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찻길이 끊어진 곳에서 산기슭을 한참 거슬러 가야 한다. 계곡은 얼어 있다. 물은 얼음 사이로 흐른다. 땅에 닿지 못한 물은 고드름이 되었다. 고드름은 오르간 파이프처럼 보인다.

바람이 혼자 지나간다. 눈이 낙엽을 덮어 바람이 쓸고 갈 것이 없다. 이런 곳에 절이 있을까 싶을 때, 돌계단이 보인다. 만남은 발길을 돌리기 직전에 온다. 우화루의 처마가 새의 깃처럼 날렵하다.

▲ ⓒ이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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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년 전쯤에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알려 주었다. 화암사에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 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입구에 안도현이 써 놓은 팻말이 서 있다.

겨울 화암사는 흑백이었다. 우화루에는 꽃비 대신 눈이 내려앉았다. 5백년을 살고 한 생을 마친 소나무는 목어(木魚)가 되어 다시 5백년을 대들보에 걸려 있다. 극락전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처럼 늙었다.

시집올 때 딱 한번 화장을 하고, 빗질은 가끔 하지만, 그 후로 화장은 다시 하지 않은 듯한. 단청이 거뭇거뭇하다. 붉고 푸른 두 색은 무채색으로 합쳐지고 있다. 맞배지붕의 단아한 기품이 있다. 지붕의 눈은 가르마를 타고 남향으로 녹았다.

화암사는 꼭 와본 것처럼 낯이 익다. 우리는 기억의 회랑 속에 있는 기둥이 몇 개인지 기억할 수 없으므로, 아득한 옛날 진짜 화암사에 다녀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화암사에 간 것과 안 간 것이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오직 기억만이 기억할 뿐. 그런데 기억은 가물거리고 화암사는 낯이 익다. 기억이 새로 생겨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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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면, 절은 쇠락한 고택 같다. 증조까지 4대가 어울려 살던 고향의 옛 집처럼 작고 소박하다. 거기 마당에서 누군가가 진짜 걸어 나올 것 같다. 극락전에서 보았던 할머니가 고무 다라이를 이고, 그 추운 날 뒷개에 가서 석화를 따오는 길에, 볕이 드는 토방에 앉아 남자 같은 손으로 석화를 까서는, 조새 끝에 달린 것을 자기 입으로 한번 훑어, 쩍 바른 것을 어린 내 입에 넣어주던.

거기 앉아 누구라도 부르면 나올 것 같다. 부르고 싶은 사람을 부르면, 저 무대로 나올 것이다. 낯익은 풍경이 가물거리는 기억을 부른다. 그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은 환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만남이 이뤄지고, 그 만남은 기억이 된다. 기억은 흘러 추억이 되고, 추억은 늙어 비밀이 된다.

누군가 꼭 보고 싶으면, 완주 화암사에 가면 된다. 혼자 가면 비밀이 하나 생긴다.
/사진: 이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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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창화담>은 산사 이야기와 범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재를 맡은 이광이 님은 <무등일보> 노조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 그리고 도법스님이 이끈 조계종 총무원의 '자성과 쇄신 결사'에서 일 했습니다. 저서는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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