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간 광주에서 워크숍... 문제점만 지적
“왜 혁신해야 하나...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 말이 그 말 아니에요? 맨날 문제점 지적하고 대책이랍시고 내놓으면 뭐해요? 막상 당에서 실천을 안 하는데.”

“감동이 없어요. 당을 혁신한다고 혁신위를 가동했으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혁신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광주인

“가장 중요한 질문이 빠졌어요. ‘왜 새정치민주연합을 혁신해야 하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보이지 않아요. 전부 무엇을, 어떻게 할지만 얘기하는데 정작 ‘왜’는 없다 보니 방법론만 나오는 거죠.”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당 혁신안에 대한 논의를 위해 텃밭인 광주를 방문한 가운데 22일 워크숍 현장을 지켜본 시민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당원 등의 반응이다.

혁신위에 대한 회의감과 혁신위의 비혁신성,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전 제시가 빠졌다는 문제제기인데, 이 관점에서 보면 혁신위는 출발부터 ‘헛발질’이다.

새정치 혁신위 의견수렴 행보 본격

김상곤 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는 혁신위의 5대 혁신과제 중 첫 번째 안인 ‘당내 기득권 타파’를 집중 논의하기 위해 21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텃밭인 광주를 방문했다.

혁신위가 제시한 5대 혁신과제는 당내 기득권 구조 타파, 사회적 특권 타파, 불평등 해소, 당의 전국정당화, 공천제도 민주화 등이다.

김 위원장은 첫날 광주·전남 기초단체장들을 만난데 이어 둘째날인 22일 광주 광역의원단 간담회와 광주지역 원로 간담회,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에 참가하는 등 광폭행보를 보였다.

21일과 22일 이틀 간의 혁신위 광주 워크숍 기간 당의 혁신을 놓고 날선 비판과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다양한 대안도 제시했다.

광주·전남 기초단체장들, 당 ‘맹비판’만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 사무실에서 광역의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광주인

첫날 일정은 광주·전남 기초단체장들과의 간담회였다. 21일 오후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광주 동구에서 광주·전남 기초단체장들을 만나 새정치연합의 혁신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 당은 다시 한번 수권정당으로 가야한다고 본다”며 “당의 구조와 체질을 바꿔 2016 총선승리, 2017 대선승리를 위한 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혁신위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당원과 국민들과 함께 우리 당의 정책을 만들고 당이 가야할 길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동안에 있었던 갈등의 프레임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우리 당이 나갈 길을 함께 찾고 그것이 국민과 당원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수권정당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기초단체장들은 “그동안 혁신위가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는다” “우리 당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당을 대표하고 있는 지도부의 문제” 등 신랄한 비판만 쏟아냈다.

김철주 무안군수는 “혁신위의 원론적인 이야기엔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걸 믿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지금껏 여러 혁신위가 있었고, 좋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게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혁신위에서 아무리 좋은 안을 내놔도 국민들은 현 대표, 현 최고위원 체제 하의 혁신위를 믿지 못한다. 혁신위가 당 지도부의 입김에 놀아나는 기구가 아닌지 의심한다”며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혁신위가 활동하는 동안만이라도 당 지도부의 권한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우진 광주서구청장은 “지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이 분리된다는 추측들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며 “내년 총선에서 인물만 괜찮은 무소속 후보가 나오면 광주에선 당선될 수 있을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그동안 우리 당의 행태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희생과 헌신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자기 이익에 집착해 절대 희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구충곤 화순군수는 “우리 당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당을 대표하고 있는 지도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혁신위를 통해 당이 거듭나고자 한다면 먼저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이 광주·전남에서 몇 %나 되는지, 올해 광주 서을 보궐선거에서 왜 실패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단체장들의 얘기를 듣고 난 후 김 위원장은 “우리 당은 2008년 이후 여섯 차례 혁신위를 만들어 좋은 혁신안을 제출했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이 모습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당의 권한은 당원과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당권재민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광역의원들 “호남 아닌 전체 개혁해야”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 사무실에서 광역의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광주인

둘째 날인 22일 오전 김상곤 위원장은 광주 서구 화정동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에서 ‘광주 광역의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20명의 광주시의원 중 18명이 참석했다.

김상곤 위원장은 “그동안 민주화를 위해 희생했고 우리 당을 위해 헌신했던 광주와 호남에 새정치연합은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며 “토양이 없고 양분이 없으면 어떤 거대한 나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 우리 당의 상황이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당을 키우기 위해서 광주·호남은 영양분을 제공해 왔다”며 “토양이 되고 뿌리가 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거대한 나무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열매로 우리 당은 두 번의 집권을 했으나 그뿐이었다”며 “광주를 위해서 호남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우리 당이 어떻게 나아가야할 것인가를 이 자리, 제한된 시간이지만 진솔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주문했다.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었다.

의원들은 혁신위가 기득권을 타파하고, 단순한 당내 혁신을 넘어선 야권 전체를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 등을 내놓았다.

의원들은 “호남을 당의 뿌리·심장이라고 이야기했으나 선거 때만 되면 희생 대상으로 삼았다. 혁신이 호남의 물갈이로 등치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또 “호남만이 아닌 전체 당의 혁신, 전체 국회의원에 대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것이 지역에 대한 편향이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혁신위 활동이 호남과 당의 갈등을 증폭하는 프레임에 말려들면 안된다”며 “당이 혁신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지켜야 한다. 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의 이탈까지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 삶을 위한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혁신위가 되겠다”며 “많은 분들이 공천과 관련해 혁신위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예측가능하고 공정한 게임의 룰을 분명히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김상곤 5·18민주묘지 참배…원탁회의 참가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광주인

김상곤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해 헌화·참배한 데 이어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를 가졌다.

김 위원장은 원탁회의에 앞서 인사말에서 “국립5·18민주묘역 참배를 다녀왔다. 참배를 하고 나니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며 “5·18민주영령들이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발전시킨 정당인데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서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이냐’고 호통을 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들이 제안한 의견을 소상히 살펴보고 더욱 깊이있게 만들고자 노력하겠다”며 “혁신위가 혁신안을 만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행되고 집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원탁회의는 ‘브레인 라이팅(Brain Writing)’이라는 브레인 스토밍과 비슷한 참여형 교수법 형식으로 진행했다.

주제는 ‘새정치민주연합 무엇이 문제인가’와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은’, ‘혁신위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등 세 가지였다.

10명씩 한 조가 돼 각 주제별로 참가자들이 각자 ‘포스트잇’에 의견을 적어 비슷한 문제점을 한 곳에 모아 공감대를 형성하고 핵심 키워드를 파악하는 방식이었다.

김 위원장은 새정치연합의 문제점으로 ‘기득권에 안주한다’, ‘당 기율 문란’, ‘책임감이 부족하다’ 등을 꼽았다. 조국 교수는 ‘공정한 경쟁 규칙의 사전 확립과 승복 문화가 없다’고 적었다.

이 외에 참석자들은 ‘지역 인사 선발 문제’ ‘계파주의 분열’ ‘불공정한 당 시스템’ ‘정체성 확립’ ‘리더십 부재’ 등 기존에 거론된 문제점들을 거듭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수권정당으로 가는 방안에 대해 ‘새로운 인재양성’과 ‘국민과 소통하는 정책 개발’ 등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한 시민은 “호남 기득권을 타파해야 한다”며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혁신안, 실천 중심의 혁신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바쁘신 와중에 함께 모여 집단지성을 발휘해 줘 감사하다”며 “제안해주신 의견들을 소상하게 살펴 혁신안을 만들고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혼심의 힘을 다해 반드시 혁신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 첫 행보…아쉬움 크다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광주인

혁신위의 이틀 간 광주 일정은 100인 원탁회의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혁신위는 23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1차 혁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첫 행보치곤 아쉬움이 컸다. 우선 근본적으로 혁신위의 활동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크다는 점이다. 현 당 대표와 현 최고위원 체제 하에서 혁신위의 활동이 힘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다.

혁신위의 활동 자체가 전혀 혁신적이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22일 오후 진행한 100인 원탁회의가 대표적이다.

‘브레인 라이팅’이라는 참여형 교수법을 도입한 건 신선했으나 100인의 구성과 선정 절차, 내용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원탁회의에 참석한 100인의 추천 기준과 대상은 불투명했다. 기본적인 지역별, 연령별, 성별 등 기준도 아니고 일부 시민단체와 전직 기초의원, 당원, 시민 등 무작위로 참여했다.

정채웅 변호사의 의뢰를 받고 참가했다는 이아무개씨는 “100인 원탁회의 참가 기준은 알지 못한다”며 “정 변호사의 의뢰를 받고 몇몇 지인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 한 당직자는 “광주시당은 100인 원탁회의의 참가자들을 추천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다”며 “참가자 기준에 대한 문의가 오는데 우리도 난처하다”고 말했다.

원탁회의에서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는 너무 앞서갔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민 김아무개(47)씨는 “당이 분당 위기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 ‘수권정당’이라는 주제를 내놓은 걸 보고 기가 막혔다”며 “문제를 진단하는 방식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부분은 혁신위의 문제의 진단과 대안이라는 접근 방식에 대한 아쉬움이다. 당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이전에 ‘왜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데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22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광주인

혁신의 출발은 ‘왜(Why)’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 혁신해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어떤 정당의 모습으로 설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감동을 줘야 한다. 이는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프레임’이라는 말과 비슷하지만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하지만 ‘왜’는 빠지고, 무엇을(What)과 어떻게(How)만 논의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들에게 전할 감동의 메시지’는 사라졌다.

시민 최아무개(40) 씨는 “왜 새정치민주연합을 혁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국민과 당원, 당직자, 소속 정치인 모두 공감할 수 있다”며 “또 공감할 수 있어야 조국 교수의 ‘호남 물갈이론’이나 문재인 대표 사퇴, 친노 패권주의 청산 등의 주장도 논의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 참여정부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비전을,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생산적 복지’와 ‘남북화해협력’을 제시했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이 왜 혁신해야 하는지, 어떤 정당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다면 혁신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왜 혁신을 해야 할까.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정당이 되고 싶어 혁신하려고 할까. 당이 직면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찾겠다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혁신위가, 김상곤 위원장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에 참석해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점에 대해 적고 있다. ⓒ광주인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에 참석해 '브레인 라이팅'에 참여하고 있다. ⓒ광주인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 참배에 앞서 방명록에 '광주의 정신 혁신의 꽃으로 피우겠습니다'라는 글을 적고 있다. ⓒ광주인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윤상원 열사의 묘지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광주인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박관현 열사의 묘비석을 닦고 있다. ⓒ광주인

▲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에 참석해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점에 대해 '책임감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광주인

▲ 22일 오후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 100인 원탁회의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적은 포스트잇.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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