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뜨겁게 타고 있는 5월의 태양 아래 5천 명의 군중은 순간 숨이 멎었다. 내 귀에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물론 내 숨도 멈췄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십시오"

바로 보이는 ‘부엉이바위’ 위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2009년 새벽, 어둠이 걷히지 않은 봉하, 고향마을 내려다보며 인생의 마지막 길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이 보였다.

2015년 5월 23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에서는 역사가 기록되고 있었다. 분노와 탄식과 눈물로 쓰는 역사가 기록되고 있었다. 고개를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정치인도 사람이다

▲ ⓒ팩트TV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오늘 이 자리에는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며 내리는 빗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로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해대다가 암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습니다.

혹시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 좀 안 하시려나 기대가 생기기도 하지만 뭐가 뭐를 끊겠나 싶기도 하고 본인도 그간의 사건들에 대해 처벌받은 일도 없고 반성한 일도 없으시니 그저 헛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쇼. 사과, 반성,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십시오. 국가의 최고 기밀인 정상회의록까지 선거용으로 뜯어 뿌리고 국가 권력 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고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 세우면서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만 채우려 하면 이 엄중한 시기에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국체를 좀 소중히 여겨 주십시오. 중국 30년 만에 저렇게 올라왔습니다. 한국 30년 만에 침몰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힘 있고 돈 있는 집이야 갑질하기에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나중에 힘없고 약한 백성들이 흘릴 피눈물을 어찌하시려고 국가의 기본 질서를 흔드십니까.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은 마지막 희망

눈물이 마르면 무엇이 남는가. 사막과 같은 가슴속 모래밭이다. 악마에게도 눈물은 있다. 아무리 증오가 쌓여 있어도 눈물 흘릴 공간은 마음 구석에 남아 있다.

김무성 대표는 봉하에 가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모두 정치적이기에 정치인 김무성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봉하에 가서 자신이 얻을 것은 무엇인가. 잃을 것은 무엇인가. 계산했다면 잃는 것과 얻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을 것인가.

김무성 대표의 추도식 참석은 용기였다. 욕을 먹든 물세례를 받든 용기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용기였다면 할 발 더 나갈 수는 없었는가. 원했는지 안 했는지는 몰라도 450명의 경비 병력이 동원되었다.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났다. (노건호씨 발언)

김무성 대표는 당당했어야 한다. 세상이 다 아는 NLL 발언이다. 솔직하게 사죄를 했어야 한다. 부엉이바위에도 올라가서 추모해야 한다. 말로라도 해야 했다. 그랬다면 김무성 대표가 계산했을지도 모를 물벼락을 맞는 것보다 몇십 배 더 얻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 비록 국민들이 진심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진심은 악마도 감동시킨다. 국민은 진실에 목말라 있다. 김한길이나 박지원이 봉하에 온 용기는 가상하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또 무슨 말이 그렇게 장황한가. 김무성 대표야 여당의 대표라서 그렇다지만 박지원이나 김한길이 하는 일상의 말을 들으면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말이 맞는다. 인생길은 모두가 교훈이다.

김무성이나 박지원이나 김한길이나 대한민국의 지도자다. 봉하에서 배운 것이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국민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조차 못 느낀다면 정말 백해무익한 존재들이다.

■김무성은 사과가 부끄러운가

지구 상에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줄 아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동물원에서 인명을 살상한 동물은 죽임을 당한다. 한국에서 이른바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사과하는 모습을 얼마나 보았는가. 그것도 마지못해 지옥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사죄했다. 큰 정치인은 스스로 사과를 해야 한다.

김무성 대표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철 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음해하던 자신의 목소리를.

“전직 대통령이 엔엘엘(NLL) 포기했다며 내리는 빗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 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습니다”

노건호의 질타를 들은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곤혹스러운 표정의 김무성을 기억한다. 사과했어야 한다. 요즘 잘들 하는 ‘페이스북’에라도 사과를 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정치를 바로 하는 것이며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을 목매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정치인들의 잠꼬대가 아닌 진정한 화해이며 국민의 통합인 것이다. 어떤가. 지금이라도 사과할 생각은 없는가.

정치공학을 생각하지 마라. 생수병으로 얻어맞는 것보다 훨씬 정치적 이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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