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상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학교이기를

아침에 교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학교에서 못 보던 아이가 들어왔다. 아마도 2학년이나 3학년이겠거니 생각한다. 올해 내가 이 학교로 와서 1학년만 들어가고 있으니, 낯선 얼굴로 보아 1학년은 아니다.

“선생님, 돈 바꿔주세요”한다. 산정(SJ)화폐이다. 10SJ이 2개, 5SJ이 3개, 1SJ이7개니까 2,000원 + 1,500원 + 700원으로 4,200원어치다. 난, 돈으로 바꿔주기 전에 먼저 “산정 아나바다‘가 어땠는지부터 물었다. 그것에 답해야 돈으로 교환가능하다고 거짓말도 좀 섞고.

그런데 뒤이은 격렬한 반응에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어떻게 떡볶이가... 먹을 것이 있을 수가 ........ 학교에서 어떻게 길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출 수 있죠? ” 흥분하여 채 말을 마치지도 못한다.

▲ 산정중학교 9월 문화행사에서 학생들이 청소년기타리스트 라온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산정중학교 제공

아무튼 그 학생에게는 학교에서는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 거다. 이번 9월 행사가 그 아이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거였나 보다.

지난 5월 ‘산정 다달이 프로젝트 교사동아리’가 만들어졌다. 학생들이 기획자가 되어 달마다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운영해나가도록 지원해주자는데 동의한 교사들이 만든 동아리이다.

지원신청서를 낸 학생들에 대한 면접이 교사동아리에서 이루어진 후 ‘산정다달이 프로젝트 학생기획단’이 탄생했다. 1, 2학년 10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학생기획단은 행사 기획과 준비를 위하여 수시로 만난다. 물론 아직은 교사들의 손이 많이 가는 기획단이기는 하다.

7월에는 <너의 노래가 들려>행사가 성공리에 치러졌다. 15팀의 예선, 10팀의 본선 진출이 이루어졌고, 200원 좌석표에 강당 300여개의 좌석이 꽉 들어찼다. 7월의 프로젝트는 산정중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그 행사에 학생들이 대거 자율적으로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끄럽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눈에 띄는 아이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진행 과정에서 기획과 광고디자인 등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경현이, 톡톡 틔는 사회 재능으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한 민혁이, 세심하게 자신이 할 일들을 잘 해주었던 1학년 기획단들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능력들을 보여 주었다.

방학을 끝내고 8월 말에 다시 모인 프로젝트학생․ 교사모임에서 9월 행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서 낙점된 것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아나바다’행사였다. 행사명은 <왔다 아나바다, 산정 아나바다>으로 결정했다.

개인과 팀이 자율적으로 미리 신청하여 참여하고, 길거리문화제, 학부모회가 운영하는 먹거리 부스, 3학년 6인이 운영하는 네일아트 부스, 전통놀이와 보드게임으로 이루어진 게임부스 등의 특별부스가 곁들어졌다.

행사장에서는 산정화폐가 발행되어 통용되었다. 행사 날이 다가오면서 거의 2주 동안 변화가 없던 학교에 흥분의 기운이 느껴졌다. 학급 할당이 아니라 자율적인 참여에 맡기다 보니 기부와 나눔에 참여자가 목표량에 훨씬 못 미쳐서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거니 생각한다. 일단 아이들은 기부보다는 놀거리와 살거리에 더 관심이 컸던 것이다. 기부나 자율적인 나눔에 참여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아이들이다. 다음에는 기부 참여자가 훨씬 더 많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또 건진 게 있다. 1학년5반처럼 열심히 물건 내놓고, 팔 계획을 세우는 아이들도 있고, 팔찌와 쿠키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곳도 세 곳이나 되었다. 이런 곳은 재능기부자로 상품권도 받았다. 그리고 자율 참가팀 10팀, 이 친구들도 대단하다.

▲ 산정중학교에서 지난 9월 열린 <왔다 아나바다, 산정 아나바다> 문화행사에서 청소년 기타리스트 라온이 연주하고 있다. ⓒ산정중학교 제공

또 있다. 장터의 아이들을 무대 주변으로 불러 모았던 길거리 문화제에서 – 턴 테이블을 연주하며 디제이로서의 끼를 한 껏 보여준 2학년 성원이를 발굴하고 그에게 무대를 마련해 줄 수 있었던 것, 초대된 청소년 기타리스트 라온의 공연이 불러온 호응 등은 아이들의 마음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장터의 한 켠에서 우리학교 밴드부의 기타를 치는 한 녀석이 기타 치며 노래를 했다고도 한다.

학교에서 ‘이런 일들도 일어날 수 있다니’ 흥분하면서 찾아온 2학년 학생으로부터 나는 상상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유명한 문화기획자가 나올지 어떻게 알아?’, ‘또 예술가는?’, ‘위대한 기부자나 자원봉사자는?’

일반적으로 일부러 일을 벌이지 않고서는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는 곳이 학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학교를 생각할 때면 ‘빈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경험의 빈곤, 실천의 빈곤, 상상의 빈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고 싶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이, 다양한 상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학교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이상 학교가 빈곤한 곳이 아니기를.

**<교육현장에서>는 현직 교사, 교장과 그리고 교육단체,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교육현장 이야기와 교육이슈 등을 소재로 자유롭게 펼치는 여론마당입니다. <광주인>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