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모두에게 눈물이었다

5·18광주 학살 후 광주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도 죄가 되는 금기의 땅이었다. 잠긴 입이 풀린 후 처음 밟은 광주 땅.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들이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 시뻘건 흙이 그대로 들어 난 죽은 자의 무덤, 우리는 그 앞에서 소리쳐 울었다.

■광주가 무슨 죄냐

버스가 대전에서 호남고속도로로 방향을 트는 그 순간부터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후배가 묻는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나도 모르겠다.’ 후배가 계속 나를 쳐다본다. 나도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모르랴. 눈물이 흐르는 이유를 왜 모르랴.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통해 그때 광주가 어떻게 피투성이가 되고 죄 없는 광주 청년들과 시민들이 어떻게 총탄과 대검에 죽어갔는지 생생히 보았고 기억하고 있다.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미친 광경을 보면서 차라리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웠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망월동은 여전히 억울한 청년들의 눈물로 가득 찼다. 아직 제대로 묘비조차 세워지지 않은 무덤, 시뻘건 진흙으로 덮여있는 무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말을 잃었다.

망각이라는 인간의 재능은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복수가 아니라 망각이 문제였다. 남북이 갈라지고 동서가 갈라진 이 땅. 5·18을 잊을 수 있는 재주를 누가 가지고 있겠는가.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들이다. 때가 되면 광주를 끌어내고 때가 되면 광주를 버린다.

■광주가 그토록 만만한가

▲ ⓒ팩트TV 갈무리

정치인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대의와 명분이다’ 십중팔구 나오는 대답이다. 정답이다. 정치인에게 대의와 명분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어디 있을 것인가. 국민에게 묻는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해득실이다.’ 십중팔구 돌아오는 대답이고 그 역시 정답이다.

전과 14범의 화려한 기록을 가진 전직 대통령의 대의명분은 무엇일까 ‘혹시 구름 잡는 것’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아무리 이해득실에 집착하고 매몰된다 하더라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양심의 소리는 ‘대의와 명분’이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래야 미국 가서 골프를 친 홍준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선거 때가 되면 대의와 명분이 화려한 춤을 춘다. 4·29 재보선에 광주가 중심에 서 있다. 왜 또 광주인가. 대의명분으로 살아왔다는 천정배가 출마했기 때문인가. 긴 얘기가 필요한가. 천정배에게 묻는다.

왜 광주인가. 왜 광주에서 출마하는가. 광주가 당신을 필요로 하던가. 적어도 광주에서 출마하려면 대의와 명분은 있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적을 가지고 있던 천정배 후보가 광주 서구 을에서 출마를 하는 대의명분은 무엇인가. 그는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는가.

‘현재의 야권이 정권교체를 위한 역할을 못 하고 있어 야권의 변화와 호남 정치 복원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

좋다. 그런데 왜 탈당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은 천정배에게 당당하게 경선을 요구했다. 왜 거부했는가. 자기 같은 거물을 전략공천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것이 천정배가 살아온 ‘대의명분과 원칙’에 부합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는가.

호남정치에 복원은 또 무엇인가. 자신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 호남의 정치를 바꿀 수 있는가. 천재의 오만은 이런 것인가. 자신이 4선의 영광으로 몸 담았던 정당과 싸움을 벌이며 뭐라고 할 것인가. 짐승도 자신이 살던 집에는 똥을 누지 않는다. 너무 머리가 좋아서 국민의 눈이 두렵지 않은가.

■천정배, 이건 아니다

군부 독재시절, 누구보다 치열하게 반독재투쟁을 하던 천정배였다. 억울한 시국사범의 변호에는 반드시 천정배의 모습이 보였다. 새파랗게 젊은 변호사 천정배. 한 점 꿀림 없이 당당하던 천정배. 그가 안산에서 연거푸 당선할 때도 법무장관을 할 때도 나는 천정배의 신도였다. 그 어느 누구도 지지하지 않던 노무현을 지지했던 오직 한 사람의 국회의원 천정배. 그런 천정배와 지금의 천정배는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그가 경선했다면 나는 그의 충실한 운동원이었을 것이다. 그가 공천을 받으면 나는 광주에 내려가 운동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가슴에 멍이 든다. 왜 그는 광주를 슬프게 만드는가. 그가 당선이 돼도 광주는 슬프다.

머리가 우둔해서인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해도 안 된다. 왜 천정배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광주 서구 을에 출마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죽어서도 답을 얻지 못할 것 같다.

이번 4·29 재보선에서 광주의 선택은 많은 의미가 있다. 온갖 부조리의 종합세트 같은 박근혜 정권이 국민의 냉정한 심판을 받는 것이다. 뜯어 먹을 것이라고는 ‘종북몰이’ 밖에 없는 새누리당이 이제 국민의 ‘지갑채우기’에 손발이 묶일 것이다. 광주의 눈은 밝다.

‘눈물은 누군가를 위한 기도’라고 한 시인이 있다. 그 동안 우리 국민이 흘렸던 그 많은 눈물을 차지했던 광주. 5·18의 분노와 망월동의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4·29 재보선에서 패한다면 저들은 무슨 궤변으로 자신들을 합리화 할 것인가. 국민의 지지를 떠들어 댈 것이다. 기레기들은 덩달아 춤을 출 것이다. 그들이 춤을 추도록 광주가 장단을 맞추면 안 된다.

요즘 국민들이 목격하는 새누리 정권의 정치는 이미 정치이기를 포기했다. 이런 정치를 겪으며 얼마나 견딜 것인가. 견딜 수 없으면 몸부림이라도 쳐야 하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국민행동’이다.

민주주의 ‘국민행동’ 발대식이 열렸다. 죽어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 살려내기 위해 수많은 발기인이 모였다. 함세웅 신부님의 목 멘 절규가 가슴을 친다. 신부님이 지금 국민과 하늘에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 잔존 세력을 척결하자.
군사독재 세력을 척결하자.
민주주의를 회복하자.

왜 광주를 괴롭히는가. 경선을 거부하고 탈당을 하고 무소속 출마를 결행한 정치인. 광주의 정신은 그에게 대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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