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협량과 얼어버린 국민의 가슴

세월호 유족들이 혹시나 하고 초청하고, 혹시나 하고 차려놓은 떡국이 차갑게 식은 채 추위에 떨고 있다. 대통령이 유족들과 함께 떡국을 먹으며 눈물 한 방울 흘렸으면 어땠을까. 국민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새해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눈물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신년사에서도 통일을 역설했다. 국민 모두가 염원하는 통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조건 속에서 통일이 올 것 같은가. 가능할 것 같은가. 길이 있어야 간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남북은 지금 길을 만들고 있는가. 뚫린 길도 서로가 망가트리려고 한다.

■통일이 제 발로 기어 오더냐

반만년 역사와 단일민족을 자랑하며 정이 많은 민족이라고 떠들어 댄다. 원래는 그랬을지 모른다. 단군 할아버지 밑에서 오순도순 살 때는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보자. 세상에 그런 원수가 없다. 부모 때려죽인 원수도 그럴 수가 없다.

▲ 전남 진도 팽목항. ⓒ광주인

북한의 주적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주적은 북한이다. 수십만의 군인이 총을 겨누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줄은 아는가. 청와대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협박한다. 평양을 일거에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원수가 평화통일을 말한다. 무력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원한다니 개가 웃을 소리가 아닌가.

서로가 목에다 칼을 들이대고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고 한다면 어느 누가 온전한 정신 가진 인간이라고 하겠는가. 미친놈 아니면 할 수 없는 소리다. 그러나 남과 북의 지도자라는 자들은 늘 이런 헛소리를 해 왔다. 그리고 언론이라는 괴물이 북 치고 장구 치며 부추겼다. 그런 속에서 국민들은 통일이라는 환상의 늪에 빠져버렸다.

지도자라는 인간들의 정신머리는 이제 구제불능이다. 그들이 통일을 원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민족의 염원이라는 소리는 행사장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것과 다름없는 형식일 뿐이다. 잘 먹고 잘살고 대를 이어서 떵떵거리는 데 왜 통일이 필요한가. 통일이란 구호는 필요할 때만 써먹는 장식품일 뿐이다.

국민 동요처럼 되어 있는 노래 ‘우리의 소원’이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감동적인가. 그렇다 감동적이었다. 옛날에는. 지금은 어떤가? 별로다. 왜 별로인가. 주적은 섬멸해야 한다. 박살을 내야 하는 상대와 무슨 ‘이 정성’을 다 해서 통일인가.

그럼 좋다. 섬멸하고 박멸은 할 자신이 있는가. 말로야 얼마든지 자신만만이다. 그러나 실제를 보자. 박멸하려고 해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전시작전권’도 없는 군대가 총도 못 쏘고 주먹으로 싸워서 섬멸할 것인가. 이런 헛소리로 국민을 현혹시켜서는 안 된다. 남북정상회담이 거론되자 미국이 뭐가 뒤틀리는지 눈 치켜뜨고 큰기침 한 번 했다. 그럼 끝이다.

옛날 어렸을 때 초딩 꼬맹이들끼리 패싸움을 한다. 이념의 싸움이 아니라 한 번 으쓱해 보는 것이다. 이런 패싸움에도 단결이 있어야 하고 꼬마대장에 대한 존경과 충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싸움이 되고 이긴다.

▲ 전남 진도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해 12월 27일 방문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 ⓒ광주인

어떤가. 만약 지금 미국이 통일전쟁 하라고 작전권을 돌려줘서 한 판 붙는다면 이길 자신이 있는가. 방산비리로 고장 난 전투기와 음파탐지기 없는 구축함과 포탄 나가지 않는 함포와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과 물이 새는 군화와 귀순하려고 문 두드리니 ‘위로 가 보세요’하는 초병과 총성이 울리자 GOP에서 도망간 초소장으로 무슨 통일 전쟁을 한단 말인가. 시집을 가야 애를 낳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선임병에게 맨 날 두들겨 맞아 한 맺힌 쫄병이 통일 전쟁 중에 무슨 짓을 할지 겁나지 않는가.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은 한심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 자신 있는가. 쪽박이 될 것 같지는 않은가. 문제는 국민의 마음이다. 국민의 마음이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존경할 때 그 힘은 핵무기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데, 기도와 염불이 무슨 소용

이제 대통령이 무슨 소리를 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자신도 잘 알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자신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대선공약이 어떻게 됐는지도 잘 알 것이다. 김기춘이 아무리 분골쇄신 충성충자를 뇌까려도 그건 그들만의 잠꼬대고 국민에겐 스쳐 가는 바람이다.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는 소위 지지율이라는 것을 보면 알 것이다. 철옹성이라고 자부하던 TK도 50%대가 무너졌다. 근거를 일일이 댈 필요도 없다. 이미 국민들 가슴속에 바위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세월호 유족들의 떡국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것이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한국리서치의 조사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평가가 28.5%에 불과했다. 더 이상 설명은 의미가 없다.

새 해가 밝으면서 대통령은 통일을 강조했다. 국민에게 들리는 소릴까. 유감이지만 남의 동네 얘기다. 왜일까. 불신 때문이다. 무슨 소리를 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거짓이라는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있다. 무엇인가.

세월호 유족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뜨거운 떡국을 함께 먹으며 눈물을 흘리면 된다. 이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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