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이 절창화담] 팜므파탈
[이광이 절창화담] 팜므파탈
  • 이광이 집필노동자
  • 승인 2015.04.24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하희(夏姬)는 음탕하고 요염했다. 눈은 살구꽃 같고, 뺨은 복숭아꽃이 핀 것처럼 아름다웠다. 누구나 그녀를 한번 보면 넋을 잃을 정도였다. 열다섯 살 때 꿈에서 신선과 통정한 뒤 양으로 음을 보하는 법을 배워 늙어갈수록 젊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춘추전국시대 정나라 공주로 혼전에 이복오빠와 통정했고, 진나라 대부에게 출가하여 아들(하징서) 하나를 두고 과부가 됐다. 절세미인이니 밖으로 남자의 추파가 끊이지 않았고, 천하의 음녀였으니 안으로 호응하였음은 당연하다.

여기에 진(陳)나라 임금 영공(靈公)이 걸려든다. 하희와 먼저 통정한 간신이 두 명 있었는데 그들이 영공을 끌어들인 것이다. 영공이 하희와 하룻밤을 보내고 “과인이 천상의 선녀를 만났다 해도 이보다 낫지는 못하리라. 그대와 관계하고 나니 육궁(六宮)의 비빈(妃嬪)들이 다 썩은 지푸라기 같도다.”라고 했다니,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공은 통정의 징표로 하희가 준 속옷(汗衫)을 입고 이튿날 조정에 나가 먼저 정을 통한 간신 두 사람에게 자랑을 한다. 용포를 치켜들고 한삼자락을 내보이며, “너희도 이런 것이 있느냐” 하니, 간신 하나(공영)가 관복 자락을 헤치고 하희의 비단 속옷을 내보였다. 영공이 “너도 있느냐?”고 물으니, 또 다른 간신(의행보)도 하희의 벽라저고리를 내보였다.

대명천지에 조당(朝堂)에서 군신이 속옷 자랑을 했으니, 그 희학질의 소문이 대궐 밖까지 퍼졌다.

그 때 설야(泄冶)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충신이었으니, 도저히 이런 사실을 묵과할 수 없었다. 설야는 직간했다. “아무리 임금이라지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군신이 한 과부와 붙어 논다는 것이 될 말이요? 도대체 염치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나라를 망치는 길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설야는 퇴청하는 길에 두 명의 간신에게도 꾸짖었다. “너희들은 더 나쁜 놈들이야.”

▲ 붓꽃. ⓒ이광이

통정한 동서(?)들 간의 긴급 삼상회의가 열렸다. 임금이 처음에는 부끄러워했으나, 수천 비빈이 이미 지푸라기로 전락해 버렸으니, 하희를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괘씸하고, 열도 받았다. 슬슬 부아가 치밀던 차에 간신 둘이 “설야의 입을 막아버립시다”하고 하문을 기다리니, 그러면 “그대들이 알아서 하라”고 어명이 떨어진다. 설야는 그날 밤 자객의 손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2.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공자에게 제자가 묻는다. “설야가 바른 말을 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옛날 주왕(紂王)의 숙부로서 그의 폭정을 비판한 비간(比干)의 죽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를 인(仁)이라 칭하여 옳은 것인지요.”

공자 왈, “아니지, 비간(比干)은 주왕(紂王)과 혈연이기도 하고, 관직도 높았지.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까지 세찬 간언을 한 것은 사후에라도 주왕이 후회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이는 마땅히 인(仁)이라고 해야 하지. 그러나 설야는 영공과 혈육도 아니고, 지위도 일개의 대부(大夫)에 불과하지 않은가? 군주와 나라가 올바르지 않으면 깨끗하게 관직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분수도 모르고 구구한 몸으로 일국의 어지러움을 바르게 하려고 하다니, 이는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버린 게야. 인(仁)은커녕 한 소동에 불과한 것이지.”

그 제자는 공자의 말에 납득하여 자리를 물러났으나 옆에서 듣고 있던 자로(子路)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仁)·불인(不仁)은 둘째 치고, 어쨌든 위험을 무릅쓰고 일국의 문란함을 바르게 하고자 한 것에는 지(智) ·부지(不智)를 넘어선 훌륭함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과야 어떻든 생명을 헛되이 한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 왈, “그대는 그러한 소의(小義) 속에 있는 훌륭함만 보고 그 이상의 것은 보지 못하는가? 옛 사대부는 나라에 질서가 있으면 충성을 다했으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물러남으로써 이를 피하였다네. 자네는 아직 이러한 출처진퇴(出處進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군.”

자로 왈 “결국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신의 안전을 꾀하는 것에 있습니까? 몸을 버려 의를 세우는 것에는 없습니까? 한 인간의 출처진퇴가 천하창생의 안위보다도 더 소중한 것일까요? 설야가 지위에서 물러났다면 일신은 좋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백성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끝까지 간언하여 죽는 쪽이 국민의 기풍에 주는 영향으로 말하면 훨씬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자 왈, “물론 일신의 보전만이 소중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렇다면 비간의 죽음을 인이라고 칭찬하지도 않지. 단지 도(道)를 위하여 버리는 생명도 그 때와 장소가 있는 법. 그것을 지혜롭게 헤아리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라네. 서둘러 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거든.”

요컨대 설야의 죽음에 대해 자로는 “스승은 도대체 뭘 가르치십니까? 불의를 보고 참으라는 건가요?”라고 따져 묻는 것이고, 공자는 “허허 이 친구야, 의와 도라는 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는 법이다”라고 응수하고 있는 것이다.

3. 본래 이것은 어느 대학의 논술 시험문제인데, 앞부분 설야의 죽음까지는 열국지 6권에서, 뒷부분 공자와 자로의 대화는 공자가어에서 보충하여 내가 재구성한 것이다.

‘출처진퇴(出處進退)와 창생안위(蒼生安慰)’라는 제목의 논술시험 문제는 이렇다. <다음 제시문에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입장이 함께 드러나고 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부딪히는 문제이다. 이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1600자 안팎으로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정당화하시오>

내가 이 문제를 처음 접한 것은 20년 가까이 된다. 이 문제는 본질에 관하여 묻고 있다. 그 뒤로 이 문제는 내 화두가 되었다.

자로는 가치론적 접근이고, 공자는 목적론적 접근이다. 가치냐? 목적이냐? 직선이냐 곡선이냐?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라고 흔히 말을 한다. 이는 군중이 불의를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 개개인으로 들어가면 거의가 불의를 보고 참는다는 뜻이 된다.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렵다.

자로는 술과 총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아나키스트의 돌격처럼 멋지다. 재지 않고 바로 긋는다. 자로는 청년이다. 그러나 짧다. 공자는 장년이고, 백두대간처럼 길고, 인생처럼 멀다. 자로는 독주를 즐기며, 단숨에 들이킬 것이고, 그래서 단숨에 취할 것이다. 공자는 와인이나, 청주 같은 술을 즐기며, 뉘엿뉘엿 석양이 질 때까지 서서히 취해 갈 것이다. 자로가 멋지지만, 살면서 공자의 방식에서 일의 성취가 많은 것을 보아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래가지고 무슨 스승이요?”라는 문(問)과 “허허, 그렇게 되는 일이 있드냐?”라는 반문(反問)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양대 심리, 자존(自尊)과 이기(利己), 이 속에서 싸우다 우리는 일생을 마감한다. 청년일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자로의 길을 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공자에 기웃거리게 된다. 머리와 가슴은 자로처럼 늙지 않지만, 몸과 삶은 공자처럼 늙어간다. 이념의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

중요한 것은 변질이다. 자로를 택했을 때, 그 단숨의 실천과 매듭 덕분에 의는 영원히 살아있다. 그러나 공자의 길을 갈 때, 보통 사람은 변하기 쉽다. 공자는 참고 물러나, 임금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일관된 노력을 할 터이지만, 보통 사람은 그 초발심의 나사가 서서히 풀려가게 된다. 그래서 자로는 의를 실천한 것이 되고, 공자는 그것으로 그만인 경우가 되기 쉽다.

인간은 자로에게서 공자에게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초발심을 잃어버리느냐, 일관하느냐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답이 아니다. 이런 식의 양시론은 논술에서 빵점이다. 너는 누구를 택하여 자기주장을 펼 것인가를 시험은 강요하고 있다.

4. 어려운 문제는 이쯤에서 각설하고 다시 열국지로 간다. 하루는 통정했던 임금과 두 간신이 하희의 집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하희의 아들(하징서)은 감히 나서지 목하고 병풍 뒤에 숨어 있는데, 임금이 간신(의행보)에게 묻는다.

“하징서는 몸이 크고 힘이 센 것이 꼭 너를 닮았구나. 바로 네 자식이 아니냐?”하니 의행보가 껄껄 웃으며, “하징서의 번쩍거리는 두 눈은 꼭 주공을 닮았습니다. 아마 주공의 소생인가 합니다.”라고 응수한다.

또 다른 간신(공영)이 참견한다. “주공과 의행보는 그런 자식을 두실만한 연세가 아니니, 아마도 하징서는 잡종인가 합니다. 하부인도 접촉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구의 자식인지 짐작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 사람은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그날 밤 진나라 임금 영공은 하징서의 화살에 심장이 꿰뚫려 죽는다. 결국 진나라는 초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그러나 하희는 다시 초나라 관리 양노에게 출가했는데, 양노가 전장에서 죽자 의붓아들인 흑요와 통정했다. 세인의 지탄이 거세지자 하희는 고향인 정나라로 도망치는데, 그녀를 눈여겨봤던 초나라 대부 굴무가 나라를 배반하고 정나라에 귀순하여 하희의 품에 안긴다. 그 대가로 초나라의 명문이었던 굴씨 집안은 도륙 당한다.

하희는 결국 한 나라를 뒤집어엎고, 한 제후와 세 가문을 패가망신 시킨 여인이 되는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름 하여 경국지색(傾國之色)! 샤론스톤을 능가하는 팜므파탈이다. 하지만 남자라는 것이 자로와 공자의 논쟁에서 얼른 뒷문으로 빠져나가, 집안과 나라가 망할 때 망하더라도, 당장은 하희와 진한 람바다를 추고 싶은 것이, 그것이 꽃피는 춘삼월의 속내인지도 모른다.

<저 붓꽃은 아이샤도우를 그리는 붓처럼 생겼다>

** <절창화담>은 산사 이야기와 범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재를 맡은 이광이 님은 <무등일보> 노조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 그리고 도법스님이 이끈 조계종 총무원의 자성과 쇄신 결사에서 일 했습니다. 저서는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