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던 날의 감상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에는 이제 너무 늦은 나이.
그렇다고 소박한 희망조차 없다는 말이 아니다.
반가운 첫눈.
조금 들뜬 마음으로 숙지원 한 바퀴돌기
 

 

▲ ⓒ홍광석

 

누구의 집이라는 이정표만은 아니건만
무슨 뜻을 담은 풍경인지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숙지원 현판은 나이를 먹어가는 중이다.
 

 

 

보기에는 그저 시원한 눈밭.
살아있는 나무들이 꾸는 꿈은 보이지 않는다.
묵묵히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는 작은 석등 하나.
어느날 노란 불 밝히더니
어느날은 철쭉의 붉은 빛을 빌어다 밝히더니
지금은 하얀 빛을 함께 하는구나
 

 

 

장독대의 항아리 앞에서면 여인들의 기원이 들린다.
숙지원의 기원을 담은 곳
지나간 우리 역사에 가난을 넘은 자족과 평화는 늘 멀리 있었다.
이제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정화수 떠 놓고 아픈 자식 낫기를 바라는 엄니들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차별 없는 세상이 오기를!
 

 

 

사과꽃 향기는 사라지고 하얀철죽의 웃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 길을 다닌 사람이라면 그 여운을 어찌 모를 것인가.
하얀 눈꽃을 피운 나무들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인데 까치도 아직 먹기에는 아까운 것인지
주황빛이 곱다.
 

 

 

산자락 그늘의 붉은 철쭉길
어린 묘목을 하나하나 심은 것이 엊그제인데 어른들의 몸을 감출만큼 자랐다.
나무는 시간을 먹고 자라고 사람은 자기 시간을 깎으며 늙는가 보다.
 

 

 

통나무 의자는 눈이 객이되어 앉아 있다.
안식은 뜻밖의 자리에서도 만날 수 있음을 느끼는가
숨죽여 지나가는데 나에게 속삭인다.
고운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홍광석

 

발자취가 어지럽다.
아득하게 보이는 지난 봄 여름 가을
생명의 순환을 생각한다.
늙는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병들어 추해지는 모습이 두려운 것이다.
 

 

 

시작한 길의 반대편에서 출발점을 찾는다.
조금은 기운 전신주도 하나의 풍경이 되는 아침
첫눈길이 밝다.
서설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믿기로 하자.

/사진: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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