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회 당사자들 “법원·검찰 진실 밝혀라” 촉구
당시 수사 경찰 등 증인 출석 거부…검찰은 완강

1980년대 초반 광주지역의 용공조작사건인 이른바 ‘횃불회’ 사건의 당사자와 유가족 등이 33년 만에 진실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횃불회 사건 당사자를 수사한 경찰관 등은 증인 출석을 거부하고 검찰은 원판결보다 더욱 무거운 처벌을 요구하는 등 완강한 입장이어서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아래 기자회견문 전문 참조)

▲ 1980년대 초반 광주지역의 용공조작사건인 이른바 ‘횃불회’ 사건의 당사자와 유가족 등이 16일 오후 광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법원과 검찰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횃불회’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광주인

횃불회 피해자인 고 공영석씨 부인과 피해당사자이자 재심청구인인 김결·서의환·최운용씨, 노희관 전 교수, 김경천 전 의원 등 20여명은 16일 오후 2시 광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법원과 검찰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횃불회’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33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다. 과거에는 처벌을 받기 위해 재판을 받았다면 이제는 누명을 벗기 위해 재판을 받는다”며 “33년 전 광주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우리는 정권의 안위를 위한 용공조작사건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분이 있던 지인들과의 친목모임은 이적행위를 위한 무시무시한 조직으로, 함께 나눴던 소소한 대화는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불순한 모의로, 알지도 못하는 책자와 신문은 이적표현물로 뒤바뀌었다”고 말했다.

또 “정권과 안기부는 지시했고, 검찰과 경찰은 발빠르게 움직였다”며 “야밤에 영장도 없이 들이닥쳤으며, 도경과 대공분실로 강제연행돼 영문도 모른 채 수 없는 나날을 갇혀 지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고문과 가혹행위로 얼룩진 조사는 밤낮없이 계속됐으며 날 것 그대로의 폭력 앞에 우리는 속절없이 무너졌다”며 “재판은 요식행위였으며 유죄판결과 무고한 옥살이는 예정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속칭 ‘빨갱이’로 내몰려 숨죽여 살거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등졌다”며 “억울했고, 그 억울함은 대를 이어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참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가슴이 깊이 묻어뒀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다시 꺼냈다”고 밝혔다.

‘횃불회’ 사건은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산 학림사건(부림사건)의 광주판 용공조작 사건으로 불린다.

‘횃불회’는 지난 1981년 10월께 30~40대 남성 10여명과 간호원 등으로 구성한 계모임 형태의 친목 모임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이듬해 3월23일 자정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됐다.

1982년 이뤄진 1심 재판에서 3명은 징역형의 집행유예, 1명은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항소심에서는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사건 당사자 3명과 유족 1명은 지난해 1월 광주지법에 재심청구를 했으며 지난 2월 청구가 받아들여졌다.

33년 만에 재심이 열렸으나 첫걸음부터 쉽지 않았다. 김씨 등을 수사한 경찰관 4명 등 5명에 대한 증인 신문이 예정된 이날 공판에 증인들 모두 출석하지 않은 것. 2명은 증인 소환 통지서를 받고도 출석하지 않았고 3명에게는 통지서가 송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횃불회 당사자와 유족 등은 “지난해 1월 광주지법에 재심청구를 했으며 당시 수사 및 재판기록의 보존을 확인, 대법원까지 거친 끝에 수사기록 일체를 확보했다”며 “하지만 검찰은 핵심 자료를 내부문서라는 이유로 기록 복사를 거부하고 재판 과정 내내 과거의 불법적인 수사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여전히 유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또 “심지어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불가능한 데도 재심 당사자들에게 과거보다 더욱 무거운 형을 선고해 달라며 항소를 유지하고 있다”며 “당시 수사관들은 증인 출석을 거부하거나 마지못해 출석해서 오리발로 일관하고 위증을 일삼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진실규명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들은 “우리는 이번 재판이 횃불회 사건 당사자들의 신원을 회복하고 그동안의 한스러운 삶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며 “나아가 이번 재판이 1980년대 국가폭력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역사의 발전을 믿기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재판에 임해 반드시 진실을 규명할 것”이라며 “이 재판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진실의 바다에 몸을 던지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9월 3일 오후 3시에 열린다.

법원과 검찰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횃불회’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33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다. 과거에는 처벌을 받기 위해 재판을 받았다면 이제는 누명을 벗기 위해 재판을 받는다.

33년 전 광주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우리는 정권의 안위를 위한 용공조작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다.

친분이 있던 지인들과의 친목모임은 이적행위를 위한 무시무시한 조직으로, 함께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는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불순한 모의로, 알지도 못한 책자와 신문은 이적표현물로 뒤바뀌었다.

정권과 안기부는 지시했고, 검찰과 경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야밤에 영장도 없이 집에 들이닥쳤고 도경과 대공분실로 강제연행돼 영문도 모른 채 수없는 나날을 갇혀 지냈다.

고문과 가혹행위로 얼룩진 조사는 밤낮없이 계속되었고 날 것 그대로의 폭력 앞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재판은 요식행위였고 유죄판결과 무고한 옥살이는 예정된 것이었다. 야만의 시대였다.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시법 위반의 무시무시한 범죄자로, 속칭 '빨갱이'로 내몰려 숨죽여 살거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억울했고 그 억울함을 대를 이어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참아서도 안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가슴 깊이 묻어뒀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다시 꺼냈다.

그러나 한 차례의 재심청구는 기각됐고 다시 재심청구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재심 개시 결정이 났고, 이제 본격적인 유무죄의 공방이 진행 중이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온 기분이다.

그러나 재심 재판이 진행 중인 지금, 검찰과 당시 경찰관들의 행태는 여전하다. 과거 불법체포와 불법 감금을 자행하고 이를 지시했던 검경은 가해자로 법의 심판을 받았어야 함에도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검찰은 재심 당사자들이 어렵게 찾아낸 당시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중 핵심적인 자료를 내부문서라는 이유로 당사자들에게조차 기록 복사를 거부하였고, 재판 과정 내내 과거의 불법적인 수사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여전히 유죄를 주장한다.

심지어 검찰은 재심 당사자들에게 과거보다 더욱 무거운 형을 선고해 달라며 항소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형사소송법상 불가능함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항소를 취하하지 않고 여전히 법정에서 피고인들과 다투고 있다.

당시 수사관들은 증인 출석을 거부하거나 마지못해 출석해서 오리발로 일관하고 위증을 일삼는다.

과거 영장 없는 체포와 구금으로 불법체포죄와 불법감금죄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다시 위증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검찰은 범죄를 단죄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역할도 수행하지만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언제나 경계하는 공익의 대표자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 검찰은 정권과 안기부의 지시에 따라 경찰과 함께 무고한 시민들을 '빨갱이'로 만들어 수십 년 족쇄를 채우는데 앞장선 국가폭력의 공범자였다.

우리는 검찰이 그런 구태에서 조속히 벗어나 공익의 대표자로서 무고한 횃불회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항소를 취하하고 진실규명과 무죄 구형 등 그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정당한 길을 걸어가길 촉구한다.

당시 수사관들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과거의 행태를 양심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위증을 통해 두 번 죄를 저지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번 재판이 횃불회 사건 당사자들의 신원을 회복하고 그동안의 한스러운 삶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우리는 이번 재판이 1980년대 국가폭력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역사의 발전을 믿기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재판에 임하여 반드시 진실을 규명할 것이다.

이 재판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진실의 바다에 몸을 던지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요구한다.
2015. 7. 16
1980년대 용공조작사건 '횃불회' 재심 재판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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