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사라진 나라

4·19 기념식에 나타난 이완구 총리를 보는 것은 피차간의 고문이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자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가시밭이 됐다.

꼭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남미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불경스럽게도 총리의 모습과 겹치면서 더없이 초라해 보였다. 당연할지도 모르는 손수 우산을 받쳐 든 모습에서는 아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국민들이 말하는 마치 쫓겨 가듯 해외로 나갔다는 것은 물론 과잉해석일 것이다.

온갖 오물을 한데 모아 놓은 오물항아리 같은 총리가 나라를 온통 진흙탕으로 만들어 놓았다. 저런 사람을 총리 자리에 앉힌 안목에 대한 실망감은 지금 온 국민의 가슴속을 더없이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 이완구 국무총리. ⓒ팩트TV 갈무리

노태우 대통령이 들고 다닌 ‘보통사람의 시대’는 결코 보통사람의 시대가 아니었지만, 말만은 좋았다. 맞다. 보통사람이라는 말은 좋은 말이다. 거기에다가 상식적이라는 말이 가미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상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늘 하는 말이지만 상식이란 ‘보통사람의 보편적 가치판단기준’이다. 세상에 잘난 사람들이 많지만, 세상 망치는 사람들이 모두 잘난 사람들이다. 이들이 보통사람의 상식만 가졌다면 나라는 절대로 이 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완종 메모에 이름을 올린 잘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단하다. 잘난 사람들의 이름을 다 꼽을 수는 없지만, 메모에 이름을 올린 사람만 봐도 보통사람은 근접도 못 할 높은 사람들이다. 선택받은 높은 신분의 귀인들. 이들이 지금 오물통 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3명의 비서실장을 비롯한 나머지 인물들도 모두 측근이다. 국민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아닌 모양이다. 보통사람이면 당연히 사과했을 것이다.

■유사 이래 최고 부패

“우리나라 최고 꼭대기에서 썩은 내가 진동한다.” “최고 권력자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집단적으로 뇌물비리에 얽힌 것은 사상 유례없는 일”

무조건 정권을 비판하는 야당 지도자의 말이라고만 할 수가 없다. 국민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정과 불법과 비리가 일반화됐다 해도 이건 너무 했다. 어쩌려고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단 말인가. 국민은 가슴을 치고 땅을 칠 일이다.

부패한 권력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 성완종 전 회장의 자살로 극명하게 실체를 드러낸 오물들의 실체를 보고 국민들은 치를 떤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렴을 믿었던 국민들은 아연실색 충격에 휩싸여 있다. 박대통령은 분명하게 선언했다. 부정부패에 관련된 자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실체가 드러났고 중심에 국무총리가 있다.

검찰에서수사를 하고 있다. 물론 검찰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할 것이다. 집권당이든 야당이든 가리지 않고 법을 어긴 자들에게는 족집게처럼 가려낼 것이다. 우리 검찰의 수사능력으로 미루어 어느 인간이라도 법망을 피해 가지 못할 것이다. 검찰은 수 없이 다짐을 했고 국민들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 갸우뚱 거리는 국민들이 많다. 웬일인가. 검찰을 불신한단 말인가.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당할만한 그 어떤 일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과거는 지울 수 없는 거울과 같다. 우리의 검찰역사를 보면 부끄러운 모습이 보인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국민이 법을 신뢰하지 못하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 범법자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검찰을 원망한다면 기막힌 세상이 된다. 일일이 거명조차 하기 부끄러운 사건들이 머리를 스쳐 간다.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

누가 한 말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대통령은 매우 가슴이 아픈 모양이다. 국민들 역시 같다. 다만 이유는 다르다. 여기서 다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다. 모두들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국민에 대한 사과다. 대통령이야 자신의 측근들이기 때문에 가슴이 아플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무슨 죄로 가슴을 앓아야 하는가. 주인인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라면 사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사과는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사랑은 신뢰로부터 나온다.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위해 출국을 하는데 ‘빨리 돌아오세요’가 아닌 ‘돌아오지 않아도 됩니다’란 구호가 국민들 입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불행이다.

대통령은 지금 외교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은 대통령이나 일반 국민이나 다 같을 것이다. 지금 박대통령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까.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해야 하는 고통은 당사자인 대통령이 가장 깊이 느낄 것이다. 왜 이완구를 국무총리로 지명했는지 후회할까? 이완구를 총리로 추천한 참모들을 원망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대통령은 국민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가장 강한 사람이니까.

보통사람의 상식과 원칙이 지도자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눈높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완구의 문제는 거명 될 때부터 문제가 되었다. 그가 매달고 있던 그 많은 허물을 국민들은 걱정했다. 왜 그것을 그냥 넘겨 버렸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이완구 주변에서 일어났음에도 대통령은 그냥 넘겼다. 이 역시 보통사람의 눈으로 판단했으면 오늘과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의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는 인식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든 야든 국민은 표로 심판

나라 걱정은 대통령만 하는 것이 아니다. 걱정이야 국정을 책임진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더 할지 모르지만, 이 나라의 백성이 된 국민들 역시 나라 걱정은 모두 한다. 지금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국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선거로서 뽑은 지도자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최고지도자가 된 박근혜 대통령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정치를 잘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어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국민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은 바로 국민이 행복하다는 증거다.

나이 먹은 사람들과 박근혜 대통령에 관해 얘기를 나누면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다들 잘 알 것이다. 그가 겪은 인간적인 불행을 어느 누가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 대해서다. 그것이 대통령을 자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불행한 개인사와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했다는 조국 근대화 사업인 새마을 운동. 보리고개를 추방했다는 아버지의 후광이 대통령 당선에 공헌했다는 데 이의를 달 국민은 별로 없다. 지금은 어떤가. 분명히 아니라고 할 수가 있고 그 이유는 오늘의 한국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약 파기와 불통청치, 그 밖에 지적되는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면 지금까지 그는 결코 성공한 대통령도 현명한 대통령도 아니라는 평가가 옳다.

국민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대통령의 행동에 그저 놀랄 뿐이다. 세월호 침몰 후 7시간의 행적도 아직 불명이다. 이해할 도리가 없다. 세월호 1주기 날 그는 남미 순방길에 올랐다. 이 역시 국민의 보통 사고를 뛰어 넘는다.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는 대통령의 말에 이르러서는 국민의 절망은 포기에 이르게 된다. 이제는 정말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5년이라는 보장된 임기와 절대 권력이 있다. ‘짐이 법이다’라는 인식과 무엇이 다른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성완종 사건의 검찰 조사를 얼마나 기대하는가. 국민은 또 한 번의 일그러진 검찰상을 확인할 것인가. 무엇이 근거인가. 있다. 걸어온 길을 보면 걸어갈 길도 알 수 있다.

절망 속에서도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거에서 투표로서 불의한 정권을 응징하는 것이다. 이제 자유당 독재 시대의 부정선거는 할 수 없다. 국가정보원의 댓글 부정선거도 국민이 투표만 제대로 하면 못된 정치의 버릇을 고칠 수 있다.

정의가 죽었다고 한다. 정의가 죽은 비참한 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살릴 수 있다. 국민의 힘이다. 비록 네 곳에 선거지만 선거는 무섭다. 24일과 25일은 사전투표를 할 수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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