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만드는 영화 <상록수> 김철한 감독 인터뷰
 '노무현에서  이남종까지 영화로 시대를 말하다'
   

2013년 12월 31일 오후 5시 25분. 서울의 종각은 거짓의 불꽃으로 한 해를 정리하는 야만의 향연이 준비 중이었다.

진실을 감추기 위한 거짓의 불꽃은 화려했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시대의 원망 소리는 없었다. 청맹과니들의 광란장이었다. 그 시각 서울역 광장을 바라보는 고가 위에는 시대의 광란을 질타하는 양심이 거짓의 암흑시대를 온 몸으로 거부하고, 진실의 광명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남종 열사의 뜨거운 외침,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였다. 이남종 열사는 서울역광장의 전설이 되었다. 고결한 사랑을 위해 한겨울에 붉게 피어나는 동백처럼... 그 이후 매주 토요일이면 숭고하고, 고결한 이남종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어김없이 서울역광장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만들어 가고자하는 이들이 있었다. 김철한 감독과 ‘블랙스완’이다. 김철한 감독이 시대를 질타하는 영화를 제작한다고 한다.

<상록수> 우리 시대에 ‘늘 푸르름’은 무엇일까? 김구, 장준하,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명의 죽음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는 생명과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 <상록수>를 제작 중인 김철한 감독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마중물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기를 바란다. 

▲ 김철한 감독.

먼저 <상록수> 영화제작을 축하드립니다. 영화 상록수를 기획하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요,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우리의 위기는 우발적이지 않습니다. 갈피를 잃은 역사의 흐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또 극복해야 하는 과제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역사를 한꺼번에 바로잡을 수는 없겠죠. 2014년 현재의 몰상식한 시국을 직접 조장한 가까운 과거의 문제들부터 바로잡을 필요를 느꼈습니다. 더 늦으면 시민의 지성과 양심이 멸절될 지경이니까요.

영화 <상록수>를 통해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민주주의는 국가의 정체성이 아니라 시민의 정체성에 달렸다고 봅니다. 민주의식으로 충만한 시민개인들이 모여서 민주공화국을 형성하죠. 따라서 반민주적 행태에 대해서는 시민개인이 즉각 반응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일상은 거대한 유사 민주주의라는 구조체에 속한 한낱 부속품들의 삐걱거림으로 전락합니다. 

▲ 영화 <상록수> 김철한 감독.

영화제목 <상록수>는 확정된 제목인가?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잘 붙인 제목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상록수가 늘 푸른 것처럼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엄정함도 불변이길 소망합니다.

주인공 노무현 전 대통령 배역으로 캐스팅한 배우 또는 접촉 중인 배우는?

어렵지만 노무현(전 이렇게 부르는 걸 좋아합니다. 그의 의미를 일반명사화 시켰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생전의 모습을 꼭 영상으로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대역을 쓰고 컴퓨터그래픽으로 보강해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과한 욕심을 내고 있는 중입니다. 

‘계몽적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대다수 국민과 호흡하려면 작품성과 배우 캐스팅이 중요할 것 같은데?

아마도 소설 <상록수> 때문에 그런 인상을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긴 우리의 현재를 그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비교했을 때 정신문화적인 면에서는 그리 나아진 것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퇴보를 느낄 정도라서 영화 <상록수>에는 혁명적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겠습니다. 하지만 <상록수>가 아무리 사실적인 시민의 투쟁기를 담는다 해도 방식은 개인의 감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우리의 감성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정의롭습니다. 노무현의 시민, 그 개인들의 심상을 그리다보면 2014년의 우리들은 모두 ‘부엉이 바위’ 끝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구체적인 영화제작 일정은?

제작비 조달 문제로 예정은 있으나 확정은 어려운 것이 독립 프로덕션입니다. 다른 작품들의 경우 초반 펀딩에만 1년이 넘게 걸리는데 <상록수>는 제작 공표 한 달 만에 일부의 촬영을 마쳤으니 광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12회 차의 해외로케 후 촬영 분은 우선적으로 후반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잔여 촬영일정도 차질이 예상은 되지만 2015년 칸느 출품을 최종시한으로 작업 중입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한 제작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시민영화가 갖는 영화자본의 의미와 모금 목표액은?

자본이 만든 영화는 철저히 자본에 충성합니다. 어쩌면 한국에는 영화란 것은 없고 광고나 오락만 존재하는지도 모르죠. <상록수>는 오직 시민들의 정서와 지향에 부합하는 작품이 되려 합니다.

순제작비와 P&A(필름프린트비용과 마케팅비용) 비용을 모두 포함한 총제작비를 위한 10만 예매가 목표입니다. 예매 완료, 제작완료, 손익분기점 돌파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방식입니다.

이후에 필요하다면 더 많은 관객을 위해 무료 상영과 온라인 배포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경우, 100만 관객이 봐야할 작품을 10만 명이 만 원씩 투자해 제공하는 형태가 되겠습니다.

▲ 영화 <상록수> 촬영 장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후원금 외에 스텝 및 보조출연 등 재부기능 등도 가능한지?

일찍부터 홈페이지(http://evergreen2014.kr/index.html)를 통해 오픈 캐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에 필요한 시민들의 경험이나 자료에서부터 촬영장소 제공이나 직접 출연 등 각종 재능기부에 감사드리며 최대한 반영하고 싶습니다. <상록수>는 우리 안의 ‘노무현 찾기’를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영화 <무법자>를 통해 ‘영화란 자본을 통한, 자본에 기생하는 광대, 대중의 오락’이라고 갈파했는데, 현재 한국 영화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입을 열어 뭐라고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입니다. 영화는 대중적 문화예술입니다. 자본이 아닌 인간중심의 영화제작 환경이 구축돼야 합니다.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자유로운 시장논리를 들먹이려면 국내의 전체 영화제작 자본의 절반가량이 국민의 세금이란 사실부터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계의 독과점 행태 또한 영화를 방송보다도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미디어로 전락시켰습니다. 최근에 만났던 유명 영화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한 영화를 1,700만이 보는 게 정상이냐? 여기가 북한이야?” 이러한 기현상은 영화인의 승리도 관객의 승리도 아닙니다. 자본이 빚어내는 퇴행적 병리현상입니다.

김 감독이 공개적으로 “악당들의 덜미를 잡고 지옥으로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는데 주변 반응은 ?

보수 쪽에서는 ‘노무현 팔이’ 한다고 난리고 진보 쪽에서도 ‘노무현 팔이’ 한다고 난리죠. 차이가 있다면 한 쪽에선 대놓고 욕하고 한 쪽에선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정도입니다. 그들 중 누구라도 제대로 노무현의 의미를 똑바로 평가했다면 2014년의 이 통탄할 시국은 조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영화 <상록수> 촬영 장면.

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 영화배급 및 상영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돌파할 방법은?

전체 영화계 차원에서는 관련 법률을 적절히 개정해 공정한 룰을 정립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원한 상황이니 <상록수>의 입장에서는 해외배급과 국제영화제를 우선 노리는 기존의 방식을 취할 것입니다. 더불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재미있는 영화 또는 좋은 작품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자본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도 상업영화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독립배급망으로도 충분히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 환경에서는 대자본의 입장에서도 유통을 완벽히 제한하는 것은 제작을 제한하는 것에 비해서는 쉽지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영화라는 장르가 갖는 사회적, 정치적, 인문적 의미와 역할은?

영화의 효용은 사회변혁에서 킬링타임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극히 일부의 유희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기형적 미디어가 돼버렸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을 통틀어 사회성과 흥행성을 갖춘 영화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그나마 모두 제도권 밖에서 투자와 제작이 우여곡절 끝에 강행된 경우들입니다.

영화감독 김철한은 어떤 사람인지, 함께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저는 영화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사랑해야 마땅한 것들을 저도 사랑할 뿐입니다. 노무현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노무현이 존중하고 두려워했던 시민을 저도 존중하고 두려워할 뿐입니다. 제작에 참여하는 분들은 이렇게 부족한 저와 영화의 폭발력을 함께 믿어주는 분들입니다.

이런 시기에 이런 테마를 선정한 감독을 믿어주는 분들이라면 아마도 ‘투사’라 부르기에도 부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블랙스완 멤버들과 서울역 횃불시민들은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가족들입니다. 누군가의 한 발자국이 지친 모두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것이 저희들의 2014년이었습니다.

▲ 김철한 감독.

자주 어울리며 소주 한 잔씩 기울이는 분들을 소개해주신다면?

술은 못하고요 커피를 마시며 자주 수다를 떨긴 하는데 친밀하게 지내는 분들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시나리오 쓰고 작품 구상하는 일상에서는 아무래도 폐쇄적이 됩니다.

스크린쿼터축소 반대, 한미FTA 반대, 부정대선 심판이라는 숙제들이 저의 은밀한 생활들을 결정적으로 바꿔놨습니다. 매우 아쉽고 또 어떤 면에서는 다행한 변화들입니다. 

영화 <상록수>에서 광주.전남의 의미와 비중은? 제작과정에서 광주전남에서 촬영할 계획은?

이 질문에는 눈시울이 후끈해집니다. ‘상록수’와 광주전남은 매우 절박한 역사적 그리고 운명적 관계에 있습니다.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키워드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초의 국민경선에서 경상도 출신 대선후보 노무현을 위해 길을 튼 것이 광주시민들이었습니다. 현재 서울역 횃불시민들의 투쟁을 낳은 것도 ‘광주의 아들 이남종’입니다. 우리는 이남종을 5.18 희생자들을 밤중에 서둘러 매장했던 바로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묻었습니다. 이남종의 분신장소는 1980년 통한의 회군이 있었던 서울역 앞이었습니다. 전남도청에 남았던 마지막 시민전사들처럼 서울역 횃불들도 굴종보다는 투쟁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상록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운명처럼 담고 있습니다. 2014년의 평범한 시민개인들에게 이렇게 육중한 소임이 주어져 있음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 바로 이남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민의 죽음은 5년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겠죠.

촬영지로는 광주 시내 세 곳과 5.18묘역이 확정이고 순천, 군산, 목포 등을 추가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영화제작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자칫 <상록수>가 딱딱하거나 지루할까 염려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노파심에 한 말씀드립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작품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업영화 감독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운명이죠. 저부터도 5분 이내에 작품을 판단하는 성격이 좀 급한(?) 관객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상록수>는 테마의 무게만큼 숨 막히게 재미난 영화를 추구합니다.

서울역 광장 집회에서 만난 김철한 감독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서 부채의식이 있다고 했다. 그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고 한다.

일전에 어느 평범한 주부가 했던 자기고백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힘이나마 참여하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생각해서 광화문광장에 나왔습니다. 민주주의는 더불어 함께 했을 때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다시 민주주의였고, 자기고백에 의한 참여였다. 보다 더 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영화 “상록수” 제작자로 참여해서 시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를 마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철한 감독은 영화 <상록수> 전국순회 일정으로 오는 13일 오후7시 광주를 찾아 동구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홍보행사를 연다.


 영화 <상록수>  누리집
http://evergreen2014.kr/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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