 받은 지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되어 사법살인으로 세계 사법사에 기록됐다. 누가 사형을 판결했는가. 하늘 같은 대법관이다. 1979년 3월 박정희가 임명한 이영섭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과거를 보면 오욕과 회한으로 얼룩진 것 이외에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장의 말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뭐라고 할 것인가. 2015년 원세훈 사건은 사법사에 길이 남을 명판결이라고 할 것인가.

16일, 재판에서 가슴한 구석에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렇게 속았어도 기대를 하는 자신이 더없이 불쌍하지만, 인간이 원래 불쌍한 존재 아닌가. 앞으로 대법원 앞을 지나가면서 당당하게 서 있는 대법원 건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따위 재판이나 하면서 대법관 되려고 기를 쓰느냐고 욕을 할 것인가. 하늘 같은 대법관도 불쌍할 때가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불쌍해질 것인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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