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이.

남원 실상사에 다녀왔다. 실상사는 여름과 겨울, 재가불자를 위한 단기 강원을 연다. 불교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스님이 강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에는 ‘재가불자 겨울학림’이 지난 7일부터 닷새간 열렸다. 책은 나가르주나의 ‘중론(中論)’.

하루 일과는 스님과 비슷하다. 새벽 4시 일어나 예불을 올린다. 아침 공양을 6시에 하고, 7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오전 수업. 오후 한 2시쯤 됐나 싶은데 10시 반이다.

점심은 11시 반에 먹고, 오후 수업을 2시부터 4시30분까지 한다. 5시에 저녁 공양하고, 6시에 저녁예불을 올린다. 7시부터 스님과 차담시간을 갖고 10시에 잔다.

강당은 절 울타리 너머 산과 밭 사이에 있다. 맞배지붕을 하고 전면 5칸, 측면 2칸이다. 좀 떨어져서 보면, 이 건물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잘 보인다. 내림마루의 기울기는 납작하다. 지붕의 경사면이 적어도 직각에 가까워야 자세가 나오는데, 이것은 둔각삼각형도 한참 늘어진 둔각이다

사람인(人)자가 아니고 늘어진 여덟팔(八)자다. 지붕과 천장 사이에 공포부가 없기 때문이다. 용마루 선은 바르지 않고, 처마 선도 꿈틀거린다. 기와는 찰흙으로 빚어 구운 절의 여느 기와가 아니다. 한마디로 대충 지은 것이다. 송광사 사자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실상사 살림이 빠듯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전북 남원 실상사 보광전 앞 해강스님. ⓒ이광이

저녁예불을 마치고 차담시간에 해강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이 건물을 왜 이렇게 지었답니까? 살림 사는 요사체도 아니고, 엄연히 법당인데, 좀 성의 없이 지은 것 같습니다. 지붕은 납작하고, 처마선도 틀어지고, 기와는 가짜고…”
“허허, 기와가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습니까? 저건 시멘트 기와입니다. 학림을 하는 동안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보는데, 좀 멀리서부터 얘기할까요? 그냥 할까요?”
“겨울밤은 깁니다. 좀 멀리서부터 해주세요.”

“이 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1700년이 되었지만, 사실 한국불교라고 할 만한 것은 60년에 지나지 않아요. 불교는 정신인데, 조선 500년 동안 정신이 억압받아 왔으니까요. 그래서 한국불교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져왔고, 그 요체는 바로 교육이었죠. 행자 때 기초교육을 받고, 사미 때 기본교육을 받고, 그 후 큰 절의 강원이나, 승가대학이나, 동국대에서 전문교육을 받죠. 그런데 가르칠 사람이 없어요. 말하자면, 사범학교나 대학원 같은 특수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1996년 도법, 수경스님을 비롯하여 몇몇 스님들이 뜻을 모아 이 여기 실상사에 ‘화엄학림’을 열었던 겁니다.  

▲ 전북 남원 실상사. ⓒ이광이

첫 해 5명이 입학하는데 제가 그 중 하나입니다. 학인스님들이 실상사 객사를 다 차지하고 있으니, 손님들 묵을 방이 없고,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래서 울타리 뒤편, 밭 한 가운데 강당을 하나 짓기로 한 거죠. 그런데 돈은 없고, 국립공원 구역이라 허가 내기도 힘들고, 모든 것이 난관이었습니다. 거 통장을 만들어 돈을 미리 당겨쓰는 것을 뭐라고 하죠?”
“마이너스 통장이요.”

“맞아요, 신도님들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죠. 많은 분들이 마음을 내어서 그 돈이 1억원이 됐습니다. 그것을 종자돈으로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작한 거예요.”
1억원은 목재 값도 안될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번듯하게 지으려면 몇십억은 들 것이다.

“송광사를 찾아 갔어요. 현고스님이 주지하실 때 같은데, 불사를 하다가 못 쓰는 목재를 좀 달라고 했죠. 나무가 휘어지고, 틀어지고, 금이 가고, 길이가 안 맞고, 땔감으로 나갈 자투리 목재들, 그런 것들을 몇 트럭 얻어 왔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감지덕지 했습니다. 그것으로 어렵게 짜 맞춰 지은 거예요. 모양이 어디 있습니까? 비바람 피하고 공부할 공간이면 되죠. 그러니까 막집 맞습니다. 잘 보셨어요. 여러분은 겉은 이래도 정신이 살아 있는 건물에 앉아서 공부하시는 겁니다.”  

▲ ⓒ이광이

그 내력을 듣고,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국보니, 보물이니, 하며 얼굴 이쁜 여자들을 쫓아 다녔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들고. 꼭 책을 열어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수업은 빠지더라도 뒤풀이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저것이 교외별전 아닌가!

화엄학림 강당은 그렇게 지어졌다. 당시 5년 후에 철거하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불법(佛法)건축물’이다. 그동안 그곳에서 50여명의 전문 강사가 배출됐다. 한국불교 곳곳에 그 분들이 박혀 보와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 <절창화담>은 산사 이야기와 범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재를 맡은 이광이 님은 <무등일보> 노조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 그리고 도법스님이 이끈 조계종 총무원의 자성과 쇄신 결사에서 일 했습니다. 저서는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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