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재만’인데, ‘말씀만 하십쇼’ 

‘고바우’ 하면 만화가 김성환 화백을 떠올릴 것이다. 신문연재 만화의 효시인 그에겐 일화도 많다. 이승만 독재 시절인 1958년 1월 23일, 동아일보 고바우에 똥지게가 등장한다. (당시는 대부분 푸세식) 똥지게를 멘 사내가 나타나면 굽신 절을 하며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라며 허리를 숙인다. 고바우가 “저 어른이 누구신가요?” 묻자 “쉿- 경무대(현 청와대)서 똥을 치시는 분이요”라고 답한다.

무슨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그보다 바로 1년 전, 이승만의 양아들을 사칭한 '가짜 이강석 사건'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국민들은 ‘고바우’를 보면서 속을 풀었다. 이 만화로 김성환은 즉결심판에 넘겨져 벌금을 물었다.

“이재만인데요. 취직 좀 부탁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으니 설명을 하자면, 청와대 실세인 이재만이란 말 한마디에 대기업 ‘대우’ 사장은 부장급 자리를 마련해 준다. 가짜 낙하산의 착지 성공이다.

▲ ⓒ고바우 영감 (사진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군의 날, 하늘에서 꽃처럼 이름답게 낙하산이 낙하한다. 보는 사람은 멋지게 느껴도 낙하산에 운명을 맡긴 낙하산병은 얼마나 두려울까. 펴지지 않는 부하의 낙하산을 펴주고 산화한 이원등 상사의 동상은 오늘도 중지도에서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요즘 낙하산이 시도 때도 없이 낙하하고 있다. ‘문고리 실세’ 이재만의 이름을 판 가짜 낙하산도 화제다. 그뿐이랴. 미국에서 박근혜 대선 운동을 한 코미디언 쟈니윤의 낙하산은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착지했다. 영계를 좋아하는 여성 기업인 김성주는 대통령 선거운동의 보상으로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낙하했다. 적십자사는 그가 내지 않았던 몇 년 동안의 회비를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국정감사는 안 나오고 중국으로 출국, 안하무인이다.

민청련 관련 동지를 밀고하고 맥주병 난동을 부린 전직 국회의원이며 MBC 기자였던 곽성문은 코바코(KOBACO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으로 낙하했다. 국감장에서 최민희 의원이 물었다. “지원서를 보면 ‘큰 영애와 오래전에 개인적 인연을 맺었다, 친박 그룹 일원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와 같은 구절이 있다”며 사실 여부를 물었다. 당당하게 인정했다. 그는 MBC 기자 출신이다.

창원시장 출신의 박완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일일이 어찌 거명하랴. 아직도 대기하는 낙하산은 부지기수. 오뉴월 메뚜기도 한철이라 했는데 때를 놓치면 어쩌랴. 죽기 아니면 살기다. 국민들은 입이 없다.

■낙하산이라는 전리품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이 있다. 일본에는 ‘귀무덤’이라는 것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우리 국민 12만 명의 귀를 잘라 풍신수길에게 바쳤단다. 머리는 부피가 커서 귀로 대신했다고 한다. 조선인의 귀를 전리품으로 받은 풍신수길도 사무라이라고 한다.

조선을 침략해 남한산성에서 조선왕을 무릎 꿇리고 항복을 받는 청나라는 꽃 같은 처녀들을 바리바리 실어갔다. 전리품이다. 나라를 잘못 만나고 지도자를 잘못 모시면 백성은 이 꼴이 된다. 위안부가 별것인가. 전리품이다.

지금 떨어지는 낙하산은 전리품인가. 좋다. 전리품이라고 하자. 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보상을 해 줘야 한다고 치자. 그러나 선거란 전쟁은 어디에서 벌어졌는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졌고 승자도 패자도 이 땅을 위해서 존재한다.

선거에서 승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과의 약속이행이다. 약속은 공약이다. 공약은 어떻게 되었는가. 더 얘기하면 욕 나온다. 나라빚이 얼마인 줄 아는가. 이자만도 21조 2천억, 작년 18조 3천억에서 12.8%가 늘어났다. 국민 1인당 42만 원이다. 42만 원 빚지고 태어난다. 내년에는 72만 원이라고 하던가.

지금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이 인사의 난맥이다. 낙하산이란 이름으로 논공행상을 해도 상식적이어야 한다. 자니윤이 왜 한국관광공사 감사인가. 그의 재주를 평가한다면 코미디 프로그램 마련해 주면 된다. 김성주가 왜 대한적십자사 총재인가. 11분 만에 검증을 끝낸 김성주가 적십자 총재가 되어야 할 이유를 말하라. 대통령을 29세의 ‘소녀가장’이라고 해서인가. 제정신 가진 국민은 모두 설레설레 머리를 흔든다.

전쟁영화를 보면 낙하산병들이 낙하하다가 건물이나 나뭇가지에 걸려 착지도 못 하고 발각되어 매달린 채 사살되는 것을 본다. 어느 경우에든 낙하산은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의 정치 상공에서 투하되는 낙하산은 어떤가. 사고투성이다. 정성근이란 낙하산병은 착지도 못 하고 공중에 매달린 채 발가벗겨졌다.

대표적 논객이라고 자부했을 문창극이나 그래도 평가받던 대법관 출신의 안대희. 이들의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 정권이 사람 잡는 짓을 한다는 탄식이 나온다. 그래도 낙하산을 타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덤벼드는 데야 어쩌랴. 정치는 낙하산병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셀 수도 없다고 한다. 능력과 품성은 차치하고 맹목적인 충성심을 잣대로 한다면 낙하산은 펴 보지 못한 채 사고를 당할 것이다.

이렇게 무질서한 낙하산 투하를 본 적이 없다. 애들이 마구 던지는 돌팔매 같다.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를 봤는가. 저질품 낙하산병이 저지르는 적폐는 나라를 병들게 하고 대통령을 욕먹게 하고 국민을 절망하게 만든다.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으면 자질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주면 된다. 과장 자리가 어울릴 인물을 사장으로 앉히면 회사 꼴이 뭐가 되는가. 개인 회사나 정부기관이나 국가나 모두 같다. 앉을 자리에 앉을 사람이 앉아야 한다. 잘못 앉으면 모두 망한다. 줏대 없는 국방외교를 보라. 문득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 청와대인데”라는 도깨비가 도처에서 날뛰고 있을 것이다. 효과가 없으면 이런 짓 하지 않는다. 썩은 물에 모기가 끓고 쓰레기통에 파리가 들끓는다. 지금 국정감사 기간이다. 국민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저런 공직자들을 위해 세금을 내고 있다니.

‘인사가 망사’라고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독약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는 망사가 판치고 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무분별한 낙하산으로 오염되고 있다. 가뭄에 소나기는 구원이다. 장마에 소나기는 저주다. 누가 책임을 지는가. 모르면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도 ‘인사는 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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