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0만 국민이 가라고 하는 길은 어느 길일까

더 이상 망가질 수가 없다. 꼴이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하다. 원래 잘 갈라지는 민족이라 남북으로, 동서로 갈려 으르렁 댔는데 하나 더 보탰다. 더 갈라졌다.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하면서 가엾게 죽은 아이들을 방치한 무도한 정권에 대한 불신과 죽는 것도 팔자소관인데 뭘 더 어쩌라는거냐는 짐승 같은 주장이다. ‘이게 나라냐.’

14,692,632표(48.0%), 이것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얻은 표다. 박근혜는 15,773,128표(51.6%). 표 차이는 1,080,496표.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문재인은 낙선은 했어도 국민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감시라는 가시 면류관을 썼다. ‘운명’을 멘 것이다. 자신의 뜻이 어떻다 하더라도 도망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그렇게 만들었다.

▲ 문재인 의원(새정치연합, 부산 사상)ⓒ민중의소리 갈무리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이 단식을 시작 할 때 철렁했다. 김영오의 단식은 모든 것을 버린 단식이었다고 지금도 믿는다. 김영오가 단식을 끝내기 전에는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문재인의 말도 믿는다. 결과는 상상하기 싫었어도 말이다.

문재인을 안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시기와 같다. 신뢰라는 것은 그냥 쌓이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차곡차곡 쌓인다. 20여년을 지켜봤다. 노무현이 말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무한한 신뢰다. 오늘 날 대한민국 국민이 역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라고 인정한 노무현이 자랑스럽게 여긴 친구 문재인,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신뢰한다면 신뢰하는 것이 옳다.


문재인이 남긴 많은 신뢰의 흔적들을 열거할 수는 없지만 몸이 불편한 친구를 업고 소풍 길을 나섰던 문재인의 고등학교 시절 얘기는 내게 지워지지 않는 감동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슴에서 울어나지 않는 행동은 사기다. 지금 국민은 사기정치에 질려 있다. 그러기에 신뢰하는 지도자가 그립다.

■신뢰의 정치가 그립다.

재주는 열심히 하면 가질 수 있다. 공부 열심히 해서 고시합격, 판검사 되고 장관되는 것도 재능이다. 그러나 존경과 신뢰는 재주로 되지 않는다. 재주 많은 동물들도 많다.

저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치겠다고 골 백 번 맹서하던 최고지도자가 전과 14범이고, 국민의 대표가 뻔뻔한 얼굴로 수갑 차고 법정에 들어 설 때 국민은 참담하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국정원장은 국민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물러난 적이 별로 없다. 재주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은 제대로 된 인간 지도자를 원한다.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 소금도 먹어봐야 짠 줄 안다. 선거란 무엇인가. 꽃무늬 같은 화려한 색깔로 국민의 눈을 현혹하는 이른바 공약이라는 것도 실은 국민으로부터 검증받는 것이다. 검증을 제대로 해야 하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속아 넘어간다. 땅을 친들 무슨 소용이랴.

단식이란 죽음과 직결되는 것이다. 굶으면 죽기 때문이다. 많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단식을 결행했는데도 또 시작이냐 비웃는데, 김영오가 단식을 시작할 때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문재인의 단식이 일주일을 넘길 때 그를 보기가 두려웠다. 두려웠던 경험이다.

문재인이 김영오와 목숨을 함께 한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김영오의 단식은 자식 잃은 애비의 단식이고 자식을 둔 국민의 단식이고 문재인도 국민과 더불어 단식을 결심한 것이다. 이 믿음은 그가 걸어 온 길이 바로 신뢰의 길이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진 정치는 국민에게 지옥이다. 국민은 지금 지옥을 체험하고 있다. 세월호에서 숨진 애들의 손톱 밑이 벽을 긁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죽어가면서 아이들의 머리에는 무엇이 떠올랐을까. 어른들에 대한 원망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죽는다는 두려움뿐이었을 것이다.

실험결과는 5분여 만에 모두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아이들이 죽어갈 때 비상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7시간 동안 행방불명이 된 국가의 최고 지도자. 입을 다물든, 변명을 하든 국민이 납득을 할 수 있는가. 죽은 애들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지금 국민과 유가족은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원인을 알자고 한다. 특별법을 요구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왜 특별법이 무서운가? 여기에 신뢰받는 정직한 지도자를 국민은 목말라 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비난을 받아도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았다. 탄핵까지도 감수했다. 지역감정이나 자극하며 표를 달라고 애걸하지 않았다. 원칙을 따르며 정직하게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의 정치여정이 험난했던 이유도 바로 노무현의 원칙주의였고 정적들은 그것이 죽도록 싫었다. 노무현은 잘못은 솔직하게 사과했다. 2005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위농민이 사망했을 때 노무현은 사과했다. 눈물의 약속을 어기는 지도자와 어떻게 다른가.

노무현대통령 국민장 때 백원우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라 외쳤고 후에 문재인은 이명박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왜 그 마음을 모르랴. 가슴에 한을 품었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문재인을 국민들은 기억한다.

■문재인,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재인은 정치와는 선을 긋고 선을 넘지 않았다. 노무현의 간곡한 권유도 거부했다. 민주화투쟁에는 함께 했지만 현실 정치에는 발을 담그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한국정치의 추악한 모습에도 질렸겠지만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개처럼 진흙탕에서 싸워야 하는가. 결벽증과도 같은 자신의 성격을 잘 알았을 것이다.

운명이었다. 노무현이 가고 평생의 벗을 잃고 통한의 눈물을 흘릴 때 그는 결심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대신한다. 지금도 난 그렇게 믿는다. 원칙에 벗어나면 하지 않는다. 그것이 문재인이다. 대선기간 동안 그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에게 술수는 남의 나라 얘기다. 최선을 다 하고 승복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국방부의 댓글부대 운영으로 부정선거 시비가 고조됐을 때 문재인의 처신을 보았을 것이다. 그 역시 문재인에 대한 검증의 한 예다. 사람들은 문재인의 비적극성을 말한다. 심지어 정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적극성이란 무엇인가. 저돌적 투쟁이 적극성인가. 만용은 합리적 투쟁도 아니며 지지도 받을 수 없다. 더욱이 지도자의 자세는 아니다.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국민은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가. 원칙도 없이 타협을 하며 국민의 염원을 외면하는 지도자인가. 이미 국민은 그런 지도자로 해서 야당이 붕괴된 것을 목격했다.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민생은 무엇인가. 입만 열면 민생을 말한다. 세월호 특별법은 민생이 아닌가. 국민의 가슴에 피멍이 들고 악몽에 시달리는 세월호 참사는 바로 국민을 악몽에서 구해주는 가장 시급한 민생이다. 민생 1순위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도 여당도 세월호 문제를 국가가 처리해야 할 제1과제로 선정했고 해결을 약속했다. 유족들과 야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무슨 억지로도 피할 수가 없다. 문재인이 단언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유족들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라고 했고 세월호 입법은 “세월호 이전과 다른 대한민국으로 가는 첫 출발”이라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세월호 유족들에게만 빚을 진 것이 아니라 온 국민에게 빚을 졌다. 이 빚을 갚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잘못해 온 정치권의 참회이자 다시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세월호 입법은 여야의 정쟁거리가 될 수 없다.

국민은 야당의 지도자 부재를 한탄한다. 새로운 정치를 지향한다던 안철수는 참혹하게 무너졌다. 안철수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좌절로 이어졌다. 김한길·안철수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어떤 모습으로 침몰했는가. 선거에서 연전연패, 국민은 희망이 없는 야당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바로 야당 지도자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지도자의 위치는 무겁다. 누가 지도자인가에 따라서 당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은 오늘의 야당을 보면서 더욱 뼈가 저릴 것이다. 야당의원들이 이해득실에 매몰되어 있다. 권위와 신뢰를 함께 갖춘 지도자가 있다면 사이비 의원들은 존재할 수 없다. 문재인이 지고 가야할 무거운 짐이 그것이며 결코 이를 피해서는 안 된다. 피한다면 문재인도 사라져야 한다.

자신을 던져야 할 때 머뭇거림으로서 함께 하려는 지지자의 의지와 동력을 약화시키면 안 된다.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야당은 구심력을 잃고 흩어진다. 국민은 지금 야당의 소멸이 아닌 정치의 죽음을 보고 있다. 국민이 문재인에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대를 거두지 않은 이유는 다른 해법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다면 국민을 절망시키지 말고 정치를 떠나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집권은 불가능합니다. 일본 자민당 장기독재 같은 일당독주 시대를 초래할 지도 모릅니다. 당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당의 뿌리와 체질과 근본을 다 바꿔야 합니다. 시민의 삶 속으로 돌진해야 합니다. 아니면 정치 후진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수사·기소권을 무조건 반대할 뿐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정치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독재자의 통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인인이 독재로 규정한 이상 이제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가 그에게 지워져 있는 것이다.

문재인이 결단을 했다. 전혀 예상도 못했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한 그의 단식결행이 결연한 선언이라고 믿는다. 한국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요구는 어느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으며 문재인 역시 같다.

국민이 신뢰하고 지지할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기막힌 비극인가. 304명의 억울하게 죽은 국민을 방치하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비극의 막을 내리는 역할을 지금 국민은 문재인에게 걸고 있다고 믿는다. 선택은 자신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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