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쯤 아내는 김장을 했다. 연세 많은 어머니와 늙어가는 부부가 사는 집이라고 해도 김장을 안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김장은 다가오는 추위에서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수단임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추 100포기 심어 벌레 쫓아가며 키웠는데 남은 것은 70여 포기였다. 그 중에서 시장에서 파는 것만큼 폭이 제대로 찬 배추는 찾을 수 없었다. 겨우 김장을 할 수 있는 배추를 골랐더니 40포기를 넘지 않았다. 포기의 크기가 작다보니 김장은 30포기 했다.
 

 

▲ 배추 수확하는 아내. 보이는 것처럼 배추가 실한 것은 아니다. ⓒ홍광석

 

 

▲ 절인 배추 씻어 물을 빼는 과정. ⓒ홍광석

 

생지와 데쳐서 초 무친 나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10여 포기는 신문에 싸서 저장하고 남은 배추는 밭에 그대로 두었는데 내년 봄까지는 싱싱한 배추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농약이며 화학 비료를 치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지만 우리 부부가 손수 키운 배추에 젓갈과 석화 청각 등을 제외한 고추 마늘 생각 쪽파 갓 등 각종 양념까지 텃밭에서 거두어 사용했으니 자부심은 물론 일종의 성취감도 컸다.

12월 22일에는 메주를 쑤었다. 메주를 띄울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그동안 메주를 사다 장을 담그거나 황토방이 있는 동생네 집에 우리가 수확한 콩을 맡겨 메주를 띄웠는데 귀농 후 처음으로 아내와 둘이 시작한 일이었다.

먼저 아내는 금년 농사를 망쳤기에 메주콩이 부족하여 마을에서 다섯 되를 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살리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그도 부족하여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자문을 받는 등 사전 준비를 했다.

며칠을 벼르더니 아내는 전날 (21일) 밤 좋은 콩을 골라 씻어 물에 불렸다. 화덕에 불을 피우고 콩을 삶는 일은 내 몫이었다. 콩이 끓어 솥뚜껑이 열리면 재빨리 솥뚜껑을 닫고 그 위에 물을 뿌리는 일도 내 몫이었다.

솥뚜껑을 열고 콩의 맛있는 냄새가 나간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아내의 지시(?)을 지키기 위해 바깥에서 떨기도 했다. 하필 전날 폭설까지 내린 터라 고무신으로는 시린 발을 감당할 수 없어 등산화를 신고 견뎌야했다.

처음에는 센 불로 삶고 콩에서 붉은 빛이 보일 때까지 약한 불로 4시간가량 뜸을 들이는데 그런 일도 내 차지였다.
 

 

▲ 콩 삶기. ⓒ홍광석

 

 

▲ 만들어진 메주. 크기가 고르지 못하다.ⓒ홍광석

 

메주 만드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삶은 콩을 비닐과 쌀자루에 두 겹으로 싸서 발로 밟아 으깨는 일은 다리 운동이다. 그리고 으깨진 콩을 일정하게 덜어내 도마에 쳐서 다지는 일은 팔운동이다.

뭉쳐진 콩을 메주의 형태로 성형하는 일은 예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정작 눈대중으로 만들어진 메주는 크기가 들쑥날쑥이다. 그래도 부부가 합심한 작품이기에 오히려 자화자찬하며 웃고 말았다.

솥이 작아 한꺼번에 할 수 없어 두 번에 걸쳐 나누다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메주 쑤고 메주 만드는 일로 꼬박 하루를 보냈지만 보람과 즐거움은 컸다.

김장을 하고 메주를 만드는 일은 아직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한 준비다. 요즘 대부분 젊은 세대들도 그렇지만 도시에 사는 많은 가정에서도 김장을 하지 않고 심지어 김치를 먹지 않는다고 들었다.

역시 메주를 만드는 일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치와 메주만이 미래를 위한 준비는 아닐 것이다. 김장과 메주가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바쁜 시대에 사먹으면 되는 일이지 그걸 강제로 고집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도 이해한다. 아파트라는 곳이 김치가 금방 시어지고 또 메주를 띄울 수 없는 주거 공간임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함께 살아야할 소중한 이웃을 잃은 느낌이 온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편리함만을 추구하면서 너무 즉흥적인 삶, 어쩌면 내일이 없는 뜨내기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란 당장에 보이는 것을 먹고 돈을 많이 갖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은 부족하지만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한 가지씩 이루어가며 사는 삶이 더 값진 것이 아닐까?

장을 담그는 것까지는 어렵다고 하지만, 깨끗하게 키운 배추를 고르고 갖가지 양념을 만들어 김치를 만드는 과정은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집에서 할 수 없다면 가까운 형제와 친척 혹은 이웃들끼리 모여 살림의 지혜도 교환하고 서로 사는 형편을 가늠하여 조금 어려운 이웃에게 한 포기 양보한다면 그 또한 사는 재미가 아닐까?

김장 하고 장 담그기는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일이다. 건강한 내일을 만들어가는 삶의 과정이다.

그 내일이 결코 기쁘지만 않을지라도 김치 한 보시기 된장국 한 그릇은 현재의 좌절을 한 순간의 추억으로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 거실에 둔 화분에서 '오점 네모필라'가 피었다. ⓒ홍광석

 

 

▲ 추위속에서 푸르게 자라는 완두콩. ⓒ홍광석

 

너무 옛날 냄새를 물씬 풍기는 노인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내가 김장하고 메주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줄곧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긴 비정상적인 정치가 국민이 가야할 길을 왜곡하는 나라.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국민을 하루살이로 만드는 나라.

젊은이들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며 속칭 [3포 세대]라고 자학적으로 규정하는 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가족과 함께 내일이 있는 삶을 만들자고 말하기 미안하다. 그러니 김장과 메주 이야기는 더욱 무리인 줄 모른다.

젊은 세대를 그렇게 키우고 당장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우리 같은 ‘늙다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반성을 해본다.
 

연말이다. 한해를 정리하자는 소리들이 들린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돌아서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은 시간이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나라의 앞날도 정말 투명했으면 좋겠다.

모든 국민들이 김장 김치를 나누며 잘 띄운 메주로 장을 담그며 사는 편안한 나라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숙지원의 겨울도 깊어간다. 차가운 눈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은 완두콩과 마늘을 본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찬바람을 피해서 자라는 상추 청경채 시금치….

그 자리에서 그것들이 더 자라면 봄은 슬그머니 다가오겠지. 어쩌면 농사도 끝없는 생명의 윤회를 지켜보는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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